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이탈리아 여행은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이 큰 영향을 주었다. 거기에 나온 시에나와 피렌체는 꼭 가기로 하고, 그곳들 말고 다른 여행지를 추가하며 이탈리아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다. 베네치아는 순전히 엄마 취향에 따랐다. 나는 이탈리아가 처음이었고, 엄마는 두 번째였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이탈리아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베네치아"
"그러면 거기에서 좀 길게 머물까요?"
그렇게 이탈리아 여행 중 제일 오래 머문 곳이(그래 봐야 4박 5일이지만) 베네치아였다.
그곳에 간 때는 흐리고 추운 겨울날이었다. 생각해 보니 그런 날씨에 '여기 정말 좋아!'라고 감탄할 곳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하루 보고 나니 '여기가 왜 좋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중간에 비첸차에도 하루 가보고, 하루는 섬 투어도 참여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베네치아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동안 그냥 엄마와 취향이 많이 다르다고만 생각해왔는데,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날씨'였다. 안개 자욱하고 흐린 날씨에는 어디에 다니든 내 마음에 흡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나니 마냥 그리운 이 묘한 느낌이란.
오늘은 베네치아 여행을 되짚어본다.
베네치아는 생각보다 큰 곳이었다. 수로로 연결되어 있고, 길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작은 상점들은 구경하기에 충분하다. 갖가지 가면을 파는 상점도 이색적이었으나 구입하지 않을 것이니 바깥에서 사진만 찍었다. 하긴 사 가지고 왔어도 '나 이거 왜 샀지?'라는 생각만 했을 거다. 여행 중에는 충동구매를 자제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지갑 닫고 있으면 나중에 '그거 살걸' 하면서 후회한다. 무엇이든 적당히가 중요하지만 잘 지켜지지는 않는다.
섬이라고 만만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길을 헤맬 정도로 촘촘히 커다랗게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베네치아에서는 길을 잘 잃었다. 지도를 보면 더 헷갈린다. 처음에는 길을 잃었다며 당황도 좀 했지만, 나중에는 그냥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길 따라 마음껏 다니다가 화살표 표지판을 찾아서 걸어가면 된다. 원하는 곳이 나오면 거기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베네치아에만 돌아다니기 약간 지겨워질 때쯤에 섬 투어 여행을 신청해서 다녀왔다. 당일여행인데 베네치아 부근의 무라노, 부라노, 토르셀로 섬에 다녀오는 것이다. 패키지여행을 하며 다 통제받는 것이 싫다면, 그냥 그곳에 있는 당일 투어 정도만 참여해도 활력 있는 여행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섬 투어 중 유리공방에 방문했다. 금세 뚝딱 말을 만들어내시는 모습이다. 같이 투어 참여한 사람들이 손뼉 치고 환호성을 보냈다. 말 만들 때도 그랬지만, 저 유리에 담뱃불 붙일 때 사람들은 더 큰 박수와 환호성을 보낸 기억이 난다.
무라노 섬에는 고양이가 많았다. 고양이가 앉아 있는 곳은 어디나 작품 사진. 자세히 보니 이 녀석들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에게 섬은 안 보이고 고양이만 보였나 보다.
섬의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다. 고양이 한 마리 살짝 얹어서 섞어 본 풍경 사진이다.
부라노, 무라노 섬에 이어 토르셀로 섬까지 가면 일몰과 함께 섬 투어를 마친다. 알록달록 페인트칠을 해놓은 건물들 구경하는 데에 시간을 할애하다 보면 금세 해가 진다. 멋진 일몰 풍경까지 덤으로 마음에 담아본 곳이다.
오늘은 베네치아 사진을 찾아보며 기억 속의 여행을 소환해본다. 나에게 그곳은 언젠가 또 가보고 싶은 곳이 아니라 그냥 기억으로 충분한 여행지다. 그래서 상상 속으로 마음껏 추억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또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또 가게 되는 여행지도 있고, 그렇게 생각해도 안 가게 되는 여행지가 있다. 그리고 한 번으로 충분했다고 생각되는 여행지가 있다. 베네치아가 그렇다. 베네치아는 사진으로 다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가끔, 아주 가끔만 이렇게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기억할 수 있는 여행지. 또 어디가 있었는지 너무 늦지 않게 펼쳐보는 시간을 마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