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과 나이 든다는

by 호접몽


연말이 다가온다. 새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한 살 더 먹는다는 소리다. 그래도 우리에게는 '음력'이라는 것이 있으니 잠시 유보할 수는 있겠다. 나이, 그거 뭐 좋은 거라고 넙죽 먹기는 싫으니 떡국 안 먹고 버티는 걸로 어떻게 안 될까? 살짝 아쉬운 소리를 해본다.



오랜만에 채널을 돌리다가 음악 프로그램에서 멈췄다. 아이돌 여러분께서 알아듣기 힘든 가사의 노래를 격렬하게 부르고 있었다. 한때 매일같이 라디오를 들으며 노래 가사에 심취하기도 했건만, 어느새 그때 그 시절, 그리고 그 이후의 시절까지도 추억 팔이로 등장하고 있고, 최정상 아이돌의 위치에서 내려오지 않으리라 생각되던 그들은 원조 아이돌이니 아이돌계의 시조새니 하면서 세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문득 마스다 미리의 『차의 시간』이 생각난다. 차의 시간은 어떤 시간일까. 이 책에서는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그 책에서 이런 말이 있다.



40대를 인생의 반환점이니, 뭐니 하지만 반환한 사람이 있나?

『차의 시간』 (37쪽)




그러게, 반환한 사람이 있나? 우리는 나이 먹는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해 보면 그때 정도면 아직 쌩쌩하고 젊었을 거면서 꼭 늙은 티를 낸다. 예전에는 김광석의 노래 「서른 즈음에」라든가 최영미의 시 「서른, 잔치는 끝났다」 같은 말에 마구 흔들렸지만, 지금 보면 그 나이는 오히려 적당히 젊음이 무르익는 나이가 아니던가.



『상식으로 살고 있나요?』를 읽다 보면 「노화」라는 글이 있다. 핵심은 그거다. "노화도 시작되기 전인데 나이 든 척하고 있나요?"라는 것 말이다.




"어르신 옷 입으신 걸 보면 치수가 너무 커서 후줄근해 보인다, 나는 나중에 노인이 되면 몸에 맞게 옷을 좀 챙겨 입고 다니고 싶다"고 많은 젊은이들이 생각할 것이다. 내 기억에도 부모님 평소 옷차림이 그리 썩 내 맘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왜 그렇게 치수가 큰 옷을 입고 계세요? 좀 몸에 맞는 옷을 입으세요"라는 말은 스스로 노화를 겪기 전에나 할 수 있다.
큰 옷을 입은 게 아니라 몸이 줄어든 것이다.

『상식으로 살고 있나요?』 128쪽





무슨 옷을 입어도 얻어 입은 옷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몸이 줄어들고, 옷뿐 아니라 신발도 점점 헐렁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불과 몇 년 전 입던 옷이 작아져 정리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제 옷이 커져서 못 입게 되었을 때가 진짜 노화가 시작된 시점이 아닐까. 큰 옷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작아진 몸과 마주하는 때는 이미 노화가 많이 진행된 때이리라.
가까이 있는 것 안 보인다고, 머리카락이 좀 하얗게 세었다고 노화가 진행되었다며 나이 든 척할 필요는 없다. 옷이 잘 맞는다면 아직은 아닌 것이다.

『상식으로 살고 있나요?』 129쪽





한 살 더 먹는 것에 대해 좀 당당해도 된다. 그리고 즐겁게 추억에 잠겨도 좋다. 추억을 꺼내든다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지금 꺼내들지 않으면 더 기억에서 희미해지니까, 그리고 지금은 누구에게나 이전의 여행은 '추억'이니까. 사라져 버리기 전에 꺼내 들어 먼지 털고 보듬고 아껴야 그 기억도 오래갈 거니까.



요즘 들어 지난 여행에 대해 떠올리다 보니 추억이 깊어지는 만큼 아쉬움도 컸나 보다. 하지만 인생의 어느 순간이든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아직 '노화'는 아니니 좀 더 즐거운 마음으로 추억을 꺼내 들어야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눈부신 시간들이라 생각하면서, 오늘도 여행의 추억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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