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의 밤

by 호접몽


그동안의 여행을 생각해본다. 그중 여행지의 밤 풍경만을 떠올려본다. 여행지의 밤은 여러 색깔이었다. 여행의 마지막 날 일상으로 돌아오기 직전에 아쉬움 가득한 밤도 있고, 더 이상의 자극 없는 무료함에 어서 여행을 끝내고 싶은 밤도 있었다. 또 어떤 시간들이 있었을까.



하루 종일 빡빡한 행군을 하며 여행지를 돌아다니다가 돌아오는 길에 갖가지 현지 과일을 사 가지고 와서 과일 파티를 하던 기억, 파리 유학 중인 동생네 가서 밤늦게까지 와인을 기울이며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던 어느 날 밤, 야시장 한번 가보겠다고 생각했다가 밤에 나가기 귀찮아서 목적지를 삭제해버렸던 대만에서의 기억, 인도 함피의 마탕가 힐에서 일몰을 보고 내려오는데 갑자기 너무 어두워져서 긴장하던 순간….



여행지의 밤을 떠올리며 밤 하나에 여행지 하나, 밤 풍경 하나에 또 여행지 하나 떠올려본다. (별 하나에 그리운 것 하나씩 떠올리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짝퉁) 그렇다. 이렇게 하는 데에는 『여행자의 밤』이라는 책이 역할을 했다. 여행 중 '밤'이라는 시간을 떠올리며 여행의 기억을 써 내려간 것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니 말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80여 개의 도시를 여행 다녔다고 하니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그동안 쌓인 추억도 상당하리라 생각되었다. 그 책을 읽으며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 있었지'라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새벽 2시 40분에 스시집 앞에 줄을 서는 일은 이제 하지 않을 것 같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누군가가 찍어놓은 별을 쫓아가는 여행보다는 어딘가에 숨겨진 반짝임을 찾아다니는 여행이 여전히 더 좋다. 다른 사람에게는 반짝이지 않을지라도 내 눈에는 그 어느 곳보다 빛나는 곳을 발견하는 것이 더 좋다. 그러다가 길을 잃을지라도 길가에 핀 들풀 하나에 슬며시 웃음 지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때론 느리고 때론 실패할지라도 아직까지는 그렇게 여행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
『여행자의 밤』 (46쪽)





돌아올 곳이 있어서 마음껏 떠났고, 다시 지극히 사소한 일상의 순간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었던 시간들이다. 모두가 제자리에 돌아오는 느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너무도 고요해서 다시 여행을 꿈꾸는 그런 일들의 반복. 생각해보니 여행과 일상의 반복으로 지금의 기억을 가진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비가 내리지 않아서 좋다. 추적추적 돌아다니기 번거로운 것을 제외하고는 밤이 되었을 때 별을 볼 수 있어서 좋아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몰과 별, 여행이 아니어도 마음만 먹으면 챙겨볼 수 있는 것이니, 오늘 밤도 놓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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