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보니 여행을 결심할 때, 계획적이기보다는 충동적인 편이었다. 이렇게는 더 이상 못 살겠다며 작은 반항의 마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과감하게 끊어버린 경우도 있고,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니 그곳이 나를 부른다는 둥 터무니없는 변명이 생기기도 했었다. 그래서인지 미리 계획하고 여행을 한 것보다 훨씬 기억에 남는다. 예상치 못한 것이 우리에게 더 많은 의미를 던져주나 보다. 삶이든 여행이든 말이다.
오늘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던 치기 어린 열정이 되살아나고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던 책 『오늘은 이 바람만 느껴줘』가 떠오른다. 풋풋하고 상큼한 느낌이 들었던 책이다. 그 책을 보면 이런 글이 있다.
잘생긴 청년이 파는 과일 수레에서 사과를 하나 집었거든?
그리고 한 입 베어 물며 깨달았어.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 배우러 온 이곳에서
나는 얼마나 행복을 몰랐던 사람이었나, 하고.
『오늘은 이 바람만 느껴줘』 112쪽
사과 한 입 베어 물며 '행복'에까지 생각을 이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쩌면 그런 정도의 마음은 글로 쓸까 말까, 잠깐 생각하다가 금세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그런 소소한 것일 테다.
여행을 하면서 어떤 때가 좋았는지 곰곰 생각에 잠긴다. 때로는 사소한 것이 거창하게 남을 때가 있다. 나에게는 인도 뭄바이에서 느낀 바람이 그랬다. 언제라도 그 바람이 떠오르면 인도에 가겠다고, 마음속에 다짐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첫 인도 여행에서 마지막 날의 감상이었다. 그 이후 사소한 일상에서 인도를 떠올렸고, 살랑 부는 바람에 마음이 들뜨면 인도를 꿈꿨다.
그런데 사실, 그곳에서 무엇이 좋았냐고 묻는데 '바람 때문에'라는 대답은 입장 바꿔 생각해도 영 아니다. 무언가 더 대단한 이유를 찾아야만 할 것 같은데 막상 떠오르지는 않는다. 생각해 보면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대단한 무언가 때문에 의미가 더 큰 것은 아니고, 티격태격 싸울 때에도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이제는 조금만 버티면 될 거라는 희망은 잠시 더 접어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버티고 버틴 후, 언젠가 문득, 살랑 불어오는 그 바람에서 뭄바이의 바람이 느껴질 때, 충동적으로 배낭을 꾸릴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소망한다. 사소한 이유로 여행을 떠나고 행복을 마음에 심어올 수 있는 '언젠가'를 오늘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