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이마트, 그러니까 신시가지 쪽에서 서귀포로 향하다 보면 언덕길을 올라야 한다. 때로는 엉뚱한 곳에서 문득 '그곳'이 떠오른다. 나에게는 그 장소를 통과할 때가 그렇다. 신시가지에서 서귀포로 향하며 서귀포에 거의 다 도착한 그곳을 지날 때마다 문득 '시에나'가 떠오른다. 그곳은 시에나에 거의 도착할 무렵, 버스에서 보던 풍경과 닮아있다.
멀리서 보는 모습이 그 안에서 보는 모습보다 아름다울 때가 있다. 눈 쌓인 한라산이 그랬다. 처음 제주에 이주해왔을 때, 눈 쌓인 한라산이 너무도 아름다워 부랴부랴 짐을 챙겨 충동적으로 그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니 눈밖에 안 보였다. 몇 시간을 눈길만 걸어가다가 지쳤던 적이 있다. 특히 아이젠 없는 산행으로 온몸의 세포를 긴장 속에 두었으니 과히 아름답지만은 못한 기억이다. 그냥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걸 그랬다.
시에나는 그 안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이었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첫인상과 마지막 모습이 아름답다. 버스를 타고 들어가다가 보게 되는, 그리고 버스를 타고 나가다가 보게 되는, 그러니까 시에나 전경이 보이는 그 과정이 경이로워서 그곳에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시에나 안에서의 기억도 좋지만, 시에나 안으로 들어올 때나 시에나에서 나갈 때 그 풍경에 탄성을 금치 못했다.
시에나는 고요한 마을이다. 그리고 옛 기억을 함께 가지고 있다. 시에나의 골목길을 거닐다 보면 그 집에 살았던 옛사람의 이름을 볼 수 있다. 1898년에 그곳에서 사셨다는 누군가에 대한 글을 적어놓은 문패를 찍은 사진이다. 유명 작가도 있었고, 그런데 그 사진은 어디로 갔는지 못 찾겠다.
시에나에는 골목골목이 연결되어 있다. 도무지 어디인지 길을 잃은 듯해도 일단 걸어가면 된다. 경사진 길을 걸어 내려오면 모든 길이 캄포 광장으로 통한다. 복잡한 미로 같아도 정 모르겠으면 캄포 광장으로 일단 내려오면 된다. 거기에 앉아서 쉬다 보면 다시 길을 찾아갈 힘이 생긴다.
시에나의 매력은 캄포 광장이 중심을 잡아주는 듯하다. 사물놀이에서 꽹과리와 장구가 가락을 잘게 쪼개고 나누며 장단을 몰아칠 때, 징이 '징~~~~~' 하면서 잘잘한 소리들을 통합시켜준다고 한다면, 캄포 광장이 그 '징' 역할을 한다. 캄포 광장은 시에나의 다양한 매력을 모아주는 구심점이 된다.
골목길을 거닐다가 캄포 광장에 오면 '이곳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캄포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활기롭다. 광장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오래된 성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시간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옛날부터 흘러오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곳이다. 저 고리는 말을 매어놓던 곳이라고 한다. 이제 필요 없다고 다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옛 유물이라고 박물관에 보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좋았다. 못 만지게 유리를 씌워놓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훼손시키지도 않으며 이렇게 함께 세월을 보내는 것이다.
정성스레 보수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관광지이니 어쩔 수 없긴 해도, 일하시는데 카메라를 들이민 것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살짝 죄송하다. 물론 사진을 찍은 관광객은 나뿐만은 아니었으니 그건 감안하고 일하시는 것일게다. 어쨌든 곳곳에서 이들이 시간과 정성을 다해 조금씩 오랜 세월을 두고 옛것을 보수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계단의 대리석이 파손되면 어떻게 하는가 보았더니 이렇게 다시 채워놓는다. 더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이 계단은 또 어떤 작품이 될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왜 찍었는지 잘 모르겠는 사진도 하나 투척해본다. 그때의 나에게 물어보고 싶다. 비둘기가 그렇게 신기했냐. 지금 사진으로 보니 저 비둘기 좀 무섭다. 대장 같기도 하고.
이 사진은 숙소에서 야경을 찍은 사진이다. 생각해 보면 시에나로 들어가거나 나갈 때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 그러니 솔직히 그 장면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그저 감탄사를 연발하며 마음 설레던 그 감정만이 남아있다. 어쩌면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기에 더욱 환상적인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정말 그랬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음 여행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