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함에 대한 시선
손가락이 베였다. 기분이 나쁜 게 칼도 종이도 아닌 레토르트 포장지에 베였다. 급한 마음에 택배 온 물건을 냉장고에 무더기로 집어넣다 슥.
소근육이 발달해서 그나마 자랑스러운 손재주를 위해 꽤 조심하는 편인데, 개뿔 보기 좋게 베였다. 그것도 검지 손가락을. 얼마나 베인 지도 모르고 급하게 손가락을 입에 넣어 지혈을 하는 데 혓바닥 가득 비릿한 피 맛에 손이 베인 걸 실감했다. 그제야 손가락이 아파왔다. 누구를 욕할 수도 없고 탓하지도 못하고. 손가락이 베이는 것만큼 억울한 일이 있을까. 대충 피를 멈추고 반창고를 붙였다.
별일 아닐 꺼라 생각하며 눈을 붙였다. 손끝이 따끔 거리지만 다음날이면 꽤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며.
착각이었다. 불편함은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이불을 개는 것도 불편했다. 뭔가 내 다친 손가락에 힘을 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에 아주 요상한 손 모양으로 이불을 개었다. 세수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면도도 힘들고 설거지도 힘들고. 오른손잡이 치고 내가 왼손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검지 하나 다쳤다고 모든 게 불편했다.
반창고는 하룻밤 사이 거뭇해지고 냄새가 났다. 이렇게 된 거 모든 준비를 다하고 반창고를 갈아야겠다는 생각에 집안일을 얼른 마무리했다. 뭐 하나 할 때마다 따끔따끔. 혹시 피가 다시 날까 봐 힘도 못 주고 어정쩡하게 집 정리를 했다. 맨날 하는 건데 시간은 배로 걸리고…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있었나?
하다 하다 끝에 가서는 다친 내 검지가 원망스러웠다. 아니지 원망할 건 내 부주의인가. 이게 다 내가 멍청해서 그런 건가. 어쨌든 반창고는 운명을 다했고, 갈아 끼울 때가 되었다.
축축해진 반창고를 갈며 이 검지가 내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 이런 경험이 비단 손가락 다친 것에만 해당되진 않으니까. 내 인간관계에서도 충분히 느끼던 바였다. 사소한 사건 하나로 내가 누군가의 소중함을 느꼈던 상황들이 기억났다. 그때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더 좋은 관계로 있을 텐데. 그 사람의 소중함을 미리 알았다면 내가 좀 더 조심했을 텐데. 후회하면 뭐하냐 이미 물은 엎질러진 것을. 어휴 바보.
반창고를 여니 쭈글 해진 내 손끝이 보였다. 은근히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미안하다 손가락아 내가 조금만 주의했어도 네가 이 꼴은 아니었을 텐데! 반창고를 교체하고 머릿속엔 지금 내가 당연하다는 것들이 떠올랐다. 나와 함께하는 친구들, 일방적으로 사랑을 퍼주는 부모님, 당겨주고 밀어주는 동료들. 이게 당연한 건가. 절대 그러지 않을 텐데 왜 난 자꾸 당연하게 받아들였을까. 내 손가락이 멀쩡했던 것도 당연한 게 아니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 안다는 말을 이때 쓰는 건가? 아무튼.
손가락 하나 내어주고 삶을 반성하는 내 모습이 조금은 웃겼지만, 감사했다. 그래 결국 내 삶에 당연한 건 없군. 항상 주의를 하며 살아야겠군. 손 베인 게 대수냐, 내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을 배웠는데. 이 검지 다친 불편함을 잊고 살진 말아야겠다 다짐하고, 부디 오늘 손 씻을 일이 많이 없기를 빌었다.
얼른 나아라 검지야. 앞으로 더 조심할게. 그리고 모두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