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나 자신도 내 마음을 모르고, 내 취미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돌아다니면서 찍어둔 사진을 파일에 저장만 해놓다가 다시 꺼내들어보니 알겠다. 어디 가서 '나 미술작품 감상하는 취미는 없어요.'라고 말할 만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열심히도 다녔고, 사진도 많이 찍어두었다. 나조차도 몰랐던 내 취미를 이제야 발견하게 된 듯, 미술관의 기억을 떠올려보기로 한다.
오늘은 파리 오르세 미술관이다. 오르세 미술관은 파리에 처음 갔을 때에도 방문했고, 그래서 그런지 익숙한 느낌이다. 사실 미술작품도 인상파 작품이 많아서 우리나라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다고 한다. 감상하다 보면 '어, 아는 작품!' 그런 느낌이 틈틈이 들 것이다.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은 프랑스 파리, 세느 강 좌안에 위치한 프랑스의 미술관이다. 과거 오르세 역이었던 건물을 프랑스 정부가 개조하여 19세기 작품들을 주로 전시하는 미술관으로 1986년 12월 1일에 재탄생시켰다.
주로 1848년부터 1914년 사이에 완성된 예술품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소장품들 중 마네, 모네, 고흐를 비롯한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역을 개조해서 미술관으로 만든 곳이라는 것을 알고 가서 그런지, 다른 미술관들과는 달리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중앙에 보이는 시계도 마음에 들고 분위기도 역동적이다. 작품과 거리감을 줄인 분위기여서 그 안에서 작품을 감상하거나 스케치를 하는 사람들이 자유분방해 보인다. 박물관 유리 안에 보관만 해놓은 구시대의 작품이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우러져서 각종 영감을 건네주는 듯한 느낌이다.
작품을 관람할 때에는 1층을 먼저 보고, 3층을 본 후, 2층 조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고 추천하는 글을 보았다. 관람 순서는 남들 하는 대로 하는 편이 효율적일 것이다. 오디오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렇게 된다. 1층과 3층에 있는 작품들을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보다 보면 어느새 체력이 떨어지는데, 2층에 보이는 의자가 반가워진다.
다음에 가면 오디오 가이드는 빌리지 않을 것이다. 한글도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빌렸는데, 관람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작품 앞에 서서 계속 설명을 듣고 있자면 에너지가 떨어지고, 그냥 건너뛰자면 이왕 빌린 기계 아쉬워져서 꾹 참고 듣게 된다. 그 앞에서는 되도록 감상에 집중하고, 작품에 대한 설명은 여행 가기 전이나 후에 집에서 하는 게 낫겠다.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과거의 작품을 엄숙하게 줄 서서 차례대로 관람만 하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 자리 잡고 앉아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것 말이다.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는 시간이다. 그 시절의 예술혼을 전달받아 현재에 이어나가고, 그 작품은 미래에 어떤 가치로 남을 것이다. 예술가들의 열정이 그곳에 다 모여있는 듯했다.
어떻게 저렇게 조각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게 가능할까. 나도 파리에 있다면 미술관에 매일 같이 가서 한 작품 앞에서 하염없이 감상도 하고 스케치도 하고 있으려나. 물론 그렇지 않을 거라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혹시 그랬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안 해봤으니 내 능력을 나도 모르는 것이고, 혹시 나에게 조각가의 능력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냥 '아무 상상 대잔치'이니 신경 쓰지 말고 통과.
<밀레의 이삭줍기>를 보려고 기대했는데, 때마침 서울 예술의전당 오르세 미술관 전 대여 때문에 서울에 가 있다고 해서 아쉬움이 컸다. 그냥 밀레의 <만종>을 보며 아쉬움을 달래보았다.
미술관 관람 이전에는 든든히 배를 채우고, 관람 중에는 틈틈이 앉을 자리를 찾아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비축해두어야 한다. 다음 여행 때 오르세 미술관에는 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나, 미술관 좋아하나 보다. 미술관에 있는 작품도 좋고, 거기에서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좋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났을 때에는 다른 일정이나 어떤 생각들은 다 떨쳐버리고, 작품과 나, 이 세상에 그렇게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한없이 바라보는 그 시간이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한다. 언젠가 또다시 그런 순간이 올 것이라 소망하며, 지금은 사진을 찍어둔 작품을 바라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