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의욕이 넘치는데, 그래서 이 일 저 일 다 하겠다고 나섰는데 실력은 딸리는 듯하고 잘 풀리던 게 무언가 막혀서 갑자기 딱 멈춰 서게 되는 느낌말이다. 사실 지금이 좀 그렇다. 하나하나 진지하게 정성껏 접근하자니 버겁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옭아매나 보다.
아, 그렇다고 지금 시 감상을 대충 하겠다는 건 아니고, 이럴 때에는 순전히 운에 맡기는 거다. 내가 펼쳐드는 시는 내 마음에 들어올 것이라고 주문을 걸고 손에 집히는 책을 꺼내들어 펼쳐들었다. 오늘은 어떤 시가 나오든 이 시를 감상하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 시, 지금의 내 마음을 건드려주는 것이 아닌가. 좀 놀랐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을 떠먹여주고 있다. 내가 자발적으로 찾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읽을 필요가 있는 시가 나를 찾아주었다. 내 손과 만나고 내 눈과 마주치고 내 마음에 들어왔다. 오늘은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의 「여유」를 온 마음을 다해 감상해본다.
사실 좀 울컥했다. 각성했다고 할까. 아무리 바빠도 나 자신을 잊으면 안 된다. 그 어떤 것을 하든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잠깐 짬을 내어서 풍경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그건 아니다. 스케줄을 잘 조절하며 여유를 가져보아야겠다. 오늘은 그러라고 이 시를 감상하게 되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