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책으로 배운 정리 귀차니스트의 정리 이야기
사람마다 제각각 욕심 내는 소유물이 있다. 나에게는 책이 그렇다. 처음에는 언젠가 또 필요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처리하는 것이 정말 아까웠는데, 이제는 마음을 비웠다. 정 다시 보고 싶다면 도서관에서 빌려보면 되지 않겠냐며 나를 다독거렸다. 책을 처리를 하는 대신, 꼭 간직하고 싶은 책들은 책장에 잘 꽂아놓되, 주기적으로 먼지 제거도 해주며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늘어나는 책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읽고 싶은 책을 다 읽고 소유하고자 하다가는 어느 순간 책장에 이중으로도 꽂아놓고 책 위쪽에 남는 공간에도 꽂아놓다가 바닥에 쌓아놓기도 한다. 넘쳐나는 책들을 잘 꽂아놓을 책장을 늘리든가, 주기적으로 책을 줄이든가, 그 두 가지 방법으로 책장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나는 그냥 주기적으로 책을 줄이기로 했다. 충분히 인상적이었던 책도 내가 또 한 번 읽지 않을 듯하면,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전달되기를 희망하면서 말이다.
『정신과 의사의 서재』에 보면 정신과 의사인 저자 하지현은 취향에 맞는 책들만 모아놓고 '명예의 전당'에 보관한다고 한다. 그냥 책장에 남길 책들을 꽂아서 보관한다는 설명보다는 '명예의 전당'이라는 표현이 참 와 닿았다. 이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책은 주로 과감하게 더럽히며 읽은 책들이 대부분인데, 밑줄 긋고 접고 포스트잇을 붙인다는 것이다. 버릴 게 없는 책 혹은 완전히 새로운 감성을 주는 책으로, 글의 스타일, 책의 구조, 저자의 이야기나 지향점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감성을 주고, 독창성이 확연히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도 다른 이에게 넘기는 책은 깨끗하게 보도록 노력하지만, 간직하는 책은 밑줄도 긋고 접기도 하면서 나의 방식대로 활용하고 있으니, 그 점도 너무 와 닿았던 책이다.
오직 하나의 책장만 '명예의 전당'으로 정해놓았다. 세어보니 8단 책장으로 약 400권 정도가 들어간다. 물론 한 번 들어왔다고 해서 영원히 간직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빼곡한 이 책장의 원칙은 새로 들어오는 책이 있으면 누군가는 나가야만 한다는 것. (101쪽)
이 과정에서 평소에 인식하지 못했던 '나'의 정체성을 인식할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 취향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신경 쓰면서 무난한 선택을 반복한다. 그런 것들이 쌓여가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헷갈린다. 이때가 솎아냄이 필요한 때다. 시간이 지나면 내 취향에 맞는 책과 아닌 책을 가를 수 있듯이, 시간이 얼추 지나고 나면 타인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진짜 내 눈으로 대상을 판별해낼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고 난 다음에 비로소 내 취향이 남는다. 주기적인 솎아냄으로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고 가려져 있던 내 취향이 두드러지며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102~103쪽)
(출처) 『정신과 의사의 서재』 「명예의 전당」 중에서
'명예의 전당'이라고 생각하니 내가 소유한 책들이 다시 보인다. 수많은 갈림길에서 다른 곳에 입양 가지 않고 살아남은 것이니 말이다. 대부분의 책은 제목만 보았을 때, 본문을 읽었을 때, 한번 읽고 나서 느낌이 제각각 다른 데다가, 읽은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 때까지 판단해보아야 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솎아내고 흐름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오늘은 책장에 있는 책들을 꺼내 들어 먼지를 털어낸다. 이왕 소유할 책이라면 먼지 쌓이도록 잊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주기적으로 손길을 건네든지, 아니면 되도록 빨리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보내기로 했다. 마음을 조금 비우니 책에게도 덜 미안하다.
그리고 이제는 영역을 넓혀서 책뿐만 아니라 옷, 서랍 속, 주방 등등 구역별 명예의 전당을 만드는 과정을 올해 안으로 해놓아야겠다. 결국 정리는 필요 없는 것을 솎아내는 과정을 통해 정말 나에게 소중한 것만 남기는 '명예의 전당'을 만드는 과정이니 말이다. 그리고 남은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나의 눈도 중요한 것이다. 있는 것들을 소중하게 바라보며 활기찬 월요일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