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작은 믹스커피와 함께 한다. 안 좋은 습관인 거 안다. 한 때 끊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며칠 안 먹고 보니 건강이고 뭐고 내 삶이 행복하지 않은데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루 한 번은 챙겨 먹어야 아무렇지도 않게 감정 기복 없이 글도 쓰고 책도 읽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여행을 할 때에는 믹스커피가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러 챙겨가도 거들떠도 안 보고 현지의 음료를 먹게 된다. 거기에는 '여기까지 왔는데 굳이'라는 심정도 있고, 그곳을 여행할 때에는 그곳 음료가 맛있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땅에서 그 사람들이 맛있게 즐기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여행을 마치고 오면 또 이상하게도 여행지에서 그렇게 맛있게 마셨던 음료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별로 당기지 않는다. 맛깔나지 않고 그저 '그때 맛있게 마셨는데… '라면서 추억팔이용 음료로 전락하는 것이다.
『세계사를 바꾼 6가지 음료』를 읽다 보니 이런 말이 있다.
갈증은 굶주림보다 더 고통스럽다. 먹을 것이 없어도 수주일을 버틸 수 있지만 신선한 음료가 없다면 며칠도 버티기 힘들 것이다. 음료는 숨 쉬는 일 다음으로 중요하다.
『세계사를 바꾼 6가지 음료』 12쪽
그러고 보니 '음료' 정말 중요하다. 너무 덥고 힘들어 지칠 때에는 입맛이 없어서 밥은 먹기 싫어도 음료는 당긴다. 온몸의 세포를 깨워주고 힘을 내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그 순간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문득 여행 중에 만난 음료들이 떠오른 것이다. 현지 맥주부터 커피, 차 등 우리가 잘 아는 것부터 낯선 음료까지 음료로 기억하는 여행도 흥미롭다.
인도 콜라인 (약간 간장 맛이 난다고 해야 할까?) 독특한 캄파콜라(지금도 있으려나?), 인도 로컬 콜라 브랜드인 Thumbs up은 코카콜라보다 더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레모네이드 맛이 나는 림카는 인도 여행 중에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그리 많이 사 마셨건만 지금은 이름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검색해서 알아냈다.
현지 물가를 반영한 금액 설정에 현지화 전략에 따라 약간씩 다른 메뉴도 구경할 겸, 그곳에 들르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볼 겸, 여행 중 한 번은 그 나라의 맥도날드에 들르곤 했다. 각국의 콜라 맛이 약간씩 다른 것도 신기했고, 특히 인도에는 베지테리언 메뉴가 따로 있는 것과 당연하겠지만 소고기는 사용하지 않는 것, 햄버거 빵 부분에 인도 향신료 지라가 들어간다는 것도 특이하게 다가왔다.
프랑스에서 지치도록 골목길을 헤맨 후 카페에 자리 잡고 '봉쥬흐~ 엉 카페 실부플레' 하면서 마셨던 커피는 피로가 싹 가시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왜 유럽 여행 중 에스프레소 잔에 홀짝 마시는 커피만 마셨던 것일까. 대부분 흔히들 마시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장실 문제도 있었다. 화장실을 찾기 힘든 데다가, 화장실 이용에 1유로 정도의 돈을 지불해야 하니 굳이 커다란 컵에 있는 음료를 다 마시고 열심히 다니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기나긴 기차 여행에서 인도의 짜이 장수가 "짜이짜이짜~~~~이!" 외치며 지나가면서 슬쩍 나를 쳐다보면, 아마 짜이 한 잔 사 먹을 고객 같아 보였을 것이다. 나는 덥석 기회를 잡아 짜이 한 잔을 마셨다. 예전에는 1회용 도기로 짜이 한 잔 마시고 나서 창문 밖으로 던지면 되었다. 한 잔 마시고 기분 좋게 여행을 이어갔던 순간이다. 인도 특유의 향신료가 느껴지는 마살라 짜이는 여행의 피로를 풀어주는 데에 효과적이니,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단순히 짜이 한 잔인 것만은 아니다.
그중 단연 인도 바라나시에서 마신 짜이가 떠오른다. 그곳은 갠지스강의 도시다. 누구나 그곳에 가면 진지하게 삶과 죽음을 바라보며 고뇌한다. 버닝가트(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사라지는 이들은 과연 어디로 가는 걸까?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해 철학적 사색을 하게 되는 곳이다.
새벽에 보트를 타고 해돋이를 바라보고, 좀 더 가라앉은 마음으로 버닝가트를 한참을 바라보고 생각에 잠겼다. 시간이 흐른 후 짜이 한 잔이 간절해져 근처 찻집에 들어가 짜이를 마셨다. 다 마시고 나서 문득 주전자 가득 물을 받아오는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갠지스강의 강물로 짜이를 끓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온몸의 세포가 이상반응을 보였다.
하긴 거기에서 차를 끓일 때에 굳이 정수기 물로 끓였겠는가. 그곳에서 만드는 음식과 차에 쓰이는 물은 당연히 갠지스강에서 길어오는 것일 텐데,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상한 것 아닌가. 그때 난 깨달음을 얻었다. 원효대사가 해골 썩은 물을 마셨다는 일화를 떠올리면서 말이다. 일체유심조. 모든 것은 내 마음의 작용이다. 그런데 분명 깨달음을 얻은 줄 알았는데 해탈 이런 거 안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