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로 살면 좋은 이유
나는 늘 "용의 꼬리" 같은 삶을 살았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내가 그렇게 느낄만한 사건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첫 번째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이다.
당시 전교생을 대상으로 달리기 토너먼트를 진행했는데, 상위 5명은 서울시 서부교육청 소속 육상부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체육시간이었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고, '서울시 육상부'라는 타이틀이 너무 멋지게만 느껴졌던 나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소심한 학생이라 티는 못 냈지만 마음속에서 의욕이 불타올랐다.
그렇게 토너먼트 당일,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였다.
무작위로 다섯 명을 선발해서 그중에서 일등을 뽑고, 그리고 다음 그룹에서 또 일등을 뽑고.
그렇게 여러 번을 추리고 추려서 최종 10인을 선발했고, 나도 다행히 10인 안에 들었다.
최후의 10인을 살펴보니, 모두 나보다 팔도 길고, 다리도 길고, 키도 월등히 커서, 내가 올려다봐야 하는 정도였다.
키가 작았던 나는 왠지 더 작아졌다. (아쉽게도 키는 여전히 작다)
그들의 한 걸음은 나의 한 걸음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위 당시 '잘나가는 친구들'도 있어서 왠지 더 위축됐다.
운동장에는 그 친구들의 이름을 외치는 응원소리가 가득했다.
하지만 출발 신호가 들리자마자 이 악물고 뛰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전력질주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뛰었다.
그렇게 결승선 넘고 보니, 나는 10명 중 5등을 했다. 육상부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된 것!
5명 중 5등이지만, 어쨌든 문 닫고 육상부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일화는 고등학교 시절이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때는 심화반이라는 특별반이 있었는데, 전교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추린 반이었다.
심화반에 들어가면 정규 수업 전에 진행되는 특강 시간에 조금 더 수준 높은 수업을 들을 수 있었고, 야자 시간에는 전용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사실 그런 것보다, 심화반에 소속돼 있다는 일종의 명예가 가장 큰 보상이었다.
하지만 내가 심화반에 들어갈 거라곤 꿈도 꾸지 않았다.
공부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전교에서 내로라하는 학생은 아니었기에 지레 포기했다.
그저 심화반에 들어갈 법한 친구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리고 나는 믿기 어려운 말을 들었다.
"혹시 심화반 관심 있니?"
나와는 관련없다고 생각했던 심화반이라니, 갑자기 왜 여쭤보시나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혹시 관심 있다면 심화반에 넣어줄게. 사실 거의 막바지 성적이긴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 공부하면 너에게도 더 도움이 될 거야. 하지만 거기에 들어간다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야 해 할 수 있겠니?"
당시에도 가진 건 열정 뿐이었던 나는 당연히 열심하겠다고 말씀 드리고, 심화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일명 '용의 꼬리'의 삶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육상부에서도 심화반에서도 늘 고난의 연속이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나보다 신체 조건이 좋은 친구들을 이길 수 없었다.
심화반에서 내가 아무리 오랜 시간 공부를 해도, 이미 머리가 좋은, 소위 천재라고 불리는 친구들은 이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런 마음이 나에게 굉장히 큰 압박을 주었다.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돼라"라는 격언이 당시에는 굉장히 영향력 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소속한 집단에서 늘 말단에 있는 학생이라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런 환경 덕분에 나는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집단에서 늘 1등이었다면, 항상 선두를 달리고 있던 학생이었다면 더 발전하려는 의지보다는 그것을 적당히 유지하려는 노력 정도만 하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 늘 내 앞에 있었기에 나도 조금 더 나아가 보려 노력하는 환경에 자연스럽게 조성됐다.
더 성장하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내 노력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며 좌절하고, 스스로 다독여 주는 시간을 가지며 많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나보다 더 나은 친구들'과 함께한 덕도 상당히 컸다.
만약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공부를 못하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면 어린 마음에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학생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마인드셋은 성인이 된 나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같은 일을 해도 누군가는 빨리 지치는 반면, 나는 어린 시절 맷집을 많이 쌓아온 덕분인지 덜 지치고 덜 스트레스받는다.
어차피 나는 용의 꼬리이기 때문에 이제는 되려 마음에 여유가 있다.
내 집단에는 늘 나보다 더 나은 분들이 있기에 기본적으로 겸손해지고, 나도 그들과 동화되려는 과정에서 속에서 더 나은 사람이 돼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나를 안주하지 않게 해주는 이 환경을 즐기고 있다.
이제는 꼭 뱀의 머리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끄떡없을 것 같은 기업들도 휘청이는 마당에, 몸집이나 위치는 중요하지 않게 됐다.
그보다 중요한 건 내가 더 나아갈 수 있는, 그리고 나에게 그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주는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룰 것을 다 이뤄서 멈춰 있으려는 마음보다는, 앞으로도 헤쳐나갈 것이 많으니 역경을 오히려 즐기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 더욱 건설적인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용의 꼬리들이, 자신만의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기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