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른이 된다는 것

by 샌디노트


어릴 적 집에서 밥을 먹을 때, 엄마는 밥에 늘 검은콩을 넣으셨다.


당시의 나에게 콩은 밥의 식감을 해치는 콩이라는 존재를 너무 싫어했던 나는, 콩을 쏙쏙 빼서 옆에 빼놓거나 밥 속에 콩이 여기저기에 박혀있는 콩밥에서 콩을 빼고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청을 하곤 했다.


'콩밥 반대 시위'를 하던 나와는 달리 콩을 좋아하는 언니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였다.


오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는데, 밥을 받아보니 흰쌀밥이 아닌 검은콩이 들어간 콩밥이었다.


식당에서는 보통 흰쌀밥이 나오는데 흰쌀밥이 아니라는 점이 반가웠고, 밥에 콩이 들어가 있다는 게 반가웠다.


무의식중에 콩을 쏙 빼먹는 나를 보며,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언제부터 콩을 좋아하기 시작했을까?


과거의 나와 대조되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서, '오 콩도 먹고 어른 다 됐네-'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어른이 된다는 것은 뭔지 떠올려봤는데,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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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


흰쌀밥보다 잡곡밥을 좋아하게 되는 것


어릴 때는 물컹거려서 맛없다고 생각했던 회 맛에 눈을 뜨게 되는 것


사약 같던 커피가 없으면 안 되는 존재가 돼버리는 것


쓰기만 했던 술이 가끔은 달게 느껴지는 것


몸이 아프면 버티지 않고 병원을 찾게 되는 것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엔 추어탕을 찾게 되는 것


지금 당장보다는 내일을, 나중을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경험이 많아지는 것


동시에 경험해야 할 것 역시 많아지는 것


하지만 자기 검열은 심해지는 것


자신감이 점점 줄어드는 것


그로 인해 도전하는 게 어려워지는 것


따지는 게 많아지는 것


그래서 선택이 어려워지는 것


왜 그러실까 싶던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


그래서 부모님께 괜한 잔소리를 하게되는 것


집에 오는 길에 왜 따뜻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후회하게 되는 것


하지만 또 잔소리를 반복하고 있는 것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


소화 능력이 떨어지는 것


얼굴에 찍힌 베개 자국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


세금을 무서워하게 되는 것


막막해지는 것


하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해지는 것


맛있는 음식을 고를 때 피자, 파스타보다는 따뜻한 한식을 떠올리게 되는 것


용돈 받을 일이 없어지는 것


반대로 지갑을 열 일은 많아지는 것


축하할 일이 많아지는 것


위로할 일 역시 많아지는 것


책임질 것이 많아지는 것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알게 되는 것


나만의 울타리를 만들게 되는 것


나만의 자아가 뚜렷해지는 것


한 학년이 올라가고, 의젓한 고등학생이 된다는 설렘에 새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면,


한 살 더 먹는다는 두려움에 해가 바뀌는 것을 애써 모르는 척하게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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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


어린 시절의 나를 떠나보내고 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굉장한 무게감과 압박감이 있는 시간이지만, 그저 상황을 놓고 보니 또 별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콩을 안 먹던 내가 콩을 좋아하게 됐을 뿐이다.


회를 안 먹던 내가 최고의 술안주로 회를 꼽게 될 뿐이다.


내게 일어나는 변화들을 과정이라 생각하며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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