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인생수업은 연애와 사랑
수많은 만남과 수많은 이별을 했다.
학창 시절, 같은 학교 친구와 나눴던 풋풋한 연애부터
결혼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30대의 연애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 다양한 형태의 연애를 해왔다.
받기만 했던 연애도 있었고, 반대로 나만 노력하고 있다고 느낀 연애도 있었다.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던 관계도 있었지만,
서로의 가장 좋지 않은 모습을 끌어내던 관계도 있었다.
사랑 덕분에 웃는 날이 많았던 만큼, 힘들었던 날도 적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나는 연애를 마무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만남의 기회가 생기곤 했다.
운이 좋았던 건지, 타이밍이 절묘했던 건지 모르겠지만 거의 늘 그랬다.
주변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말할 정도였고, 사실 나 역시 그럴 때가 있다.
생각지도 못한 자리에서 소개를 받거나,
우연히 알게 된 사람과 자연스럽게 관계가 발전하기도 했다.
이별은 ‘끝’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관계의 ‘시작’이 된다는 걸 그 과정에서 느꼈다.
연애는 참 신기하다.
지구 어딘가에서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던 낯선 사람과,
어느 순간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어제까지 무엇을 했는지도 몰랐던 사람과
가까운 친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된다.
때로는 몇십 년을 함께한 가족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는 단짝이 되기도 한다.
연애의 시작과 과정도 신기하지만, 연애의 마무리인 이별 역시 못지않게 신기하다.
그렇게 둘도 없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남이 돼버리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는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 나누던 사람이, 이제는 소식을 알 길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다.
연애를 할 때는 아침에 눈을 떠서 저녁에 눈을 감기까지 연결돼 있던 사이다.
아침에 눈을 떠 “잘 잤어?”를 묻고,
점심에는 “뭐 먹었어?”를 나누고,
저녁에는 “오늘도 고생했어”를 건네며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던 사람이 사라져 버린다.
연애는 '우리 만나볼까요?' 하는 일종의 '제안과 승낙'의 과정이라도 있었다면, 이별은 그런 것도 없다.
이별은 한쪽의 통보로 이뤄진다. 가끔은 그 통보마저 없이 사라질 때도 있다.
이게 우리가 이별을 그토록 아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사라졌다는 것보다, 함께하던 그 '일상'이 사라졌다는 것.
어떤 대단한 추억보다도, 내게 익숙하던 시간들이 낯선 게 됐다는 느낌은 사람을 공허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연애를 한다.
이별의 고통이 두려워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 건 내겐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내게 이별의 아픔보다는 사랑의 효용이 더 크다.
다시 말해 아픔으로 인해 효용을 포기하는 것은 손해 보는 일과도 같다.
물론 이별의 과정은 결코 즐겁지 않다.
여러 번 겪어도 여전히 아프고, 가능하다면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기쁨은 그 고통보다 늘 더 크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주말에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나누는 가벼운 대화도 즐겁고,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왔는지 들여다보는 깊은 대화도 흥미롭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그렇다.
하지만 그 대상이 잠재적인 연애 상대라면, 더 흥미롭고 조금 더 몰입하게 된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또 이별을 겪을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이별은 고통이지만, 이별을 겪고 이겨내는 과정에서 배우는 점도 많다.
이별을 너무 '고통, 아픔'의 측면에서만 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과정만큼,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과정은 나를 더 성숙하게 한다.
그러니 사랑도, 이별도 모두 우리가 마땅히 겪어내야 할 시간들이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기억은 결국 나를 남기고,
누군가를 떠나보냈던 경험은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든다.
사랑하고 싶을 때 사랑할 수 있는 용기와, 한 때는 둘도 없던 사람을 보내줄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결국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모두 사랑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