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었다.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또르르 흘러내리는 눈물. 그랬다. 오이소박이를 다 먹어서 또다시 담그는 중 양파를 까고 썰다가 그런 것이다. 문득 파블로 네루다의 시 「양파를 기리는 노래」가 생각이 났다.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흔한 소재를 글로 쓰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엇을 써나갈 수 있겠는가. 나는 지금껏 양파를 그렇게도 진지하고 길게 노래해본 적 있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오늘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 「양파를 기리는 노래」를 감상해보기로 한다.
「양파를 기리는 노래」를 보자. 양파는 일상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물로 간혹 시에서 가난의 상징으로 등장했을 뿐 누구도 크게 눈여겨보지 않던 것인데, 네루다는 그 양파를 숭고의 차원으로 승화시킴으로써 사물의 근원적 가치와 삶의 본질적 의미를 선명하게 일깨워준다. 시인의 관점이 바뀌자 보이지 않던 대상이 보이고 기존의 대상도 달리 보이게 된 것이다. 그만큼 시선이 중요하다.
(출처: 어둠을 뚫고 시가 내게로 왔다, 189~190쪽)
양파를 기리는 노래
-파블로 네루다
양파여,
반짝이는 플라스크여,
한 꺼풀 한 꺼풀
너의 아름다움이 빚어졌다,
수정 비늘들이 너를 불렸고
컴컴한 대지의 비밀 속에서
이슬 같은 너의 배 둥그래졌다.
땅 아래에서
기적이 일어났고
너의 굼뜬 파란 줄기
돋아나고
남새밭에 검 같은 너의 이파리
태어났을 때,
대지는 너의 투명한 알몸 보여주며
차곡차곡 힘을 쌓았다.
아득한 바다가 아프로디테의
가슴을 부풀려
또 한 송이 목련꽃을 피워 내듯이,
대지는 그렇게 너를 빚었다,
유성처럼 밝은
양파여,
변치 않는 별자리여,
둥그란 물 장미여,
넌 가난한 사람들의
식탁
위에서
반짝반짝 빛날
운명을 타고났다.
너그럽게도
넌 팔팔 끓는
냄비 안에서
네 싱싱한 구체를
해체하고,
타는 듯한 식용유의 열기에
수정 조각들은
돌돌 말린 황금 깃털로 변한다.
나는 또 기억하리라, 너의 영향이
어떻게 샐러드의 사랑을 북돋우는지,
하늘은 네게 섬세한 우박의 형태 부여하며
반으로 잘린 토마토 위
잘게 썰린 너의 투명함을
찬양하는 데 기여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민중의 손이
닿는 곳에서
식용유가 끼얹어지고,
약간의 소금이
뿌려진 채,
넌 고된 길을 가는 날품팔이의
허기를 달랜다.
가난한 사람들이여 별이여,
고운 종이에
싸인
요정 대모여,
넌 천체의 씨앗처럼
영원하고, 옹글고, 순결하게
땅에서 고개를 내민다.
부엌칼이
널 자를 때
하나 뿐인 고통 없는
눈물이 솟는다.
넌 괴롭히지 않고도 우리를 울게 했다.
양파여, 난 지금껏 존재하는 모든 것을 찬양했다.
그러나 내게는 네가
눈부신 깃털의 새보다 더 아름답다,
내 눈에 넌
하늘의 풍선, 백금 술잔,
눈 덮인 아네모네의
정지된 춤이다.
수정같은 너의 본성에는
대지의 향기가 살아 있다.
역시 파블로 네루다는 파블로 네루다다. 나는 양파를 까며 눈물 깨나 흘려는 봤지만, 파블로 네루다는 이렇게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시를 뽑아낼 줄이야! 양파를 다시 보기로 했다. '눈 덮인 아네모네의 정지된 춤', 느껴지는가? 한참 들여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