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하는 엄마를 둔 덕분에 우리 아이들과 남편은 일찍이 엄마와 아내 없이 그들만의 시간을 즐기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남편은 특히 내가 주말을 끼고 비행을 가면 주말 내내 오롯이 두 아이의 육아를 전담했다.
남편이 카메라를 사고 싶다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기도 했고, 육아가 힘들다 보니 본인이 좋아하는 사진 찍기와 결합해 힘든 육아를 조금이나마 즐겁게 만들고자 함이었으리라. 사진 찍기가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차마 반대할 수 없었다. 원하는 카메라를 사서 마음껏 찍으라고 했다.
평소 남편은 입버릇처럼 라이카 카메라를 갖고 싶다고 했다. 나는 가격을 듣고 그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그런데 어느 날 카메라를 사 왔다. 라이카 필름 카메라이고, 단종된 모델이라 중고로 구매했다고 했다. 나는 처음에 거짓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정말 그의 손에는 라이카 M7이 들려있었다.
당시에는 너무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왕지사 이미 샀으니 앞으로 열심히 사진 찍고 아이들 커가는 모습 예쁘게 담아달라고 했다.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이런 것 같다. 내 마음대로만 되지 않는다. 나만큼이나 (어쩌면 나보다 더) 합리적이고 똑똑하지만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진 배우자의 뜻에 따라야 할 때도 있다.
예전의 나라면 카메라에 몇 백만 원을 들인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인데, 이 남자는 본인의 취미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 지출은 아깝지 않다. 특히 단순히 재미를 위한 취미가 아닌 아이들의 성장을 담아내는 건전한(?) 활동이기에 더욱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그걸 이해하게 된다. 아, 그만큼 돈을 들이니 또 더 정성이 더해지고, 본인이 정말 원하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니 더 재미있고 즐겁게 할 수 있구나. 덕분에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이 담긴 멋진 사진들도 많아지고 가끔은 내 모습도 예쁘게 찍어주니 처음 라이카를 보고 났던 화가 이제는 사라졌다.
이렇게 또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늘 내가 옳지는 않음을, 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지금 당장 얼마가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이 사진을 나중에 10년, 20년 후에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 얼마나 소중한 추억일까 생각해보면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이 참 식상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참 맞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요새 글쓰기의 주제를 잡기 위해서 내가 하는 일은 바로 사진첩을 뒤적이는 일이다. 이미지들을 보면 그때의 기억과 감정, 생각들이 떠오르기 때문에 사진을 보다 보면 주제와 어울리는 에피소드나 본문 내용이 떠오른다. 이번 글도 남편이 (비싼) 카메라로 찍은 컷들을 나만 보기 아까워서 이 사진들을 활용해보자는 생각에 쓰게 되었다.
원래 나는 사진에 찍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어색해서 싫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사진을 통해 보이는 나의 모습이 내 생각처럼 예쁘지 않기에 더 사진 찍히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의 사진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우는 모습도, 찡그린 모습도, 눈 감고 있는 모습도 그냥 그 존재 자체로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인데 가장 예쁘게 나온 베스트 한 컷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나는 날씬하지 않아요, 나는 못생겼어요, 나는 머리카락이 검은색이에요, 하며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면 (나도 그런 경험을 해봤고, 아직도 완전히 그 생각을 버리지는 못했기에) 부모로서 참 마음이 아플 것 같다.(하지만 누구나 거처야 할 성장의 과정이기에 잘 견뎌내기를 묵묵히 기다려 줄 수밖에)
그냥 그 존재 자체로 너는 세모여서, 너는 네모여서, 너는 동그라미여서 각자가 모두 예쁜 건데, 나는 동그라미가 아니에요, 나는 세모이고 싶어요, 나는 네모가 싫어요, 하며 속상해할까 봐 걱정이다. 자기 자신을 존재 자체로 사랑하는 것, 그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다시 라이카로 돌아와서 남편이 사진을 찍어주면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아내서 좋다. 라이카 M7은 필름 카메라이기 때문에 수동으로 초점을 맞춰서 사진을 찍는다. 나는 사진기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그게 뭐가 그리 어려울까 싶었는데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아이들을 필름 카메라로 정확히 포커싱을 맞춰 담아내는 것이 직접 해보니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쉬는 날 다 같이 외출을 나가면 보통 남편은 사진을 찍고 나는 아이들을 챙기기 바쁘다. 아이 둘을 어른 둘이 봐도 힘들다. 그런데 내가 없을 때도 남편은 아이들과 외출해서 사진도 찍고 아이들도 돌본다. 이게 대체 가능한 일인가? 통제 불가능한 4살, 5살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외출하는 것 자체도 망설여지는데 그 와중에 사진까지 찍다니 내 남편이지만 참 대단한 사람이다.
가끔 남편이 카메라 렌즈를 바꾸고 싶다거나 디지털카메라가 갖고 싶다는 말을 하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또 얼마가 깨질까 머릿속으로 숫자가 떠오르다가도 한 가정의 가장인데 알아서 현명한 선택을 내리겠지 싶어 알아서 결정하라고 쿨한 척을 한다.
나중에 보면 그의 선택이 옳았던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 내 옆에 있는 그 사람을 믿어보자. 내가 먼저 믿어주면 믿음직한 사람으로 어느새 변해있을 것이다. 결국 라이카도 좋은 선택이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