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피, 그곳의 모든 것은 '돌'

by 호접몽


여행을 떠올리다 보니 어디부터 꺼내들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여행지 하나씩 떠올리며 예전 사진을 들춰보고 추억에 잠기다 보면 시간이 너무 훌쩍 지나버릴 것 같아서 살짝 아껴두고 있었다. 그렇게 그냥 그날그날 떠오르는 상념에서 소재를 팍 낚아채고 있는데, 오늘은 『어쩌면 글을 잘 쓰게 될지도 몰라』에서 소재를 발견해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본다.




Try 35 돌을 관찰해보세요

돌 안에는 눈 속에 찍힌 발자국, 날아오르는 새들 같은 잃어버린 기억들, 또는 시간에 의해 왜곡된 기억들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찰스 시믹이라는 시인은 「돌」이라는 시에서 "돌의 표면은 수수께끼, 누구도 그 대답을 알지 못한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돌을 관찰하며 무슨 생각을 했나요?

『어쩌면 글을 잘 쓰게 될지도 몰라』 134쪽




맞다, 그거다. 나에게는 '돌' 하면 떠오르는 곳이 있다. 그곳이야말로 "돌의 표면은 수수께끼, 누구도 그 대답을 알지 못한다"라는 시와 잘 어울리는 곳 아니겠는가. 아무것도 모른 채 첫 여행을 갔다가 너무도 설렜던 곳, 꼭 한 번 다시 가봐야겠다고 결심하고는 다시 찾아갔던 곳, 그리고 다음에 언젠가 다시 찾을 때를 위해 언덕 위의 하누만 사원 하나 정도는 과감하게 안 보고 다음을 위해 남겨둔 곳, 그곳이 바로 인도의 함피다.






함피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주에 위치한 마을로, 과거 비자야나가르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1986년 이곳에 있는 기념물군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위키백과 내용 중)





처음 여행에서는 사진이 남아있지 않고, 이 사진들은 두 번째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다. 다시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에 드디어 다시 가게 되었을 때의 설렘. 다시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 중에서 다시 가서 후회가 없었던 곳이다. 그래서 마음에 그곳을 고스란히 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자연경관이 준 감동은, 웬만해서는 파괴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이 주는 감동은, 그래서 더 크고 깊나 보다. 거기에 있는 돌들은 예전에도 그러했고, 어쩌면 더 오래전, 내가 존재하기도 훨씬 더 이전부터,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을 테니까.




함피는 온통 돌이 가득한 곳이다. 함피를 본 어느 여행가는 이 세상에 있을 수 없는 풍경이라고도 했고, '신들이 가지고 논 공깃돌'이라는 표현도 있다. 나에게는 가기 힘든 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 곳이다. 그곳에 가기 위해 야간버스를 타고 지칠 만큼 가다 보면 한동안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짧은 순간 그곳에 있었지만 꿈인 듯 아득해지는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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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처음 함피에 갔을 때, 가이드가 어느 특정 기둥을 두드려보라며 알려준 적이 있다.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지?' 돌을 두드렸는데 그런 소리가 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서 감탄했다. 이곳에 꼭 다시 가보고 싶었던 것도 그 소리의 기억 때문이었다. 돌기둥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름다운 연주였고, 시였고, 낭만이었다. 다시 가면 어디쯤인지 알 것 같고, 가서 다시 두드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다시 가니 워낙 넓고 죄다 돌이어서 거기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고, 어쩌면 출입 금지 푸른 표지판이 있는 그곳이었나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두 번째 갔을 때 가이드가 다른 기둥들에도 소리가 난다며 두드려보라고 했는데 그전의 느낌이 아니었다. 결국 더 이상은 들을 수 없는 소리이기에 천상의 소리로 기억에 남아있는 것 아닐까. 기억 속에서 미화되는 것은 추억만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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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가득했던 그곳은 자연이 만든 작품이 즐비해서 엄청난 스케일에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처음에는 명화가 눈앞에 있어서 하나하나 경이롭지만 그곳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죄다 명화인 데다가 자칫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니 말이다. 이곳은 그래서 가이드 동행하여 다녔다. 적어도 길을 잃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조금 더 보고 싶은 마음과 그러할 수 없었던 애틋함이 더해져 손에 꼽을 만한 여행지로 기억되나 보다.



오늘은 그곳의 돌은 아니지만, 이곳에서도 만만치 않게 오랜 세월 자리 잡고 있는 돌의 소리를 들어봐야겠다. 어쩌면 돌이 들려주는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을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돌에게 말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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