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를 책으로 배운 정리 귀차니스트의 정리 이야기
여행은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생활의 활력이 되기도 했고,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 충전해주는 든든한 역할도 했다. 삶에 지쳤을 때 여행을 다녀오면 다시 리셋하는 기분으로 새롭게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호텔 대신 집에 체크인합니다』라는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집에서 여행하자는 단순한 제안에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거부를 하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랬다. 나는 의외로 여행을 싫어했나 보다. 어쩌면 나에게 여행은 현실 도피 같은 개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이 좋았던 것은 짐처럼 힘든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였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그 책에 『내 방 여행하는 법』이라는 책이 잠깐 소개되는데, 이 또한 흥미롭다. 출간된 연도도 오래되었으며, 그 시절에 자신의 방을 여행하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 방 여행하는 법』은 1794년에 출간된 두께가 얇은 베스트셀러 책 제목이기도 하다. 내용은 간단하다. 이 책의 저자는 42일간의 가택 연금 기간에 오랫동안 꿈꾸어 온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즉 자신의 방을 여행하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 방 여행하는 법』에서 그는 '세상의 모든 재화와 보물을 품고 있는 천국'인 자신의 방을 돌아보는 것으로 움직임을 제한한다. 안락의자에 앉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그림과 책, 가구들을 바라보면서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그의 내면에서 깨어난 기억들이 성찰의 과정을 거쳐 떠오른다. 오래된 편지들을 읽는 즐거움, 분홍과 흰색으로 이루어진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이부자리,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장점까지. 42일 동안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사건들은 때로는 재미있고 때로는 장황하기도 하지만 한 가지 만은 분명하다. 독특하다는 것이다.
『호텔 대신 집에 체크인합니다』 중에서, 194쪽, 196쪽
『사물의 철학』을 읽으면서 일상적인 물건들의 소중함을 느낀 적이 있다. 내 마음이 평화롭지 못하면 그 어떤 것도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내 관찰력이 부족하면 어떤 곳에 가든 새로운 것을 발견해낼 수 없는 것이니, 우리는 일상의 사물을 보고 읽고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책에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사물을 다르게 표현해주고 있다.
[도마] 거룩한 희생제의
도마라는 사물은 칼과 재료의 몸이 맞부딪히는 물리적 장이며, 무언가(재료)의 관점에서 보면 몸의 분할이 이루어지는 경계면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물은 생사가 나뉘는 시간과 세계의 경사면이라 할 수 있다. (62쪽)
[립스틱] 생활인을 예술가로 바꾸는 지팡이,
[생수] 미래에서 온 타임캡슐
[쇼핑카트] 권력의 사각 프레임
[젓가락] 둘이 있어야만 시작되는 '사람다움'
[후추통] 개별성이 살아있는 구멍들
『사물의 철학』 중에서
주변의 소소한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새롭게 바라보고 보니 기적 아닌 것이 없고, 감탄하지 않을 것이 없다. 오늘은 일상에서 쉽게 접하고 매일 이용하기도 하는 물건들에 대해 재인식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생각해보니 주변에 있는 사물들은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의미 있는 물건이 되기도 하고, 한낱 잡동사니에 불과한 물건이 되기도 한다. 잘 이용하는 일상 물건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시간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