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키워야할 무기는 "성적"이 아닌 "성실"
최근 스레드에 "학창시절을 잘 보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적었다.
문득 들었던 사소한 생각을 적었는데, 한 분께서 리포스트를 해주셨다.
그 반응을 보고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정리해 보고 싶어졌다.
학창시절을 잘 보내야 한다는 말에는 보통 고리타분하다는 반응이 따른다.
어릴 적 부모님과 선생님께 수없이 들었던 잔소리라,
속된 말로 "젊은 꼰대"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사실 실제로 젊은 꼰대 맞음)
학창시절을 잘 보낸다는 말이 "공부를 잘해야 한다"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방향은 조금 다르다.
학창시절을 잘 보내야 하는 이유는 "성적"보다는 "성실"을 키우기 위해서다.
학생이라는 시기에는 수많은 규율이 존재한다.
그 안에서 반항심을 키웠냐, 성실함과 인내심을 키웠냐에 따라 성인이 됐을 때 출발선이 달라진다.
학창 시절 동안 쌓은 공부에 대한 태도,
친구와 선생님을 대하는 자세,
모르는 지식을 받아들이며 버텨낸 인내심과 끈기, 지구력
그 모든 것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요즘의 나를 돌아보면서다.
요즘 나는 하프 마라톤을 목표로 러닝 훈련을 받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훈련일 수 있지만, 평소 가볍게만 뛰던 나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정이다.
훈련 기간 동안 휴식 일은 일주일에 단 하루뿐이다.
나머지 6일은 매일 뛰어야 하고,
한 번도 뛰어보지 않았던 거리와 페이스로 스스로를 테스트해야 한다.
솔직히 쉬고 싶은 날도 있고, 뛰다가 한계가 와서 중단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내고 있다.
‘숙제’라는 단어를 들으면, 학창시절에 마음속에 새겨진 묘한 압박감이 되살아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숙제는 반드시 기한 내에 해야 한다’는 주문이 머릿속에 맴돈다.
끝내지 않으면 도무지 마음이 편해지지 않는다.
학창시절의 나는 엘리트 학생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 상위권에 있었고, 특히 성실함으로 보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반장이라는 제도가 생긴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창시절의 마지막인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반장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책임감과 성실함, 그리고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친구들을 통솔하는 과정에서 인내심이 생겼다.
반장으로서 모범을 보여야 했기에 숙제는 반드시 기한 내에 해가야 했고,
지각이나 결석을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렇게 12년 동안 쌓아온 습관과 태도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금도 시간표가 있으면 지켜야 할 것 같고, 주어진 일이 있으면 끝내고 싶어진다.
학창시절을 잘 보낸다는 건 공부를 잘하고, 성적이 높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학생의 입장에서 길러야 하는 것은 "성적"보다는 "성실"이다.
학생 시절에 규칙과 환경을 어떻게 대했느냐에 따라,
사회인이 되었을 때 회사의 업무와 규칙, 더 나아가 사회의 법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다.
예를 들어 모르는 문제를 끝까지 붙잡고 씨름하던 학생이었다면,
사회에 나와 처음 해보는 일 앞에서도 어떻게든 해결하려는 자세로 임하게 된다.
기한 내에 숙제를 꼭 해가던 학생이었다면,
아무리 바쁜 상황에서도 업무의 타임라인을 지키려 노력한다.
반대로 학창시절에 성실하지 못했고 규칙을 자주 어겼던 학생이라면,
사회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물론 태도는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성실하지 못했던 학생이 성실한 어른이 되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때는 자유는 없고 지켜야 할 게 많았지만, 성인이 되고 나면 자유가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30, 40대의 마음가짐과 태도는 50, 60대에 삶을 보내는 자세와 연결될 것이다.
그러니 하루하루 충실하게, 어제보다는 1%만 더 나아질 수 있는 일상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