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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Apr 04. 2021

천상병 시 「귀천」 「새」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오늘은 천상병의 시 「귀천」을 감상해보아야겠다. 「귀천」의 첫 구절을 언제부터인가 암송하면서 오늘에야 그의 다른 시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상병의 부인이 '귀천'이라는 카페를 했다는 것과 천상병 시인이 동료 시인들에게 막걸리 값을 얻어서 술을 마셨다는 정도 말고는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면 오늘은 천상병 시인의 시와 인생을 살펴보아야겠다. 그러기 위해 오늘 집어 든 책은 천상병 시선집 『귀천』이다.



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왔더라고 말하리라……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 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잎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에 그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이 책의 뒷부분에는 한국일보 기자 시절 김훈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이 1989년에 초판 발행한 천상병 시선집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본다면, 그 이전 그의 삶을 짚어보아야 김훈의 글도, 천상병의 시도 좀 더 와닿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굵직한 사건을 훑어보았다. 그의 인생을 살펴보니 시가 더 와닿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읽어보고 싶다.





1967년 7월 14일 자 신문을 펴든 문학인들은 1면 톱기사로 실린 '동백림을 거점으로 한 북괴대남공작단 사건(동백림 사건)'의 전모와 함께 연루된 사람들의 이름이 실린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어리둥절한 채 제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엔 뜻밖에도 시인 천상병(1930.1.29~1993.4.28)의 이름이 올라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재불화가 이응노, 재독작곡가 윤이상, 그리고 몇몇 재독 유학생들이 동베를린(과거 동독의 수도)을 구경하고 돌아온 것을 두고 북한의 배후 조종에 따른 어마어마한 '간첩단' 사건으로 확대·조작된 것이다.

서울대 상대 동문이자 친구인 강빈구는 동독 유학 중 동독을 방문했었다는 얘기를 천상병에게 자랑스럽게 털어놓았다. 그리고 천상병은 예의 다른 문인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강빈구로부터도 막걸리 값으로 5백 원, 천 원씩 받아썼던 것이다. 그것이 순진무구하고 천진난만한 시인 천상병이 '국사범'으로 조작되는 사건의 실체였다. 금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 문인들은 어처구니없어 실소를 터뜨렸다.

어쨌든 천상병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3개월, 그리고 교도소에서 3개월 동안 갖은 고문과 치욕스러운 취조를 받고 난 뒤 선고유예로 풀려났다.




천상병은 1930년 일본 효고현 히메지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거주하다가 해방을 맞아 귀국한다. 마산중학교 3학년에 편입한 그는 매우 조숙한 천재의 면모를 보인다.

그의 조숙한 재능은 당시 마산중학교 국어교사이던 김춘수의 눈에 띄어 1949년 시 '강물' 등을 <문예>에 발표하기도 한다. 곧 한국전쟁이 터지고 전란 초기에 미군 통역관으로 6개월 동안 근무한 그는 1951년 봄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입학한다.

이 무렵 그는 송영택, 김재섭 등과 동인지 <처녀지>를 발간하고, <문예>에 '나는 거부하고 저항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평론을 내놓으며 시작과 함께 비평 활동도 겸한다. 천상병은 1952년 <문예>에 시 '갈매기'로 완료 추천을 받고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1954년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그만두고 문학에 전념한다. 그는 이때 <현대문학>에 월평을 쓰는가 하면 외국 서적의 번역에 나서기도 한다. 그러다가 1964년부터 2년 동안 김현옥 부산 시장의 공보비서로 일하는데, 이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 생활인 셈이다.

1967년에 어이없게도 '동백림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여의 옥고를 치른 그는 죽을 때까지 다른 직업 없이 오직 시인으로 살아간다.


1970년 겨울 어느 날부터인가 동가식서가숙하며 떠돌던 천상병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졌다. 1971년 봄이 다 가도록 종적을 감춘 그는 나타나지 않았으니, 가까운 시인들은 천상병이 길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생각했고 천상병의 유고시집을 묶어주기 위해 작품을 모았다. 그렇게 1971년 12월에 당시로서는 호화 장정의 천상병 시집 [새]가 나오는데, 시집 출간 소식이 신문이며 방송 등을 통해 알려지며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천상병이 살아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는 거리에서 쓰러진 채 발견돼 행려병자로 오인되어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었던 것이다. 얼마 뒤에 천상병은 백치같은 무구한 웃음을 흘리며 다시 친구들 앞에 나타났다.

천상병은 기인답게 버젓이 살아 있으면서 첫 시집을 '유고시집'으로 낸 유일무이한 시인이 되었다.

병원에서 요양하며 몸과 마음을 추스른 시인은 1972년에 친구의 손아래 누이인 목순옥과 결혼해 가정을 꾸린다. 1979년에는 첫 시집 [새]에 실린 작품들을 거의 다 옮겨 실은 시선집 [주막에서]를 민음사에서 펴낸다. 이어 1984년에는[천상병은 천상 시인이다], 1987년에는 [저승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을 내놓는다.


인사동 큰길에서 어느 골목 어귀로 들어서면 '귀천'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는 작은 찻집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귀천'은 천상병의 널리 알려진 시편이고, 찻집 '귀천'의 주인은 시인의 아내 목순옥이다. 그 찻집 벽면에는 파안대소하는 천상병 시인의 커다란 얼굴 사진이 붙어 있다.(2012년 1월 현재 목순옥 여사의 조카가 운영하는 2호점만 운영되고 있다)


1993년 4월 28일, 천상병이 고단한 이 세상의 소풍을 끝내고 하늘로 돌아가던 날, 의정부시립병원 영안실 밖으로는 추적추적 봄비가 내렸다. 그가 죽고 난 뒤 몇 백만 원인가 하는 조의금이 들어왔다. 시인의 가족으로는 처음 만져보는 큰돈이었다.

시인의 장모는 그걸 사람들 손이 타지 않는 곳에 감춘다고 감춘 것이 하필이면 아궁이 속이었다. 그걸 모르고 시인의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가난하지만 순진무구했던 시인이 죽어서도 '만악의 근원'인 돈을 없애버리려고 '장난'을 했는지도 모른다.

시인이 죽은 해 '진짜' 유고 시집 [나 하늘로 돌아가네]가 나오고, 세 해 뒤인 1996년에는 [천상병 전집]이 간행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책의 마지막에 나오는 글은 김훈이 한국일보 기자 시절에 작성한 글 「아름다운 운명」이다. 그 글을 보면, 천상병 시인의 살아생전 모습을 생생하게 보는 듯하다.



내가 일하는 회사는 한국일보사이고 천상병의 부인 목여사가 경영하는 '귀천' 카페는 인사동이다. 걸어서 가면 10분쯤 걸린다. 점심이 지난 오후 시간에 그 카페에 가면, 거기서 가끔 천상병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한 큰 시인의 표정을 곁눈질하려는 천박한 저널리즘의 호기심이나 직업근성으로 그 카페에 가지는 않았다. 별 볼일 없이 다 떨어진 삶이 이다지도 피로할 수가 있을까, 이 피로는 무슨 잘난 지향성을 위한 피로인가 -그런 막막함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 나는 때때로 그 카페에 가서 천상병을 만났다.
(출처: 천상병 시선집 귀천 중 「아름다운 운명」 김훈 한국일보 기자 작성글)



천상병 시인의 시와 인생을 살펴보고 나니 그의 시가 이전과 다르게 다가온다.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새」 마지막 연)


이 시구가 그의 인생을 알고 감상해보니 또 다르게 느껴진다.



천상병 시인은 실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다 갔다. 어이없는 일에 휘말려서 고통받았고, 살아있는데 유고 시집을 낸 처음이자 마지막 시인으로 기록될 것이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라는 「귀천」의 마지막 연을 음미하며, 오늘은 나도 이 소풍 멋들어지게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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