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케구아를 벗어나 닿은 페루의 여행지 시리즈 2편
해발고도 약 2300m 위, 화이트 시티 La ciudad blanca 라는 별칭처럼, 도시에 빼곡히 들어찬 유럽 식민풍의 새하얀 건축물들이 눈부시게 빛나는 도시 아레키파 Arequipa. 그 뒤로 우뚝 솟은 미스티 화산 Volcán Misti 은 이 도시의 경관에 화려함과 장엄한 품격을 더한다.
아레키파는 우리 파견 일행이 페루에서 처음으로 긴 휴일을 맞아 다함께 여행을 떠난 곳이기도 하고, 이후 주말을 틈틈이 이용해 다시 찾아가곤 했던 페루 제2의 도시였다. 북적이는 사람들의 활기, 다양한 볼거리, 그리고 안데스가 베푸는 은혜로운 관광 자원 덕에 방문 때마다 쾌적하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품고 돌아오게 만들었다. 제대로 된 가드레일 없는 천길 낭떠러지 구간으로 인해 모케구아에서 아레키파까지 오가는 길은 꽤 험하고 위험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견 동료들도, 코이카 지인들도, 나중에 함께 놀러 온 동생들도 전부 이 도시를 좋아했다. 이런 긴장감을 안고서도 갈만한 가치가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 도시에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곳은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이었다. 센트로 한가운데 위치한 이 곳은 원래는 프란시스코 톨레도 부왕의 허가를 바탕으로 시의회가 일반 수도원으로 건립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남편을 여읜 부유한 집안의 과부 마리아 데 구스만 María de Guzmán 이 세속을 떠나 모든 재산을 헌납하고 종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한 뒤, 수도원은 초기 계획과는 달리 여성 수도원으로 재탄생했다. 마리아 데 구스만 여사는 초대 원장이 되어 수도원의 총책임자로서의 직책을 맡게 되었다.
이 수도원은 종교적 공간임과 더불어, 아레키파의 여성 공동체이자 신앙 공동체로서의 역할이 수행했다. 설립 후 4세기를 훌쩍 넘긴 1970년대가 되어서야 외부에 개방된 산타 카탈리나 수도원은 과거 크리오요(Criollo 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 메스티소(Mestizo 백인과 원주민 혼혈), 지역 지배층이나 관리직인 쿠라카 Curaca 집안 출신 딸 등 상류층 영애들이 많이 거주했으며 그들이 데려온 하녀들까지 합하면 수백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들이 모두 수녀로서 입회한 건 아니고, 그보다는 여성으로서의 덕성과 교양을 기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서 생활했단다.
1582년 아레키파 대지진 당시, 이 수도원 역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예산 부족으로 성당을 수리할 수도 없어, 성체가 한동안 짚으로 엮은 오두막 안에 모셔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녀들과 수도원의 여성 공동체 일원들은 각자의 방을 손수 고쳐가며 힘듦을 버텼고, 고난 속에서도 이곳을 지키고 유지할 수 있었다.
카탈리나 수도원에서의 삶은 어쩌면 다소 따분하고 단조로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돋보였다, 특히 갖가지 요리용 살림들이 정성스럽게 정리된 주방, 바느질이나 소일거리 작업을 했던 작은 방처럼 소소한 생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공간들을 마주할 때면 그 당시를 상상하게 되었다. 경건하기만 해야할 것 같은 종교적 장소에서 만난 의외의 귀여움이라니! 그녀들이 깔깔 웃고 수다를 떨면서 빵이며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 장면을 그려보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레키파를 거점 삼아 출발하는 여러 가지 여행 코스 중, 가장 대중적인 건 콜카 캐니언 Cañon de Colca 투어다. 이 투어는 협곡 주변의 여러 마을을 둘러보거나, 혹은 직접 협곡을 트레킹하는 방식으로 나뉜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아레키파 시내를 벗어나, 일명 ‘콘도르 포인트’에서 안데스의 콘도르를 보는 것으로 여정을 시작한다.
난생 처음으로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멋지게 비행하는 안데스의 콘도르들을 보니, 저절로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 <엘 콘도르 파사 El condor pasa> 가 떠올랐다. 이 유명한 노래의 멜로디는 원래 페루의 오페레타 <콘도르칸키 Condorcanqui>의 테마 음악으로, 실존인물인 18세기 독립운동가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 José Gabriel Condorcanqui 의 일대기를 음악극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그는 잉카의 마지막 황제였던 투팍 아마루의 이름을 이어받아 스스로 투팍 아마루 2세로 이름을 바꾸고, 스페인의 압제에 신음하며 고통받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조국의 해방과 옛 잉카 제국의 부활을 꿈꾸었던 혁명가였다. 그러나 이 시도가 실패로 끝나는 바람에, 그는 스페인 제국에 의해 사지가 찢기는 잔혹한 형벌을 받고 처형되었다.
잉카인들은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환생한다고 믿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저 멀리 푸른 하늘과 깊은 협곡을 오가는 콘도르의 날갯짓 속에, 마치 콘도르칸키의 영혼 또한 함께 깃들어 안데스 협곡을 맴도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나는 1박 2일 코스의 콜카 캐니언 트레킹에 얼떨결에 합류하게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트레킹에 나설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내가 고산병에 쥐약인 체질인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해발 3000m을 넘으면 어김없이 머리가 아팠다). 그러나 사정상 급하게 동료 선생님의 투어 일정에 합류하게 된 케이스였기 때문에, 애초에 트레킹에 적합하지 않은 복장에 샌들형 아웃도어화를 신고 있었다. 게다가 협곡 트레킹이기 때문에 - 일반 등산과는 달리 V자 형태로 산을 타는 것이므로 - 첫날은 8시간 동안 가파른 길에서 하산만 했다. 그말인 즉슨, 다음 날은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이야기다. 난 가이드의 말을 듣고 사실을 깨닫자마자 이 협곡에서 그대로 죽고만 싶었다.
첫날 트레킹을 마치고 투어사에서 제공한 오두막에 한두사람씩 배정을 받았으나, 그 안에는 씻을 만한 물이 충분하지 않았고(고산 지대에서는 매우 흔한 일이다), 물이 너무 차가워서 샤워는 커녕 고양이 세수와 양치만 겨우 가능했다. 고산병 증세로 머리가 너무 아프고, 무엇보다 고산 지대 특유의 낮은 밤 기온으로 인해 너무 추워서 제대로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결국 덜덜 떨면서 밖으로 나왔는데, 어째서인지 오두막보다 오히려 밖이 더 따뜻했다. 그때 옆 오두막에 있던, 독일인 게이 커플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두사람 모두 밖에 나와있었다. 추위에 벌벌 떨며 한참을 서 있었지만, 그덕에 평생 잊을 수 없는 밤하늘을 마주했다.
전기라고는 하나도 없는 안데스 산자락의 밤. 나는 밤하늘은 언제나 까맣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날 처음으로 밤하늘이 까맣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까만 도화지 같은 하늘이 별빛로 잔뜩 뒤덮여 하얗게 빛났던 순간. 수염 덥수룩한 얼굴에 덩치도 크지만, 행동은 10대 소녀와 다름 없었던 귀여운 아저씨들과 셋이서 나란히 앉아 쏟아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호들갑을 떨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전기가 없는 산이라 배터리를 아껴야해서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고, 찍었다 한들 당시는 아이폰 6S을 쓰고 있어서 야간 사진은 제대로 안 나왔을 것이다. 그곳에 다시 가긴 싫으니 눈으로 본 것에 만족한다.).
그런 낭만 어린 별빛의 밤은 지나가고,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한 채 새벽부터 다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전달 8시간을 내려온 만큼, 오늘은 다시 그 가파른 길을 되밟아 올라가야 했다. 해발 4000m를 육박하는 고산 지대에서, 이런 짓을 반복하는 건 - 정말이지 내가 해본 여행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 중 하나였다. 처음에 숨이 가쁘고 머리도 아파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욕 한마디씩 하면서 올라갔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럴 기운조차 없어서, 완전 넋이 나간 채로 겨우 셀프 고문을 마쳤다. 솔직히 나는 내가 어떻게 거길 다시 올라갔는지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으며, 긴 시간 트레킹을 했지만 그날은 쓸만한 사진이라고는 하나도 제대로 못 찍었다. 그게 이 콜카 캐니언 트레킹 투어가 얼마나 험난한 지를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고산병과 함께하는 협곡 트레킹은 일반적인 등산과는 차원이 달랐다. 게다가 고산 지대에서 겨우 하루이틀 동안 고산지대에서 해발 1000미터 이상을 오르내리는 일정을 단행하는 것은 스스로를 혹사시키는 일이었다. 이 투어 경험을 교훈 삼아, 나는 앞으로 절대 고산 지대에서 무리하지 않기로 다짐했다(하지만 이 결심은 고산 지대 천국인 남미에 살면서 종종 깨지고 말았다.)
육해공에서 나는 재료를 다채롭게 사용하는 페루 음식은 남미에서 가장 맛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페루의 레스토랑에서는 간간히 지역색이 뚜렷한 재료를 쓰기도 하는데, 아레키파에는 알파카 스테이크를 파는 맛집이 있어 동생들과 방문했을 때 함께 찾아갔다.
나의 통역 설명에 동생 일행은 “그 귀여운 알파카를 어떻게 먹냐” 며 기겁을 했으나, 내 설득에 결국 한입만 먹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먹으니 동생들은 금세 “귀여운데 맛있다”며 말을 바꾸었고, 그 모습에 나는 웃음이 났다. 기회가 되면 알파카 스테이크에도 한 번 도전해 보길. 이왕 페루에 온 김에, 안데스의 맛을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물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해 적당한 가격의 맛있는 식당과 좋은 숙박 시설이 많은 곳. 사람들이 친절하며 기후 조건도 좋은 화이트 시티 아레키파. 동생들이 여건만 되면 여기에 오래 있으면서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고 할 정도였다. 보통 페루에서는 일정상 리마에서 바로 쿠스코로 가는 경우도 많은데, 시간이 허락한다면 고산에도 적응할 겸 아레키파에서 하루이틀 여유로움을 만끽하고 쿠스코로 가는 걸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