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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i Jul 04. 2024

드라마 대본 각색 일기 1

소설이 드라마로

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하는 일을 맡은 지 10개월.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다 결국 3주,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보통 작업 시간은 새벽 4시부터 6시 30분. 그러니 3주 동안 4시부터 멍... 하게 있는 새벽이 이어진 거다. 이런 때 잠이라도 잘 오면 좋은데, 불안한 뇌는 4시면 일어나라고 눈을 뜨게 만든다. 그래서 한글 대신 인터넷 창을 열고 각색 일기를 적어본다. 도저히 대본을 쓸 자신이 없다. 


외부 상황. 

외국 소설이다. 소설 판권은 사지 못했지만, 해당 출판사는 내가 속한 제작사에만 팔기로 구두 약속을 했단다. 그리고 얼마 전 들은 사실. 가계약이 1년. 즉 1년 안에 내가 쓴 기획안, 대본을 본 후에야 본 계약을 하겠다고. 긍정적으로 말하면 시간이 좀 있다는 거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아직 입봉 못한, 실무 경험도 거의 없는 어떤 글 쓰는  30대 여자 사람이 쓴 글을 믿을 수 없으니, 보고 줄지 말지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일 년 전부터 소설 구매가 불확실한 상황이라, 나는 이 소설 판권을 샀다고 생각하고 작업하는 중이다.  불확실하지만 하면서도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어떤 기자님이 책에서 그랬다. 왜 배운다고 생각하지? 수익을 내야지! 그렇지. 돈 받았으면 수익을 내야지. 돈 되는 대본, 즉 사람들이 많이 볼 대본을 쓰라고!!! 가공한 말로 대중성 있는 대본이라고 하지.  


내부 상황. 

그래서 나는 어땠냐.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꽤 아침 패턴이 규칙적인 사람이다. (오후엔 대부분 누워있어도... 아침만큼은 막 내가 박해영 작가님, 노희경 작가님, 박연선 작가님이라도 된 것 마냥 아주 영감 있는 척 막 날카롭고, 막 열심이고, 막 분석하고...)  그래서 소설을 대본처럼 바꾸고, 읽고, 분석하고, 사람도 써보고 그랬다. 할 때는 나 이렇게 빨리 잘 되면 내년엔 입봉 하겠는데? 아자! 했다. 그리고 기획안과 1,2부 대본을 넘겼다. 결과는? 좋았으면 내가 지금 브런치 말고 3부 대본을 쓰고 있었겠지.. 


모든 초고는 쓰레기랬다. 하지만 난 쓰레기를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지. 

헤밍웨이 님이 모든 초고는 쓰레기라고 했는데, 난 13년 전 첫 남자 친구가 준 야구공까지 간직하는 사람이다. 미련은 절대 절대 절대!! 아니고.. 내가 소중히 여겼던 것을 함부로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지나고 보니 아무리 혹평을 받았어도 나는 내가 쓴 글들, 초고를 대부분 간직하고 있다. 나 정말 쓰레기를 많이 생성했는데...  진짜로 프린트 많이 사용해서 자원 낭비도 했는데... 


아 뭐 어쨌든, 내 각색 초고는 정말 별로 (=버려라)라는 평을 들었다.  

회의를 하고 3일 정도는 잊었고, 이후 며칠 동안은 열심히 걸었고, 어제는 의욕이 없어서 도서관이나 갔다가 들어왔다. 인물한테, 너는 도대체 뭐가 문제니? 하고 묻다가, 내가 문제잖아! 자책했다가, 그럼 나는 왜 또 같은 문제니? 너는 왜 극복을 못 하니? 그럴 거면 왜 드라마를 쓰니? 하다가 멈칫.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묻는 말. 그래, 넌 왜 드라마를 시작했더라. 

대본을 다시 쓰려면 그 마음을 다시 붙잡아야 한다. 


난 왜 드라마를 시작했더라, 

난, 드라마가 위로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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