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속 시원하게 눈이 펑펑 내렸다. '표현의 빈약함이라니! '눈이 펑펑 내렸어요' 말고 다른 표현은 없나?' 어느 해에는 '이걸 첫눈이라고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는 둥 마는 둥 눈이 내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정말 펑펑 내렸다. 비록 낮에 내려서 내리자마자 녹아버리긴 했지만, '우와~!'라는 소리가 날 정도로 이곳 서귀포에도 첫눈이 내렸다. 밤에는 제법 쌓이기까지 했다.
'첫눈'에 대해 떠올리다 보니 생각나는 곳이 있다. 비록 가본 적은 없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불국기행』을 보다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바로 '이 세상에 첫눈이 오면 공휴일이 되는 나라가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세상에 그런 나라가 있다니! 첫눈이 내리니 기회가 된다면 언제 한번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몇 년을 해왔던 곳 '부탄'이 떠오른다. 아마 해마다 첫눈이 제법 오는 해에는 '부탄'이 먼저 떠오를 것이다.
『불국기행』에는 부탄, 네팔, 남인도, 스리랑카, 중국 오대산까지 불교 성지를 찾아 떠난 순례와 답사 기행이 담겨 있다. 갔다 온 곳도, 안 가본 곳도, 책을 통해 보니 훨씬 다르게 다가왔다. 해당 종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불교를 알아가며 여행지를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예전에 스리랑카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제대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불교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기억은 더욱 희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발을 벗는 것은 기본, 모자까지 벗어야 하니 귀찮았던 기억만 생생하게 남아있다. 여행을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겉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깊이 들여다보고 싶다. 그때는 못했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여행이다.
도를 모르고서 발을 옮긴들 어찌 길을 알겠는가.
『불국기행』의 저자 정찬주가 서문에 담은 어느 선사의 말
그동안 여행을 다녀온 곳들이 깊이 있게 기억에 남지 않았던 것은 별다른 준비 없이 보고 즐기는 여행으로 마무리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좀 더 깊이 있는 통찰이 필요했던 것일까. 어쩌면 지금이 그때보다 통찰력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생각이 많아진다.
"순례하면서 나그네로 다니지 말고 주인공으로 다니기 바랍니다. 예컨대 전생에 왔던 곳인데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순례하면서 가져야 할 자세가 또 하나 있습니다. 하나가 전체가 되고 전체가 하나로 되는 순례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보고 듣는 것이 더 깊어질 것입니다."
『불국기행』 236쪽
저자 정찬주가 보리수를 참배하고 난 뒤 기도처로 지어진 건물에 들러 수불 스님의 법문을 들은 내용이다. 나 또한 지금까지의 여행을 떠올려본다. 주인공이 아닌, 나그네로 다닌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번에는 책 밖의 세상을 직접 보며 책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문득 무언가 성찰하고 깊이 깨닫는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어디론가 가야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요즘에는 말이다. 역시 지금 필요한 것은 책 속 여행이다. 오늘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펼쳐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