때로는 다른 재료

by 호접몽


요즘 되도록 온라인 장보기를 이용한다. 집까지 배달해주니 시간 절약도 되고 혹시라도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다. 온라인 주문을 하다 보니 신기한 제품을 종종 접하곤 한다. 지난번에 새로 구입해본 것 중 하나가 카레용채소였다. 재료를 따로따로 사면 오히려 돈도 많이 들고 번거로운 데다가 결국 상해 나가는 것이 생기니 가격도 적당하고 일회용으로 이용해보기에 부담이 없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게으른 나를 탓해야겠다. 내일, 나중에, 좀 더 있다가, 오늘은 귀찮아서, 등등 갖가지 이유를 갖다 붙이다가 결국 오늘 꺼내보니 상해버렸다. 오늘에야 드디어 '카레를 해먹어야겠어!'라고 결심이 섰는데, 아까운 재료는 이미 냉장고 안에서도 나의 손길을 기다리다가 먼저 가버린 것이다. 그래도 카레를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으니 일단 시도하기로 했다. 아쉬운 대로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인 브로콜리, 시금치, 표고버섯 등을 넣고 만들었다. 설 연휴에 만두 빚어먹으려고 사두었던 만두피도 그냥 수제비처럼 찢어서 넣고 말이다. 부드러운 맛을 위해 멸균우유도 살짝 넣었다.



그런데 결과물을 보니 의외로 맛있다. 아니, 그냥 당근, 감자, 양파 넣고 만들던 것보다 별미였다. 게다가 카레 만들 때 우동사리를 넣어서 카레우동을 만들어 먹어본 적은 있었지만, 이번에 이 생소한 재료의 카레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브로콜리시금치카레수제비 비슷한 이 음식도 나의 입맛에 맞았으니, 밥도둑까지는 아니어도 좀도둑 정도는 되는 수준 되시겠다. 배불리 먹고 커피까지 한잔하고 나니 든든하고 뿌듯하면서 내가 놓치던 무언가를 생각하게 한다.



아, 물론 음식을 할 때 창의력을 발휘했다가 고생한 적 많다. 그냥 하던 대로, 다들 그렇게 하니까, 그게 제일 무난하니까, 원칙대로 하는 것이 기본은 간다. 하지만 늘 쓰던 재료만 쓰는 것 말고 다른 시도를 해보는 것도 오히려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틀을 깨는 것이 아니라, 신선한 재료는 살짝 바꾸어도 되는 것이다.



여행에 대한 글을 매일 써나간지 80여 일이 흘러가고 있다. 글을 쓰는 동안 지난 여행을 떠올리고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지만, 어떤 날은 별로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난감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이 기간 동안 나는 '여행'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더 포괄적이고 다양한 생각을 이어나갈 수 있는 데도 생각의 틀에 나를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카레에는 당근, 감자, 양파가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마음처럼 말이다.



그리고 나는 여행에 대한 갖가지 카레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때로는 당근, 감자, 양파를 넣고, 때로는 오늘처럼 브로콜리, 시금치, 버섯을 넣고 말이다. 뭐가 더 좋고 덜 좋고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재료로 만들어보아야 실력이 느는 것이니 주저하지 않고 시도하며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행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고 보니 '그때 거기 가볼걸' 하는 아쉬움이 자꾸 떠오른다. 기회가 있었는데 그냥 안 가기로 결정한 그 여행들 말이다. 생각해 보니 지금 나에게 없는 재료를 갈구하는 모양새다. 있는 것 가지고 잘만 요리하면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차릴 수 있다. 그리고 카레는 웬만하면 맛있다. 오늘 이야기는 여행이 아니라 카레가 주인공이다. 내일은 또 어떤 재료로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오늘의 나에게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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