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일을 해내지 못했을 때나, 내 실수로 인해 피해를 끼쳤을 때 우리는 죄책감을 느낀다.
이때 느끼는 죄책감은 부정적인 쪽에 가까운 감정이다 보니, 예상치 못한 죄책감을 느낀 날이면 우리는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그 감정이 심해지면 결국 다른 일을 하는데도 방해가 돼서, 우리의 일상에 지속적으로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실수를 저지른 친구를 위로할 때 "죄책감 갖지 마"라는 말을 건네지만, 사실 적절한 죄책감은 우리에게 필요한 감정이다.
모든 감정에 이유가 있듯이, 우리가 죄책감을 느끼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애초에 죄책감은 인간이 발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발달된 감정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해 꼭 가지고 있어야 하는 감정인 것이다.
난해한 상황에서 주변을 살피고 눈치를 보는 것처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적당한 죄책감을 가질 줄 알아야 상황을 개선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줄 알아야 사회적 존재로서 앞가림을 할 줄 알게 된다.
소위 '사회 부적응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떠올려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사회부적응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남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으며,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도 알지 못한 채 일상을 지낸다.
그로 인해 남들에게 주는 피해는 끊이지 않지만, 정작 자신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래서 적당한 죄책감은 필요한 것이다. 죄책감을 느껴야만 자신의 과오를 반추할 수 있게된다.
하지만 안타까운 점은 죄책감이 아무리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해도, 현대 사회, 특히 한국 문화는 우리에게 지나친 죄책감을 주입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할 때면, 그에 대한 노고를 인정해 주기보다는 부족했던 점을 언급하며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 무게감이 쌓이면, 결국 우리가 한걸음 더 나아가려 할 때 발목을 붙잡는 존재가 된다.
여기서 더 위험한 것은 그 죄책감이 만드는 악순환이다.
한 번의 실수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게 되면 결국 자신감을 잃어 또 다른 실수를 부른다.
그리고 그 실수는 더 큰 죄책감으로 이어진다.
결국 우리는 시도조차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고, 죄책감이라는 감정에 휩싸여 주변만 살피다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한 번의 실수로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생은 마치 긴 여행과도 같다.
여행을 하던 중 길을 한두 번 잘못 들었다고 해서 전체 여정을 망치지는 않는 것처럼, 당장의 실수와 죄책감이 우리의 인생을 망칠 수 없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다음 걸음을 내딛느냐다.
'승리의 발견'이라는 말이 있다.
실패 속에서도 '작은 승리'를 발견하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평소에 비해 늦잠을 잤다면, 늦게 일어났다고 자책하기보다는 숙면을 한 덕분에 충분한 휴식을 하게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위안, 합리화가 아니다.
그다음을 위해 힘을 모으는 지혜다.
이렇게 때로는 의도적으로 죄책감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상황에 압도되지 않고, 훌훌 털어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그렇다고 모든 죄책감을 버리라는 말은 아니다.
죄책감이 없는 삶은 곧 책임감이 없는 삶과도 같다.
중요한 것은 그 둘 사이의 균형을 찾는 일이다.
과도한 죄책감은 우리가 가진 엄청난 능력을 희미한 것으로 만들 뿐이다.
우리가 가진 역량이 죄책감이라는 그늘에 가려지지 않도록, 자기 자신에 대한 인정, 객관화, 위로를 통해 적당한 빛을 비춰주자.
죄책감에 무던해지지도, 죄책감에 압도되지도 않는 우리가 되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