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사막의 아름다움과 와카치나, 나스카에서의 멀미

모케구아를 벗어나 닿은 페루의 여행지 시리즈 1편

by Angela B



페루 코스타 지역답게 노랗고 붉은 대지와 민둥산을 넉넉히 두른 모케구아. 특유의 극도로 건조한 기후 덕에 낮 동안 햇빛이 늘 타들어가는 듯 따가웠지만, 그만큼 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동네였다.

페루의 일반적인 소도시나 시골의 상태를 생각해볼 때 모케구아는 그렇게 살기 험악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도 친구도 없는 생판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다소 심심한 곳이란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매일 청소해도 끝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낸 뒤, 간지러운 코를 풀면 또다시 시커먼 먼지가 묻어나오는 걸 반복하는 모케구아에서의 일상. 한번씩 그 작업이 너무도 질릴 때면, 자연스럽게 조금이라도 푸르름이 있는 장소가 간절해졌다. 나무와 풀이 있는 산, 굽이굽이 흐르는 강, 그리고 너른 바다… 그동안 이 모든 게 내게는 너무 당연했기에 그 소중함을 몰랐던 걸까. 막상 내 눈앞에 사라지고 나서야 그리워지는 것들. 물론 지진 같은 일상 속 자연재해를 제외하고는 모케구아는 안전한 편이었지만, 풍경은 늘 버석하고 뻑뻑했다.


긴 방학만을 기다리며 사는 게 학생과 교사의 삶이라지만, 넋놓고 그때까지 기다리기만 하기엔 내 마음 한 구석이 늘 간지러웠다(물리적으로는 아마 콧속의 먼지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페루의 긴 연휴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탈출(?)하곤 했다.


이번 편을 포함한 앞으로의 네 편 연재분은 그렇게 일상 속에서 짬짬이 다녀온 짧은 여행들에 대한 단상이다. 이번 편에서는 이카 주의 와카치나와 나스카를 함께 서술하며, 다음 편에는 아레키파와 푸노에 대해서 각각 다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개인적으로 ‘페루 여행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평가하는 쿠스코에서 겪은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와카치나, 이카 주: 오아시스를 품은 사막의 아름다움


남미의 사막이라는 독특한 지형 덕에, 한국인의 남미 여행 국민 코스 중 하나로 꼽히는 곳, 와카치나 Huacachina.

나는 이곳을 두 번 방문했다. 한 번은 리마에 머물던 당시 현지 투어를 통해, 또 한 번은 한국에서 온 동생과 동생의 친구가 남미를 길게 여행하러 왔을 때, 특별 휴가를 받아 함께 다녀왔다.


보통 와카치나 투어는 이카 주의 파라카스 국립 보호구역 (Reserva Nacional de Paracas) 과 함께 엮어서 진행된다. 그래서인지 리마에서부터 4시간 여를 꼬박 달려 도착한 투어 버스의 첫 번째 목적지도 파라카스 마을이었다. 우리는 국립 보호구역 안에 있는 독특한 절벽과 황무지 포인트들을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으며, 페루의 갈라파고스 - 가이드는 “가난한 자들의 갈라파고스”라고 했다 - 라 불리는 바예스타스 군도 (Islas Ballestas) 를 돌아보는 일정도 포함되어 있었다.



파라카스 국립 보호구역의 멋진 해안선
새들의 천국, 바예스타스 군도
나스카 지상화와도 관련이 있다는 파라카스의 촛대 그림



그 당시에 아직 갈라파고스를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직접 비교는 당연히 불가능했지만, 여기서도 바다 사자나 펭귄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수많은 새 떼가 섬들을 오가는 장관이 인상 깊었다. 이 새들의 분뇨가 수백 년간 축적된 것이 바로 ’구아노(Guano)’라는 천연 비료다. 잉카 시절부터 고급 비료로 쓰였다는 구아노는 19세기까기 페루의 주요 수출품이기도 했다. 합성 비료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페루의 수출 경제를 책임지는 일등공신이었다고 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페루의 코스타(Costa) 지역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매우 건조한 기후인데, 이는 태평양의 훔볼트 해류(한류) 덕에 대기가 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막 지형이 완성되었고, 와카치나는 그 사막 한가운데 자리한 오아시스 마을이다.



와카치나의 아침 풍경
마을과 사막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기카



모케구아의 삭막한 사막 풍경이 마치 외계 행성처럼 느껴졌다면, 와카치나는 우리 머릿속에 ‘사막’ 하면 떠오르는 모래 언덕 그 자체다. 이 지형을 이용한 액티비티인 버기카 질주와 샌드보딩은 와카치나의 대표 즐길 거리로, 나도 동생들과 함께 그 스릴을 만끽했다.



와카치나 사막을 버기카로 질주하고, 샌드보딩을 하며 모래를 즐긴다
해질녘 마을 뒤 사구에서 바라본 와카치나 오아시스 마을




사냥꾼에게 쫓기던 잉카의 공주가 인어가 되어 흘린 눈물이 오아시스가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와카치나 마을. 하지만 이런 아름다운 전설보다 내 마음을 더 사로잡은 것은 해질녘의 모습이었다. 버기카의 지그재그 바퀴자국이 진하게 남은 모래 언덕 위로 내리는 붉은 노을의 아름다움. 일상에서 만날 수 없는 풍경 덕에, 여행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었다.






나스카, 이카 주: 미스터리보다 더 진한 멀미의 기억



이카 주의 주도 이카 Ica에서 버스로 약 3시간 여를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작은 소도시 나스카 Nazca.

얼핏보면 그저 소도시에 불과한 이곳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수많은 미스터리 서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나스카 지상화 Lineas de Nazca 덕이다.


현대 과학의 발달로 인해 점차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내고 있지만, 여전히 그 목적과 방법은 아직 명확하지 않은 미궁 같은 나스카 지상화. 땅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하늘에서만 형상이 드러나는 신비한 유적지로, 주로 기하학적 도형이나 페루의 동식물들이 그려져 있다.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은 그 신비를 온몸으로 체험하기 위해, 시간도 30분 정도로 짧은데다 비용도 제법 드는 경비행기를 타고 하늘 위에서 그 선들을 내려다보는 투어를 감내한다.


이곳을 찾은 나와 내 동생 일행은 비싼 비용에 잠시 고민하다가,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해봐야지”라는 마음으로 결국 경비행기 티켓을 샀다. 우리가 이 투어에 직접 참여했던 사람들을 만났을 때 말하길, 경우에 따라 멀미가 굉장히 심할 수 있으니 조심하고 비행기가 작을 수록 더 흔들리니 차라리 4인용보다는 6인용을 타라 등 구체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선천적으로 멀미를 타고난 사람이지만, 그래도 늘 책이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나스카 지상화들, 특히 벌새를 꼭 보고 싶었다. 어차피 길지도 않은 시간이니까 용기를 내어 탑승했는데 아뿔싸, 멀미대왕인 나에게 이 나스카 지상화 경비행기투어는 날아다니는 지옥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이륙 전부터 구토를 할 수 있도록 손님들에게 하나씩 비닐봉지를 나누어 주는 걸 보고 “아,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륙하자마자 특유의 기체 흔들림 때문에 머리가 심하게 아파오기 시작했고, 나는 이미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질려가고 있었다. 기체가 좌우로 급격히 기울어질 때마다, 내 얼굴에서는 핏기가 사라지며 마치 화이트보드처럼 창백해졌다.



사실 조종사가 멀미에 시달리는 불쌍한 사람들을 엿먹이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건 절대 아니다. 경비행 위에서 나스카 지상화 라인들을 잘 보려면 좌우 기울기, 회전, 상승, 급강하 등의 조종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괜히 죄없는 조종사를 원망하고 있을 즈음, 그는 빙빙 돌며 “거미 La araña 입니다, 왼쪽 보세요”, “저쪽에 그 유명한 벌새 El colibrí 가 있어요. 오른쪽으로 돌아보겠습니다!” 등을 간간히 외쳤다. 그러나 나는 그의 말에 거의 집중하지 못하고 결국 공중에서 토를 하고 말았다. 여지껏 비행기에서도 토를 한 적은 한번도 없건만, 나스카 경비행기는 사람이 공중에서 토할 수도 있다는 걸 처음으로 느낀 장소이기도 했다.




빙빙 도는 경비행기에서 어렵사리 찍은 나스카 지상화 사진




내리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보낸 30분 여. 경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나는 뛰쳐나왔고, 다 써버린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실제로 경비행기를 탔던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의자에 누워있었어야 했다. 왜냐하면 계속되는 어지러움에 못 이겨 일어나질 못했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탑승객 모두 나와 상태가 비슷했는지 모두 의자를 하나씩 차지하며 널부러져 있었다. 살면서 단 한번도 멀미를 해 본 적이 없었다는 내 동생조차도, 이날 경비행기를 타고서야 멀미의 개념을 알 거 같았다며 난생 처음으로 속이 메스꺼웠다고 말했다. 그날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해 우리는 나스카에서 유명한 식당을 물어 찾아가 맛있는 메뉴를 찾아 먹었다.



나스카 지상화의 마스코트인 벌새가 새겨진 정류장에서



애석하게도, 이러한 이유로 인해 나스카는 세계적인 미스터리를 자랑하는 지상화의 신비로움보다, 경비행기 안에서 겪었던 어지러움이 먼저 떠오르는 도시가 되고 말았다. 외계 문명과의 교신이든, 신에게 전하는 메시지든, 죽을 것 같은 심한 멀미를 겪고 나니 그런건 내게 아무래도 상관 없어졌다. 나스카 경비행기 투어를 타고 싶은 여행객이라면, 이에 대한 각오를 단단히 하고 탑승하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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