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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접몽 May 22. 2021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여유」

그런 날이 있다. 의욕이 넘치는데, 그래서 이 일 저 일 다 하겠다고 나섰는데 실력은 딸리는 듯하고 잘 풀리던 게 무언가 막혀서 갑자기 딱 멈춰 서게 되는 느낌말이다. 사실 지금이 좀 그렇다. 하나하나 진지하게 정성껏 접근하자니 버겁다. 잘 하고 싶은 마음이 나를 옭아매나 보다.



아, 그렇다고 지금 시 감상을 대충 하겠다는 건 아니고, 이럴 때에는 순전히 운에 맡기는 거다. 내가 펼쳐드는 시는 내 마음에 들어올 것이라고 주문을 걸고 손에 집히는 책을 꺼내들어 펼쳐들었다. 오늘은 어떤 시가 나오든 이 시를 감상하겠다고 말이다.



그런데 이 시, 지금의 내 마음을 건드려주는 것이 아닌가. 좀 놀랐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을 떠먹여주고 있다. 내가 자발적으로 찾지 않더라도 지금 내가 읽을 필요가 있는 시가 나를 찾아주었다. 내 손과 만나고 내 눈과 마주치고 내 마음에 들어왔다. 오늘은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의 「여유」를 온 마음을 다해 감상해본다.





여유



-윌리엄 헨리 데이비스







이것이 무슨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 없다면





나뭇가지 아래서 양과 소처럼 순수한 눈길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볼 시간 없다면





숲을 지나며 수풀 속에 도토리 숨기는



작은 다람쥐들을 바라볼 시간 없다면





한낮에도 마치 밤하늘처럼 반짝이는 별들을



가득 품은 시냇물을 바라볼 시간 없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다정한 눈길에 고개를 돌려



춤추는 그 고운 발을 바라볼 시간 없다면





눈가에서부터 시작된 그녀의 환한 미소가



입가로 번질 때까지 기다릴 시간 없다면





이 얼마나 가여운 인생인가. 근심으로 가득 차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 없다면






사실 좀 울컥했다. 각성했다고 할까. 아무리 바빠도 나 자신을 잊으면 안 된다. 그 어떤 것을 하든 잠시 멈춰 서 바라볼 시간이 없다면, 잠깐 짬을 내어서 풍경을 바라볼 시간조차 없다면, 그건 아니다. 스케줄을 잘 조절하며 여유를 가져보아야겠다. 오늘은 그러라고 이 시를 감상하게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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