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은 힐링이다
승무원과 호텔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예전에는 호텔이 좋았다. 번쩍번쩍하고 깨끗한 곳에서 묵는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호텔이 싫어졌다. 좀 지저분하고 작더라도 서울에 있는 내 방, 내 침대에서 잠을 자고 싶었다. 누가 누웠을지 모르는 침대에, 누가 사용했는지도 모르는 수건을 쓰는 것이 불쾌하고 싫었다. 아마 비행으로 한창 스트레스받고 일 하기 싫었을 때였던 것 같다.
그러나 싫든 좋든 어쩌겠는가, 승무원에게 호텔은 제2의 집인 것을. 다행히 한 숨 자고 일어나면 정이 들어서 금방 익숙해진다. 그리고 나의 물건들로 하나하나 채우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두고, 좋아하는 노래나 유튜브를 틀어두면 금방 소중한 나만의 공간이 된다.
얼마 전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비행을 갔었는데 호텔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일단 외관도 크고 천장도 높고 굉장히 고급스러웠다. 웬만한 것에는 이제 놀라지도 않지만 이곳은 조금 특별한 느낌이 들었다. 프놈펜 소카 호텔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바로 화장실! 거짓말 안 보태고 우리 집 안방보다 훨씬 큰 화장실의 나무 세면대가 눈에 띄었다. 큰 창을 통해 강을 바라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욕조, 그리고 동작 센서를 인식해서 사람이 근처에 가면 자동으로 커버가 올라가는 변기까지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차마 변기 사진은 찍지 못했다. 그리고 자주 오작동을 하는 바람에 나중엔 조금 무섭기도 했다)
나를 위해 정성스럽고 가지런하게 정리되어있는 공간, 그 공간을 통해 위로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그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호텔을 찾고,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곳에서 목욕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욕조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따뜻한 물로 몸을 녹이기도 했다. 아기 엄마가 된 지금 호텔은 나에게 힐링 그 자체의 공간이 되었다. 일단 아이들에게서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휴식이고 힐링이다. (남편에게는 조금 미안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도 일단 내 컨디션이 회복되어야 다시 힘을 내서 육아를 할 수 있고 한 번이라도 더 웃을 수 있다. 내가 지친 상황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쉽게 짜증을 내기 때문에 나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코로나 19로 의도치 않게 거의 한 달 가까이 어린이집도 못 보내고 독박 육아를 하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더욱 절실하다. 얼른 코로나 19가 물러가기를! 나를 위해서도 아이들을 위해서도 말이다. 물론 그만큼 한국에 있을 때는 아이들에게 더 집중하려 하고 남편도 충분히 개인 시간을 갖도록 배려한다.
얼마 전 오랜만에 파리 비행을 갔을 때 호텔 방에 들어가는데 느낌이 묘했다. 4년 전과 같은 곳이었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느낌. 그리고 들었던 생각은 아, 여기도 나이가 들었구나!
처음 왔을 때는 새 호텔처럼 깨끗했는데 이제 보니 여기저기 세월의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벽과 욕조 사이 실리콘의 검은 때, 여기저기 울퉁불퉁 일어난 카펫.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묵고 갔을까. 그 호텔은 여전히 그곳에서 마땅히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었다.
이렇게 낯선 곳에서도 나에게 편안함을 준다는 것이 고마웠다. 예전에는 내가 많이 지쳐있었나 보다. 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요새 우리의 최애인 LA 호텔은 얼마 전 새로 지어진 곳이라 굉장히 최신식이고 쾌적하다. 특히 이곳은 층이 높아서 뷰가 참 좋다. 호텔이 좋으면 그 스테이션으로 비행을 가는 것이 즐겁다.
그래서 내가 내린 오늘의 결론은 호텔은 힐링이다. 아이들과의 복닥복닥이 매일같이 이어지는 요즘, 유난히 고요한 호텔 방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