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시집은 이생진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다. 사실 오래전, 나도 제주도 여행을 올 때 이 시집을 가지고 온 적이 있다. 이 책은 내가 책을 그다지 읽지 않던 시절에도 머리말이 나를 사로잡았으니 말이다.
머리말
햇볕이 쨍쨍 쪼이는 날 어느날이고 제주도 성산포에 가거든 이 시집을 가지고 가십시오.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 일출봉에서 우도 쪽을 바라보며 시집을 펴면 시집 속에 든 활자들이 모두 바다에 뛰어들 겁니다. 그리고 당신은 이 시집에서 시를 읽지 않고 바다에서 시를 읽을 겁니다. 그 때 당신은 이 시집의 시를 읽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시를 읽는 것입니다. 성산포에 가거든 이 시집을 가지고 가십시오. 이 시집의 고향은 성산포랍니다.
(출처: 『그리운 바다 성산포』 머리말 전문)
그 어느 날 제주도 여행을 하며 성산포에 가서 주섬주섬 이 시집을 꺼내들었는데……. 아무도 바다에 뛰어들지 않았다. 그대로 해보고 싶었으나 막상 주변에 사람들이 있으니 쭈뼛쭈뼛, 내 마음은 이미 눈치를 보고 있었나 보다. 어쨌든 꽤나 오랜만에 이 시집을 꺼내들었는데, 머리말은 여전히 똑똑히 생각나는 것은 그 시절의 내가 있기 때문인가 보다. 이미 시집의 시를 읽기 전에 나의 시를 읽고 그 시절의 나를 읽었으니, 이 시집의 고향은 지금 여기.
이생진 시인이 1978년 성산포에서 쓴 책이라는 것을 처음 보는 듯 새로웠다. 그러니까 이 책에 실린 81편의 시 가운데 1에서 24까지는 1975년 여름에 성산포에서 쓴 것이고, 25에서 81까지의 57편은 1978년 초봄 그곳에서 바다를 보며 정리한 것들이라고 한다. 그중 몇 편을 감상해보아야겠다.
시인의 감성이 아니면 이런 시어들이 튀어나올 수 없을 거다. 바다를 보며 '바다다~~~! 아, 좋다!'하는 나는 언제쯤 바다에서 시를 읽을 수 있을까. 언제쯤 나는 바다를 더 취하게 할 수 있을까. 오늘은 이생진 시인의 시를 보며 바다를 생각하지만, 조만간 바다를 보며 시를 떠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