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축제

by 호접몽


밤새 눈이 내린 다음 날, 느닷없이 봄이 왔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사실 바람소리가 거세게 들려서 살짝 꾀가 났는데, 막상 나가고 보니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실바람도 불어와~ ♬♪~ 막 멜로디가 생각난다. 실바람이 아니라 바람은 좀 세게 불었다. 하여간 그리하여 외출하다가 다른 길로 샜다. 매화를 보려고 말이다.



매서운 추위에 정말 올해는 계절이 바뀌지 않고 겨울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아닌 걱정이 생길 무렵, 봄은 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작에 매화가 있다. 이제 정말 봄이 오긴 왔나 보다. 약간 미심쩍은 틈을 타서 봄은 훅 들어온다. 아직 바람은 차갑긴 하지만, 봄은 이미 와있다. 봄의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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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인도의 홀리 축제가 떠오른다. 인도에서는 홀리 축제를 계기로 봄으로 계절이 바뀐다. 홀리는 매년 2월~3월경, 힌두력 팔구나(Phalguna) 달 보름에 인도 전역에서 열리는 봄맞이 축제이다. 이때가 되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더라도 서로에게 물총도 쏘고 색가루도 뿌리면서 웃고 떠들면서 보낸다. 남녀노소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때가 바로 홀리 축제 기간이다. 



인도에는 단 하루도 축제가 아닌 날이 없을 정도로 축제가 많다는데, 그중에 대표적인 축제로 봄에 홀리, 가을에 디왈리 축제가 있다. 홀리는 물의 축제, 디왈리는 불의 축제라고 할 수 있다. 봄의 축제 홀리에는 물과 색가루를 뿌리고, 가을 축제인 디왈리에는 여기저기 초를 켜고 폭죽을 터뜨린다. 다 같이 웃고 어우러지며 축제를 즐긴다. 홀리 축제는 힌두교의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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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인도 여행을 하다 보면 이들에게 종교는 삶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힌두교, 이슬람교, 시크교, 기독교 등등 그들은 주일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이 종교 자체다. 자신의 종교가 무엇인지 드러내며 충실하게 종교활동을 하고 있다. 생활 속에서 잠깐씩 신에게 기도하기도 하고, 삶의 공간 안에 자그맣게 제단처럼 만들어놓고 자신들만의 의식을 행한다. 특별한 축제일이나 특정일에만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매일매일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이들에게 '나는 종교가 없다'라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종교는 그들의 삶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생각해 보니 그건 제주에서도 비슷하다. 제주는 1만 8천의 신이 살고 있다고 하고, 제주에는 '절 오백 당 오백'이라는 말이 있다. 제주에 무속신앙이나 불교가 성했음을 나타내는 상징어라고 한다. 마을마다 당이 있고, 절의 숫자도 그만큼 많다는 소리다. 요즘에는 '당 오백, 절 오백, 교회 사백'이라는 말이 있다고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시대에 맞게 변화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 교회도 많고 성당도 많다. 이곳 역시 신들의 고향이다.



다시 홀리 이야기로 와서, 네이버의 사진자료에서 '홀리축제'를 검색하니 사진이 쫙 뜬다. '맞다. 이 분위기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진들을 올리고 보니, 홀리축제야말로 마음의 빗장이 풀어지는 봄맞이 축제였음을 떠올린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지긋지긋한 겨울이 끝나고, 홀리 축제를 마치고 보면 봄이 훌쩍 와있다.



다시 매화 이야기로 와서, 매화를 보며 학교에서 배우던 '매화사'가 불쑥 떠올랐다. 그 시를 너무 어렸을 때 만난 거다. 매화가 언제 피는지,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잘 모르던 시기에 감흥 없이 무덤덤하게 말이다. 어쨌든 이미 지금은 매화가 두세 송이보다는 훨씬 많이 피어있는 상황이니, 더 늦기 전에 매화의 약속을 본 셈이다. 이제 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매화사 / 안민영


어리고 셩근 梅花(매화) 너를 밋지 안얏더니
눈 期約(기약) 能(능)히 직켜 두셰 송이 푸엿고나
燭(촉) 잡고 갓가이 사랑할 졔 暗香浮動(암향부동)하더라


어리고 가지도 드문드문한 매화 너를 믿지 아니하였더니
눈 내리는 때 피겠다는 약속 꼭 지켜 두세 송이 피었구나
촛불 켜 들고 가까이 사랑할 때 그윽한 향기 떠다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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