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꿈에서 번호를 본 듯했다. 이거 혹시 로또 당첨번호 아닌가, 호들갑을 떨며 들떴다. 로또에 당첨되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자. 그래, 여행을 하는 거야. 예전보다 좀 더 럭셔리하고 비용 걱정 없는 그런 여행 말이다. 그동안 아끼고 아껴가면서 여행하지 않았던가. 고급 뷔페에 가고 싶었지만 발길을 돌려 로컬 음식점에 갔고, 고급 호텔에서 숙박하고 싶었지만 겨우 몇 시간 자는 데에 쓰는 비용이 저렴한 숙소에서는 몇 날 며칠 머물러도 될 금액이니 여우의 신 포도처럼 '저기 겉만 번지르르하고 별로일 거야.'라며 마음을 달래곤 했다. 그런데 로또 당첨이 된다면 그야말로 없던 돈이 생기니까 그 정도는 충분히 지르고 볼 것 아니겠는가.
누군가 그랬다. "하나님, 로또 당첨되게 해주세요." 열심히 기도하던 누군가에게 하나님이 답변을 하셨다는 것이다. "일단 로또부터 사거라!"라고 말이다. 그 당시 그 말도 막 떠오르면서, 혹시 아는가. 당첨되면 진짜 그럴 수 있을지, 마구 설렜다. 또 누군가가 그랬다. 복권을 사면 일주일이 행복하다고 말이다. 이왕이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행복은 로또 당첨번호 방송 시간에 와장창 깨지고 말았다.
분명히 숫자를 보았는데, 꿈에서 숫자를 본 정도면 어느 정도 맞아줘야 하는 거 아닌가. 너무 빗나가서 허무했던 기억이 난다. 1부터 45까지 숫자 중 경우의 수가 이렇게 많다니. 그중에 여섯 개를 맞추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괜히 꿈 타박을 했다. 왜 꿈에 숫자는 나와가지고 쓸데없는 데에 돈을 쓴 건지, 차라리 그 돈이면 맛있는 거나 사 먹고 말지, 그래도 다음에 또 꿈에 숫자가 나오면 나는 과연 무시할까 또 로또 구입을 할까, 온갖 생각이 들었다가 사라진 그런 경험이 있다.
지금은 여행을 생각하기는 힘든 때여도 로또에 당첨된다면 더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릴 것이다. 일단 꿈부터 제대로 꿔야 할 테니 오늘은 일찍 잠들어야겠다. 크리스마스이브이니 산타 할아버지든 루돌프든 나에게 선물을 달라! 나 올해 열심히, 착하게 살았다고요!! 글이 산으로 가고 있다.
어쨌든, 여행을 할 때 여행지마다 다른 것이 많다. 사람도 다르고, 언어, 음식, 문화… 그리고 화폐가 다르다. 나라마다 다른 화폐와 단위에 여행 초반에는 큰 실수를 하기도 했다. 유로화는 숫자가 너무 단순하다. 파리 여행을 할 때에는 여행 첫날 파리에서 한국행 왕복 비행기 티켓보다 더 큰돈을 수첩 몇 개 사는 데에 쓸 뻔했고, (암산실수였다, 그리고 다행히 구입 안 했다.) 베트남에서는 숫자가 너무 커서 도무지 감이 오지 않기도 했다.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숫자에 똑똑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큰 사기를 당하거나 크게 잃은 적은 없으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야겠다.
인도의 지폐에는 앞뒤에 14종의 문자로 금액이 씌어 있고, 영어와 아라비아 숫자까지 더하면 열여섯 가지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건 내가 여행하던 때 그랬고, 2016년인가 화폐개혁 이후에는 18가지라고 들었다. (확인은 안 해봄) 『세노 갓파의 인도 스케치 여행』을 보면 세노 갓파는 직접 은행원에게 각각의 문자가 어디 말인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세관원에게도 마찬가지였는데, 세 가지 밖에는 대답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도 우리나라 화폐의 인물 이름이 자주 헷갈린다. 그분이 그분 같고 업적이 무엇인지 누가 갑자기 물어보면 대답 못하고 버벅거릴 것이다. 그러니 인도인이면서 화폐에 적힌 언어가 무엇인지 대답도 못했다는 것이 완전 이해가 되었다. 우리는 어쩌면 매일 보는 것일수록 너무 친근하고 일상적이어서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부분이 있다. 돈에 대해 생각하다가 일상에서 이미 내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깨달음으로 마무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