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킬로그램의 골칫덩어리

by 호접몽


오래전 일기를 꺼내 들어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때의 나도 나였을까?' 궁금한 것이다. 가끔은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정말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고?'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쯤 되면 내가 나 맞는지 헷갈리는 지경에 다다른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의 뇌과학으로 인류를 통찰한 내용을 담은 책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모든 세포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100퍼센트 바뀝니다. 나라는 존재가 나의 몸이라면 1년 전의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1년 사이 100퍼센트 바뀌어 똑같은 것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20~30년을 살았다면 나라는 존재는 스물다섯 번 바뀐 셈이 되겠지요. 그런데도 왜 '나는 나'라고 생각할까요? 변하지 않는 것이 단 하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뇌세포입니다. 몸속 다른 것은 다 변해도 뇌세포는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95쪽)





오래전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지금의 나와는 딴판인 것이다. 내 몸 안의 세포는 이미 싹 다 바뀌어버린 것이다. 물론 그중에 '뇌세포'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나'라는 명목이 유지되는 것이니, 내가 나는 맞긴 맞다.



크기로 보자면 그저 '1.4킬로그램'일뿐인 뇌, 하지만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와 세상을 해석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우리 뇌라고 하면 좀 더 커다랗게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결심하지만 뇌는 비웃는다』에 보면 우리가 뇌에 하는 착각을 알려준다. 뇌는 발전적일 것이라는 착각, 뇌는 치밀할 것이라는 오해, 뇌는 성실할 것이라는 기대, 뇌는 주도적일 것이라는 믿음, 뇌는 스마트할 것이라는 환상이 바로 그 착각들이다. 아마 그 책의 차례만 보아도 웃음이 나올 것이다. 오늘 나의 뇌가 특히 좀 그러고 있다.



나도 할 만큼 해봤거든요? _ 도전의 순간, 뇌는 안주한다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못했어요 _ 반성의 순간, 뇌는 핑계를 댄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 _ 나는 고민하지만 뇌는 무시한다
툭하면 딴생각 _ 나는 집중하지만 뇌는 딴생각을 한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저 사람보다 훨씬 잘해 _ 성실한 나, 게으른 뇌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나를 도와줄 거야 _ 지시하는 나, 무시하는 뇌
내가 진짜 똑똑히 기억하는데... _ 기억한다고? 뇌는 다 잊어버린다
누구나 열심히 했다고 말한다 _ 노력한다고? 뇌는 삽질만 한다

『나는 결심하지만 뇌는 비웃는다』 중에서




나는 집중하지만 뇌는 딴생각을 하고 있고, '내가 마음만 먹으면 잘해'라고 생각은 하지만 뇌는 게으름을 부리고 있다. 사실 어젯밤에 쓰려고 했던 소재가 분명 있었는데, 지금 뇌는 그것을 통째로 잊어버리고서는 열심히 삽질하고 있다.



오늘은 그냥 내 뇌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커피나 한 잔 마셔야겠다. 나는 결심하지만 뇌는 비웃고, 그렇게 삽질하는 뇌를 나도 비웃어본다. 내가 뇌인지, 뇌가 나인지, 1.4킬로그램의 골칫덩어리다. 푹 쉬다가 내일쯤 뇌가 어느 여행을 떠올릴지 기대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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