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화 같았던 COAR Moquegua 코아르 모케구아 학교
* 소재 특성상 인물 사진이 많아, 사진에 블러 및 모자이크 처리, 스티커 붙임 등이 많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미스 안젤라! 우와, 반가워요. 외국 선생님은 처음이에요.”
“선생님들이 한국에서 오셔서 너무너무 좋아요.”
“코아르 모케구아에 오신 걸 정말 환영해요. 우리 함께 잘 지내요. 미스!”
코아르 모케구아에서의 근무 시작일.
학생과 선생님, 그리고 교직원이 모두 모여서 뜨거운 박수와 함께 환영식을 해주었다.
태양신 인티를 섬겼던 잉카 제국의 후예들답게 저 하늘의 태양처럼 환하고 밝은 코아르 아이들, 그리고 그만큼 따스한 선생님들과의 시간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페루 교육부에서는 콜레히오 알토 렌디미엔토 Colegio Alto Rendimiento, 줄여서 코아르 COAR 라고 불리는 독특한 영재교육 시스템이 있다. 이 제도는 2010년경부터 시작된 국가 주도의 교육 프로젝트로,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뛰어난 학업 성취도를 보이는 영재학생을 선발하여 3년간 고등학교 전 과정을 무상 지원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코아르에 입학한 학생들은 교재, 학용품, 준비물, 교복, 노트북이나 헤드폰 같은 전자기기 및 악세서리까지 학습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모두 국가 예산으로 지원받는다. 현재 코아르는 페루 전역의 각 주에 하나씩 세워져 있으며, 집이 가깝든 멀든 전원 기숙사 생활을 원칙으로 한다.
남미에서는 보통 중학교, 고등학교가 나뉘어져 있지 않고 세쿤다리아 Educacion secundaria 라는 이름으로 통합 운영되는데, 페루에서는 이 중등과정 기간이 5년이다. 따라서 코아르에 입학한 친구들은 원래 있던 일반 중등학교에서 중학교 2년 과정까지 마친 후, 학교의 추천과 코아르 편입 시험을 거쳐 선발된 학생들이다. 출신 지역 코아르에만 갈 수 있도록 정해진 게 아니라 지역은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근처의 아레키파주나 타크나주, 푸노주, 쿠스코주, 심지어 리마 쪽 출신 학생도 있었다. 이 코아르 시스템의 근본적인 취지는 저소득층 영재들에게 더 나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페루 사회의 경직된 계층 구조를 완화하며 장기적으로 소득 재분배에 기여하는데 있다. 다만, 이러한 코아르 시스템이 엘리트 교육을 고착화한다는 비판도 꾸준히 존재한다.
페루 교육부 내부에서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렇게 독특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영재고등학교 코아르에 초등교사인 내가, 다른 파견 동료 선생님 및 퇴직 자문관 선생님과 함께 오게 되어 고등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다. 코아르 모케구아는 우리가 파견 오기 불과 1년 전에 신설된 학교였기에 당시 3학년(우리 식으로 고1)과 4학년(우리 식으로 고2)만 있었다. 영재고등학교에 들어갈 정도로 똑똑한데다 3학년 때부터 이미 영어 집중교육을 받아서 그런지, 학생들은 영어 수업이 아닌, 다른 과목을 영어로 설명해줘도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영어를 잘했다.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이 함께하는 뜨거운 환영식 이후, 학교 측은 막 와서 정신 없을 테니 집도 구하고 적응할 준비를 하라며 며칠 동안 오후에 일찍 퇴근할 수 있게 여유 시간을 주셨는데, 우리가 도착한 시기가 학생들의 중간고사 시험도 막 다 끝나고 살짝 쉬어갈 타이밍이기도 했다. 여튼 이런 학교 측의 배려 덕에 선생님들, 그리고 아이들과 안면을 트고 친해지고 전체적인 학교 시스템과 운영에 대해 파악하면서 차차 근무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코아르는 학생들에게 해외 유수 대학으로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IB (International Baccalaureate,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국제교육과정) 교육과정을 운영한다. 그래서 3학년 때 영어 집중 과정을 마친 다음, 4,5학년 때 2년간 IB 교육과정을 공부, 수료한다. 어려운 IB 과정을 가르치는만큼 코아르는 교사에게 요구하는 사항도 많고, 근무 시간도 길지만, 그만큼 봉급이나 승진 등 대우가 확실해서 페루의 중등학교 선생님들 중에서는 실력을 쌓아 코아르로 오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페루 교육부에서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IB 교육과정 집중 연수를 받으러 한 해에 몇 주씩 수도 리마에 다녀오시는 선생님들에 비해, 나는 이곳에서 IB 과정을 실제로 처음 접했다. 게다가 이 나라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학 입시가 이루어지는 지도 모르는 등 외국인 교사로서의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코아르에서는 내가 수업을 주도적으로 하기보다는 현지 선생님과의 협력 수업 형태로 보조하거나, 과학 과목 중 Sistemas Ambientales y Sociedades (SAS / 영어로는 Environmental Systems and Societies) 에서 몇 단원을 맡아 영어로 가르쳤다. 또한 학생들의 에세이 준비 및 논문, 실험, 시험 문제 제출 등을 조금씩 도왔다. 이외에는 영어 선생님들의 열렬한 환대와 부탁을 받으며 영어 시간에 아이들 말하기 연습 상대도 해주고, 영어 글쓰기 채점을 하며 아이들이 주로 틀리는 문장과 문법 오류도 봐주었다. 그리고 생활 면에서는 이 친구들과 함께 앉아 급식 지도도 하고, 가끔 점심 시간에 수다도 떨며 저녁엔 주 1~2회 정도 자율학습 감독을 나가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은 나에게도 매우 도전적이고 흥미로웠으며, 한국에서라면 해보지 못했을 고등학교 교사의 삶을 일부 체험해보는 기분이기도 했다.
기숙사가 문을 닫는 긴 국가 휴일 주간에도 본가에 갈 비용이 아쉬워 주변에 사는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하던 아이들. 그렇지만 이토록 가난해도 전혀 기죽지 않고, 환하게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코아르 고등학생들. 입에 욕을 달고 살고 기본적인 인사성과 예의가 부족하며, 무엇보다 스마트폰과 게임 없이는 살 수 없는, 살면서 흔하게 마주치는 한국의 아이들하고는 너무나 차원이 달랐다. 이 코아르 친구들과는 내가 백 명을 데리고 담임교사로 있는 것도 가능하다고 여길 정도로 선한 아이들이었다. 내가 한번도 큰소리 낼 필요도 없이 규율을 잘 지키고, 늘 예의있는 태도로 날 대하며 절대 선을 넘지 않던 착한 아이들. 스페인어가 서툰 외국 선생님에게도 늘 미소로 배려하고, 무한정 칭찬 세례를 퍼부으며 자신감을 북돋아준 코아르 친구들. 함께 온 파견 선생님들도 여기 학생들이 참 바르다고 칭찬하고, 생활지도 면에서도 손댈 게 하나도 없다며 감탄했다.
스마트폰 없이도 함께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고, 축구나 보드게임하며 보냈던 쉬는 시간들. 특히 나는 아이들과 급식먹는 시간이 정말 좋았는데 - 남미에서 가장 다채로운 재료와 뛰어난 맛으로 유명한 페루의 음식들을 먹는 것도 즐거웠지만 - 마치 동네 언니나 누나처럼 날 잘 따르는 학생들과 국제 정세와 세계사, 그리고 자기들 연애 이야기까지 정말 사소하고 다양한 대화의 스펙트럼을 오가며 노는게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다. IB라는 생소한 과정을 온몸으로 겪으며 생겨난 공부 스트레스에 힘든 아이들이었지만, 이렇게 수다나 운동, 독서, 친구들과의 우정 등으로 스스로 돌파구들을 찾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학업의 부담을 이겨내고 성장해가는 모습이 참 예뻤다.
또한 당시 방탄소년단을 위시한 케이팝이 외국에서도 서서히 인기를 얻어가던 시기여서 그런지, 녀석들과 어울리면서 나도 잘 몰랐던 한국 아이돌 그룹들을 페루에 와서 알게 되었다. 아이들이 가사의 정확한 한국어 발음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나도 유튜브로 따로 찾아보며 음악을 듣고 불러주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삼삼오오 모여서 케이팝 춤을 추는 아이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중에 특히 한국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자문관 선생님께서 따로 한국어 수업 강좌를 여셨는데, 기초 한국어 뿐만 아니라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 이야기도 해주고, 마지막 강좌 즈음엔 사모님이 직접 한국 음식을 만들어 아이들을 초대해주시기도 했다. 이 친구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지금의 좋은 기억을 간직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다.
누구보다도 착하고 따뜻하며 또 의연한 코아르 아이들과 함께 지낸 시간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때때로 배를 곯기도 하는 어려운 집안 형편을 늘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들. 반드시 자기가 대학을 가서 좋은 직장을 얻고, 두메 산골에 있는 식구들도 호강시켜 드리고 싶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우리네 부모님 세대가 학생 시절, 청년 시절 살았던 삶이 아마 이랬겠구나’ 싶어 마음 한 구석이 아려오기도 했다.
코아르에 근무하는 선생님들과도 사이좋게 잘 지냈는데 -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는 편이라 그런지 - 영어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제일 협조적이셨다. 내가 아예 티오(스페인어로 삼촌)라고 불렀던 능력자 D 선생님부터 늘 웃으며 친절하게 맞아주셨던 L 선생님, 그리고 활발하고 유머러스한 성격으로 아이들과 인화관계가 뛰어났던 C 선생님 등 많은 선생님들과 친분을 교류했다. 물론 나의 협력 교사들이었던 과학 선생님들도 나에게 잘 해주셨는데, 아쉽게도 당시 스페인어 실력이 바닥이었던 나와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하지만 언어 이전에 더 중요한 것은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와 태도이지 않은가! 그래서 필요하면 영어 선생님들의 통역도 거치고, 또 구글의 힘으로 대화했다.
페루에서의 2년은, 엄연히 현지 직장에 일하다보니 무엇보다도 현지인들과의 문화에 흠뻑 젖을 수 있던 나날이었다. 처음 공지된 회식 시간은 7시였으나 어째 9시쯤이나 되어서야 모두가 자리에 도착하는 남미식 시간 개념에 질릴 때도 많았지만, 그덕에 처음으로 별식이라는 꾸이(Cuy, 기니피그) 튀김을 먹어보는 등 색다른 경험을 했다. 또한 우리네 어르신들이 식사 자리에서 흥에 겨우면 일어나 지루박 메들리 춤을 추듯 분위기에 달아오른 코아르 선생님들과도 회식 자리에서 음악에 맞춰 살사나 삼바춤을 추던 기억이 선하다.
코아르 학교에서 겪었던 신선하고 예쁜 기억 덕분에, 각종 사건과 마음고생으로 인해 점점 꺼져가고만 있던 교직에 대한 애정이 다시 힘차게 샘솟았다. 이는 시간이 흐르며 ‘추억’이라는 이름의 마음 속 풀밭으로 무성히 자라났고, 나는 힘들 때마다 마치 작은 회복의 의식을 치르듯 그 풀밭으로 돌아가 한 움큼씩 풀을 뜯고, 싱그러운 향기를 들이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