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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며 인생을 배웁니다

8 작은 것들

by mindful yj

산에 오르다 보면 처음엔 잘 보이지 않던 작은 것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분주히 움직이는 아주 작은 개미들, 팔랑팔랑 그 무게의 가벼움에 못 이겨 거의 바람에 휘날리듯 날아다니는 나비들, 그리고 그 소리만으로도 긴장하게 만드는 벌들을 비롯해 서울 촌년인 저는 이름조차 모르는 작은 곤충들과 벌레들, 식물들이 가득합니다.


독이 있을지도 모르는 버섯들, 쏜살같이 나무 위로 올라가는 다람쥐인 듯 다람쥐 아닌 다람쥐 같은 청설모, 듣기 좋은 소리를 내는 새들까지 산을 걷다 보면 그 엄청난 생명력에 압도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한 인간인 나는 과연 어떤 존재일까 의문이 듭니다. 이 모든 자연을 정복한 위대한 인간일까? 이 자연을 훼손시킨 지구의 독재자인가? 그래 봤자 이 무더위에 홍수에 눈보라에 힘없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이 작은 생명들과 다를 바 없는 한낱 존재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나의 사소한 고민들, 걱정들이 이 자연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은 나를 전혀 비난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저 넓은 마음으로 안아주며 스스로 이 생각의 끝에 닿도록 인도합니다. 저항하지 않고 수용하는 법을 산을 통해 배웁니다.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자 어렸을 때 아무 생각 없는 저를 성당으로 이끈 엄마가 들으시면 노발대발하시겠지만 과거 세례명까지 받은 저는 지금 스스로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신이나 하느님이라는 존재를 부정할 생각도 없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있으니까요. 다만 내가 하느님이 있다고 믿으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믿으면 없는 것입니다.


다만 저는 이 자연과 우주를 믿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하나의 소우주로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믿습니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지도 딱히 남들을 위해서 거창하게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저 커다란 우주의 한 작은 존재로서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다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저는 산에서 초록이 모두 똑같은 초록이 아님을, 새로 돋아난 잎의 색상은 세상 그 무엇보다 연약하고 싱그러운 연두임을 보았습니다. 나의 초록은 어떤 빛일까요? 더 이상 싱그러운 연두는 아니지만 은은하게 아름다운 초록빛을 내고 있을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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