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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Apr 26. 2021

동시와 동요 이준범

책장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시집 옆에 있던 책이다. 오래된 옛날 동시와 동요 책이다. 어렸을 때 이 책을 들춰보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물건도 그렇고 책도 마찬가지로, 분명 버리지 않았으면 어딘가에 있긴 있을 텐데 도무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는 것 한두 개쯤은 다들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는 일단 눈을 부릅뜨고 찾아보다가 정 안 보이면 그냥 한동안 잊고 산다. 그게 그렇게까지 절실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거짓말같이 불쑥 튀어나온다. 나에게 이 책이 그랬다. 가끔 생각은 났지만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찾아보고 싶지는 않았던 책 중 이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집에는 오래된 책이 많은 편이다. 물론 이것보다 더 오래된 책으로는 엄마의 할아버지께서 즐겨보시던 서책도 있긴 있다. 세로로 된 삼국지연의도 그 뒤를 따른다. 아참, 이건 오래된 책이 많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도무지 버릴 수 없는 그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다. 그래서 내가 책을 정리할 때에는 신간부터 줄인다. 간직한 세월이 아까워서 그런가 보다. 그리고 남에게 주어도 환영받는 것이 신간이기에 그렇기도 하다.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어르신들이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잃는 것이 조금은 연관되는 느낌이다. 정신없이 새로운 것이 계속 생겨나더라도, 오래되어 내 안에서 미화되어버린 기억, 지금껏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기에 아까운 기억은 결국 가장 오래까지 남는 게 아닐까. 시작도 전에 벌써 이런저런 생각이 한가득이다. 오늘은 이준범 작 『동시와 동요』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는다.





<동요시집>이라고 적힌 '머리말'에 보면 이런 글이 눈에 띈다. '읍니다'는 '습니다'로 바꾸고 성과 이름을 띄어 쓴 것은 붙여보았다.


근간에 와서 갑자기 어려운 동시들이 수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형식을 핑계삼아 어른의 시와 같은 것을 써 내어 어린이들이 읽어 이해도 못 하는 동시들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나는 이러한 점에 대해 대단히 불만을 품어 왔던 사람 중의 한 사람입니다.
윤석중 선생이나 박목월 선생 같은 분의 동시는 그 얼마나 쉬운 말로서 표현된 글들입니까. 글만 아는 어린이라면 누가 읽어도 쉽게 이해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동요, 동시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나는 여기 평소에 써 온 50여편의 쉬운 동시들을 엮어보았습니다. 이것은 결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어린이들의 정신 세계에 많은 아름다운 상상력을 길러 주고, 거기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것이 바로 이 책을 엮어 내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간혹 어려운 동시들이 보이긴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양념이라 생각하고, 쉬운 동시들과 비교해 읽어 보면 더욱 더 배움이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 자그만 동시집을 읽고 어린이들의 눈과 마음을 통해 아름다움을 찾아 낼 수 있는 힘을 기르고, 나아가 아름다운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 주길 간절히 바랍니다.
끝으로 이 동시집을 엮어 주신 문예사 직원 여러분과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신 유창완 님께 감사 올립니다.

1966년 8월 1일
지은이


이 책의 1장 '간지러운 봄'에 실린 동시들을 한 편씩 음미해보아야겠다.








파아란 하늘에



까만 점 하나,




빙그르르르……




그 점이 원을 그리며



내려 오더니,




한 마리의



새가 되었다.




봄노래





산골짝에 누워서



피리를 분다.




삘리리 삘리리



삘삘 삘리리……




땅 속에 숨었던



아지랑이들




피리 소리 듣고 싶어



솔솔 나오네.




잔디밭에 엎디어



피리를 분다.




삘리리 삘리리



삘삘 삘리리……




꼭꼭 숨었던



종달이들도




피리 소리 배울려고



포록 나왔네.




연못가에 앉아서



피리를 분다.




삘리리 삘리리



삘삘 삘리리……




온 겨우내 잠만 자던



버들강아지




눈 부비며 누가 부나



고갤 내미네.




봄날의 동화





담장 가에 한들한들



아기민들레



노랑나비 나풀나풀



날아가면은



민들레 짤레짤레



손을 흔들며



조금만 조금만 놀다 가래요.




담장 가에 한들한들



아기민들레



나비와 뽀뽀하며



놀고 있으면



봄 바람 설렁설렁



화가 났대요.



나비완 놀지 말고



저와 놀재요.




담장 가에 한들한들



아기민들레



봄 바람 노랑나비



날려 보내고



민들레 귓가에



아양 떨어도



민들렌 살래살래



말도 말재요.




잘 듣고 잘 보고





가만히 눈 감고



들어 보아라.




살곰히 귀 기울여



들어 보아라.




댓돌 위에 벗어 논



고무신 안에




달빛이 사르르



담기나 안 담기나




달빛이 차르르



넘치나 안 넘치나




잘 들으면



들리지만




잘 못 들으면



안 들리지.




가만히 눈 감고



살펴보아라.




살곰히 꿈 속에서



찾아보아라.




화단 가에 뿌려 논



파란 꽃씨가




손부터 쏘옥 쏙



먼저 내나 안 내나




눈부터 빠꼼



먼저 뜨나 안 뜨나




잘 보면



보이지만



잘 못 보면



안 보이지.




봄 소식





까만 꽃씨 속에



봄 편지 들어 있다.




자그마한 꽃씨 속에



봄 소식 담겨 있다.




가만히 귀 대고



들어 보면은




"내년엔 빨간 꽃



크게 피워야지!"



"내년 봄엔 파란 꽃도



피워 봐야지!"




꽃씨들이 소곤소곤



주고받는 얘기 소리




봄 내음 간지러운



까만 꽃씨에




파란 물 묻을 듯한



작은 꽃씨에




봄 소식 오손도손



한 아름 들어 있다.








바람이 씻어 논



-푸른 하늘




제비 한 마리



씽-




금 긋고 지나간다.




노골노골한



햇볕.




마루에서



집 보던 순이




눈이 사르르……




따스한



봄볕 덮고



잠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정리하기도 하고, 미니멀리즘을 생각하며 줄이기도 했지만, 사실 아까운 건 아까운 거다. 사람들에게는 남들에게는 별것 아닌 듯해도 자신에게는 소중한 무언가가 있는 법이다. 나에게 책이 그런가 보다. 오늘은 내 손을 떠나간 책들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다른 주인을 찾아가서 사랑받고 있는지, 냄비받침 대신으로 쓰이고 있지는 않은지, 고양이나 개의 공격에 너덜너덜해진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아직 내 손에 있으면서도 나에게 외면당하고 있는 책들이 떠오른다. 오늘은 책 먼지를 털어주며 책들에게 말을 걸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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