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여행은 말이야 (feat 라떼는 말이야 버전)

by 호접몽


'정리'에 대해 쓸 때보다 '여행'에 대해 쓰는 것이 솔직히 더 어렵다. 글에 내가 너무 드러나는 게 부담스럽다고 해야 할까? 무슨 말을 써야 할지 소재를 고르는 것이 더 힘들다. 여행지 하나둘 떠올리다가 추억에 푹 빠져들면 한참을 잊었던 기억에서 허우적거리는데, 그 시간들이 이미 추억이 되어버렸다는 것에 새삼 놀라기도 한다.



자칫하면 '나 때는 말이야'라며 꼰대 중의 상꼰대처럼 보일까 봐 걱정되기도 하고,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이 짐작하게 글 쓰지 마라."라고 옆에서 부추기시는 어머니 발언도 한몫한다. 떠오르는 수많은 상념 중 어떤 것을 글로 담을지는 그날그날 기분에 달려있고, 나는 아직 추억의 여행지를 꺼내놓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시간만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웃 님의 글을 읽다 보니 문득 "나때 이랬다"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고 재미있었다. "나때 이랬다는데 뭐 어쩔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와 비슷한 맥락이라고나 할까. 떠오르는 옛 여행과 추억을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그동안 무언가 주눅 드는 느낌이 들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너무 일찍 여는 느낌이랄까. 좀 더 묵히고 삭히며 발효시켜야 할 기억을 너무 일찍 끄집어내는 느낌이 들었다. 왠지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꺼내지 말아야 할 추억을 꺼내는 듯한 느낌 말이다. 그냥 지금 심정이 그렇다는 것이다.



지난 시간을 추억하는 게 다 과거 이야기인 걸 어쩌겠는가. 여행 중에는 핸드폰은 꺼두고(삐삐도 꺼둔 적 있다고 살짝 말해볼까?) 종이지도 한 장 들고 돌아다니며 마음껏 길 잃고, 잘 모르면 길 가다 만난 사람들에게 길도 묻고 그러다가 몇 마디 이야기도 나누고 기분 좋게 여행 정보도 얻고 그런 여행을 했다는 것 말이다.



정신과의사 문요한이 들려주는 여행의 심리학 『여행하는 인간』에서는 질문을 던진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라고 말이다. 그 책에서는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 사는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여행'을 할 때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지금 혹은 나중에 할 수 있는 여행이 아니라, '그때 그 여행'이 말이다. 일상에서는 여행을 그리워하고, 여행 중에는 일상을 걱정하던 그 '방황'이 어쩌면 살아 있음을 느꼈던 시간이었으리라.






우리는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려고 여행을 떠난다. 그러나 여행의 시간에도 우리는 불편하다. 무언가 빠뜨린 것 같은 불안과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은 휴식의 시간마저 망쳐버린다. 여행 가서 업무 걱정을 하거나 못다 한 업무를 본다.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제대로 일하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다. 브리짓 슐트는『타임 푸어』에서 지나친 시간 압박으로 인해 어떤 시간도 온전히 보내지 못하는 현대인의 시간을 '오염된 시간'이라 부른다. 현대인들은 휴식할 수 있는 시간이 아무리 늘어나도, 그 시간을 온전히 휴식하며 보내기 어렵다. 정작 일할 때에는 친구와 놀러 갈 계획을 짜고, 또 친구와 놀 때는 못 끝낸 일을 신경 쓰는 식이다.




『여행하는 인간』 (47쪽)







과거의 기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니 단순히 거기 좋았다는 느낌은 일단 제쳐놓는다. 그동안의 여행 중 나를 한층 성장한 인간으로 만들었던 여행에 대해 생각해본다. '언제 어떤 여행 중에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지?' 문득 아득해진다.



사진 찍느라 여행지를 제대로 못 느끼는 게 싫다며 셔터를 누르지 않았던 여행이 지금은 너무 희미해져 버려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그때의 나도 나였던가?' 그냥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생각한다.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포즈로 사진 찍으며 "사진이 남는 거다"라고 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저 지금은 지난 여행을 하나둘 꺼내 들어 추억해보고,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하고 싶은지 꿈꿔보는 시간을 갖는다. 문득 그런 생각조차 잊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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