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적응은 너무 어려워, 지옥의 스페인어 훈련을 통해 스스로를 레벨업하기
남미에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낸 지인이 내가 페루로 출국하기 전 당부했다.
“샘, 남미에서는 상상 이상으로 영어가 잘 안 통해요. 남미에서 영어는 권력이거든요.”
실제로 남미에서 영어는 외국으로 어학 연수를 받을 수 있는 일부 계층에 속한 사람들, 혹은 사립 학교에 다녔던 사람들이나 제대로 익혀서 누릴 수 있는 언어였다. 그러니 지인은 내가 되도록 빨리 스페인어를 익혀야 생활 자체가 편리하고, 또 재미있어 질 거라는 조언을 거듭 하셨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공용어로 자리잡은 영어, 혹은 이웃 나라의 언어인 일본어나 중국어에 비해 스페인어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진다. 전통적으로 많이 배워오던 불어나 독일어 같은 유럽 언어들보다도 조금 덜 익숙한 편이다.
하지만 스페인어는 생각보다 훨씬 영향력 있는 언어다. 스페인 왕국이 콜럼버스의 항해와 정복 이후 수백 년간 중남미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역사 덕분에, 현재 스페인어는 전 세계에서 모국어 사용 인구 기준 2위를 차지한다.
이런 배경 덕분에 최근에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기본적인 표현인 Hola 올라(만나면 하는 ‘안녕’의 인사말), Gracias 그라시아스(‘고맙습니다’란 뜻) 정도는는 한국에도 꽤 알려져 있지만, 막상 현지인과 대화를 막힘없이 해내며 여행할 정도로 제대로 구사하는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적은 편이다.
페루 도착 후 현지 적응 차 리마에서 홈스테이로 몇 주간 머무는 동안, 나는 내 지인이 나에게 준 조언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정말로 지인의 말처럼, 사람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다.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장소에 있는 종업원이나 관광업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들은 가능했지만, 그마저도 대부분 입말을 그대로 귀로 듣고 외워서 앵무새처럼 구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정작 내가 조금만 응용해서 영어로 질문을 던지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한 뒤 멋대로 스페인어로 대답해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는 미궁 속으로 빠졌고, 왜인지 나도 모르게 옛날 예능 프로그램 <가족오락관>의 “고요 속의 외침” 코너가 자꾸만 떠올랐다.
리마의 불안한 치안 문제로 인해, 나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외국인이 많은 미라플로레스 Miraflores 같은 동네 위주로 다니게 되었다. 이에 스페인어와 영어를 자연스럽게 섞어쓰는 상황이 잦았고, 이는 언어 습득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물론 홈스테이 가정에서 스페인어를 틈틈이 연습하며 - 가게에서 물건 사고 식당에서 주문하고 길 찾는 정도의 - 기본적인 생활 표현을 구사할 수준은 되었으나, 그 이상으로 실력이 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도 리마에서 이 정도로 말이 안 통한다면, 모케구아에서는 과연 생활 자체가 가능할까?”
생존과 직결된 위기감에 휩싸인 나는, 정말 하루에도 몇 시간씩 스페인어 단어와 표현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파견 동료들과 함께 모케구아로 내려가게 되었고, 나의 불길한 예감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전형적인 페루 소도시. 그러나 한국인의 기준에서는 어쩌면 ‘깡시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는 곳, 모케구아. 이 작은 도시에서 나는 명백하게 동양에서 온 외국인으로 보였을 텐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아직 스페인어에 서툴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 했다.
모케구아에서 내가 만난 사람 중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이는 극히 일부였다.
코아르 영어 선생님들과 그곳에서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 그리고 우리 집 집주인 정도뿐(그는 대학을 나와 기본적인 영어 회화가 가능했다. 집주인의 어머니가 나에게 그토록 아들 자랑을 한 이유가 있긴 했다.). 그 외에는 오로지 스페인어. 온전히 나의 온전치 못한 스페인어 실력에만 의지해야 했기에 나의 일상은 자주 언어의 늪에 빠지고는 했다.
센트로(시내) 지역에 장을 보러 가서 과일과 채소를 살 때에도, 빠르게 쏟아지는 숫자를 알아듣지 못해 고군분투하고, 그 와중에도 틈만 나면 바가지를 씌우려 시도하는 상인들과 눈치 싸움을 해야했다. 콤비(봉고차를 개조한 일종의 미니버스)를 탈 때도, 제대로 말할 타이밍을 놓치면 어김없이 한두 정거장을 더 가서 걸어 돌아와야 했다.
동네 성당 미사에서도 - 물론 전세계 어딜 가든 미사 형식은 같기 때문에 신자라면 대충 따라할 수 있다 - 신부님의 스페인어 강론은 거의 자장가에 가까웠다. 때때로 사람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으니 눈치껏 피하거나 슬금슬금 도망쳤다.
당연히 모케구아는 리마만큼 위험한 동네는 아니었기에(중남미에서는 대개 수도가 가장 치안이 안 좋은 지역이다) 대낮에 무슨 일이 일어날 확률은 적었지만, ‘사람들과의 소통’이라는 영역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였고, 그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넓고, 또 깊었다(심지어 어떤 모케구아 사람들은 Hi 나 One Two Three 같은 기초 중의 기초 영어조차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코아르의 J 교장님과 R 교감님마저도 “내가 영어를 못하니, 네가 어떻게든 스페인어를 빨리 배우길 바란다(?)”며 내가 이해하든 말든 언제나 ‘전부 스페인어로만’ 이야기하셨다.
그 당시 나의 매일은, 나날이 스페인어로 된 따귀를 정신없이 맞는 기분이었다.
물론 이미 그 숱한 시간을 보내고 산전수전을 겪은 KOICA 코이카 단원분들이 우리들을 많이 도와주셨다. 당장 수도세를 내러 방문하고 전기세와 인터넷비 등 때문에 집주인의 어머니와 실랑이를 벌일 때도 그들이 생활하면서 쌓은 노하우와 팁이 도움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배운 스페인어만으로 이곳에서 독립적인 삶을 꾸려간다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했다.
통역계의 전설, 외대 통번역대학원 최정화 명예교수는 “외국어를 잘하려면 99%의 용기와 1%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서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나 역시 더이상 자괴감에 빠지기보다는, “어차피 나는 외국인이다”이라는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조금 더 얼굴에 철판을 깔아보기로 결심했다.
시장 아주머니와 채소값을 흥정하다가 살짝 언성이 높아지는 와중에 단어 하나를 배우고, 길거리에서 직접 짠 오렌지 주스를 사 먹다가 “조금만 더 주세요!”를 외치며 또 하나를 배우고, 마트 행사 코너에 있는 사람들의 말투에서 표현 하나를 귀로 채집하고. 그렇게 일상 속에서의 실전 수업은 계속되었는데, 내가 가진 관찰하고 메모하는 습관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렇게 배우면서 아찔한 실수도 있었다.
한 번은 꾸이(Cuy 기니피그)를 먹는 회식 자리에 참석했을 때였다.
“갓 튀긴 꾸이 머리가 뜨거워요”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스페인어로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서 “Estoy caliente porque la cabeza” 라고 해버렸다.
페루 동료들은 눈가가 시뻘개질 정도로 웃음을 참지 못했고, 나는 희대의 음란한 동양 여자(!)가 되고 말았다. Estoy caliente 는 스페인어에서 “나 지금 (성적으로) 흥분됐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 자세한 에피소드와 맥락은 이미 몇 년 전 브런치 글에 자세히 풀어놓았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참조해 주시길 바란다.
이 사건은 내게 외국어란 단순한 단어의 조합이 아니라, 문화와 맥락까지 전부 필요하다는 걸 온몸으로 깨닫게 해준 아주 강렬한 인생의 에피소드였다.
이후 긴 여름방학 동안 나는 페루 이외의 여러 남미 국가들을 다녀오며 여행에 필요한 실전 스페인어는 충분히 습득하고 연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행자용 스페인어’ 수준에 머물렀다. 내 안의 복잡한 생각이나 감정까지 풀어놓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내가 외국인이다보니, 내가 만난 대부분의 남미 출신 여행자들은 나와 영어를 연습하고 싶어하지, 굳이 나와 스페인어로 말하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내 부족한 스페인어를 끝까지 들어줄 인내심도 많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말은 통하지만, 생활 면에서는 여전히 답답한 부분은 있다고 느끼던 차였다.
그러던 중 2017년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대사관 담당 영사님과 코아르의 J 교장 선생님으로 부터, 올해부터 코아르외에도 주 1회 파견 나가야 할 새로운 학교가 추가되었다라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그 학교는 우리 동네 산 안토니오 시장 근처에 위치한 벨라운데 테리 Belaunde Terry (페루의 건축가이자 전직 대통령 이름이다) 공립학교였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난데없이 현지 중등학교에서 새로운 과학 수업을 맡게 되었다.
매주 화요일마다 Segundo(세군도), 즉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 과학 수업을 진행하게 된 것이다.
내용 자체는 크게 어려울 게 없는, 중학교 수준의 물리와 생물, 화학 등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를 어떻게 전달하느냐?”였다. 벨라운데 테리 학교 학생들은, 코아르 학생들처럼 1년 내내 영어 집중 수업을 거쳐 영어 교과서로 수업이 가능할 정도로 언어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아니었다. 내가 일상 속 길거리나 시장에서 만나는, 평범하고 개구쟁이인 남미 학생들이었다. 얼마 전에야 겨우 “Hi” 라는 영어 단어를 배운 듯 나에게 시도 때도 없이 “하이!” 를 외쳐대던, 수줍게 웃는 중학생 녀석들과 수업이라니. 애초에 이 아이들과 영어로 과학 수업을 진행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결국, 이 학교에서는 영어를 일절 쓰지 않고, 스페인어로 과학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었다.
같이 파견 나온 다른 선생님은 과목이 수학이라, 어차피 칠판에 기호와 수식으로 문제 푸는 방법만 보여주면 된다며 (...)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과학은 이와 달리 설명이 필요하므로 언어의 장벽이 곧 수업의 장벽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파견 온 외국인 선생님으로서 나름의 기대를 안고 온 사람이고, 좋든 싫든 주 1회 공립학교 4시간 수업은 분명히 내 업무였다. 그렇다고 “거기로 가기 싫다”며 징징대는 말도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내가 교과 내용을 잘 안다고 한들, 부족한 언어 실력으로 인해 그걸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면 결국 쓸모없는 사람처럼 여겨질 것 같았다.
이 난관을 과연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과 수업 스크립트 암기였다.
지역에 있는 구리 광산 덕분인지 모케구아는 예산이 풍족한 편이었고, 그 덕에 이 작은 시골 공립학교 교실에 컴퓨터와 빔프로젝터, 그리고 스크린으로 쓸수 있는 화이트보드가 모두 갖춰져 있었다. 과학은 예시를 보여주는 게 중요한 과목이니만큼, 나는 매주 배워야 할 교과 내용을 PPT로 만들었다.
구글 번역기 기능을 이용해 영어 문장과 내용을 스페인어로 옮기고, 가장 핵심적인 문장과 내용들은 밤을 새워가며 달달 외워갔다. 그렇게 매주 화요일, 스페인어로 말하는 앵무새가 되어 수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꽤 고생했지만 두세 달 정도 지나자 반복되는 표현은 점차 익숙해졌다. 단어만 바꿔 끼우면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문장들이 생겼고, 덕분에 수업 준비가 조금은 수월해졌다. 그리고 처음에는 낯선 외국인 선생님이라 말을 잘 듣던 학생들이, 내가 점점 익숙해지자 슬슬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녀석들로 인해 “자리에 앉아라!”, “조용히 해라!”, “친구랑 그만 떠들어라!”, “칠판을 봐라!” 등의 명령형 표현까지 섭렵하며 필요한 교실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과연 과학 수업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던 자문관 선생님 부부도, 정면 돌파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내 모습을 보고는 “넌 앞으로 무슨 일이든 잘 해낼 것 같다” 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 칭찬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점점 언어에 자신감이 붙으니 아이들의 질문에도 조금씩 대답할 수 있게 되었고, 녀석들이 하는 농담까지 알아먹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생물 수업 중 사람의 생식기관과 남성과 여성의 차이에 대해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그 때 한 녀석이 갑자기 손을 들고 이렇게 외쳤다.
“선생님, 이론은 충분히 배웠으니 이제는 실습해 봐요, 우리!”
이런!
이후 1년 반 이상을 이렇게 지내는 동안, 내 스페인어 실력은 정말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 한 번 귀가 트이기 시작하자, 일상 속 현지인들이 쓰는 말에서도 크고 작은 오류가 많다는 걸 듣고 알게 되었다. 2인칭과 3인칭 명령형을 뒤섞어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동사변형이 엉망인 경우도 있었다. 한 문장 안 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 시제를 뒤죽박죽 쓰는 사람도 있었고, 듣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접속법을 활용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듯 스페인어는 원어민들에게조차 완벽하게 구사하기 어려운 언어였다.
그러니 나라고 너무 두려워하거나,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버튼을 누르면 삐용삐용 소리가 나는 인형처럼, 수업에 필요한 스페인어를 달달 외우며 지냈던 그 시절.
그 때로부터 몇 년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물론 그 어렵던 과학 용어들은 대부분 다 잊어버렸지만 - 나는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스스로가 만든 벽을 정면으로 넘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버텨내려 죽을 만큼 애써서 노력했던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한층 더 단단하게 레벨업시켜 주었고, 앞으로 더 멀리 도약할 수 있는 소중한 디딤돌이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