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티티카카 호수를 품은 푸노와 근처 섬 탐방기

모케구아를 벗어나 닿은 페루의 여행지 시리즈 3편

by Angela B


푸노: 티티카카 호수를 품은 높은 도시, 그리고 호수 위 여러 섬 탐방기


IMG_4980.JPG 노을을 배경으로 푸노 대성당 앞에서



푸노는 해발 3,800m 위에 세워진,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높은 해발고도를 자랑하는 도시들 중 하나다. 모케구아에서 낡은 봉고를 개조해 만든 버스인 콤비나 혹은 버스를 타고. 약 4시간 여 동안 해발 4000m, 5000m 위를 달리면 도착하며, 하늘과 맞닿은 나라인 볼리비아 국경과의 접경 도시이기도 하다.


안데스 알티플라노 고원을 지나는 만큼 풍경은 아름답지만, 잊을 만 하면 사망사고가 발생할 정도로 험준한 길이다. 매번 푸노에 도착해서 내리면 어김없이 기분이 묘하게 나빴는데, 아무래도 부족한 산소 탓에 머리가 옥죄어드는 듯한 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치 <서유기> 속 긴고아를 낀 손오공의 심정이 이러했을까? 이곳이 절대적으로 산소가 모자란 고산 지대란 걸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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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지대 특유의 전통 의상인 겹겹이 입은 치마와 옷, 담요와 모자를 둘러 쓰고 춤을 추는 주민들



카니발 연휴에 푸노를 방문했을 때, 현지 사람들은 축제를 맞아 전통 의상을 화려하게 차려 입고 길거리에서 즐겁게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방문객인 나는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고산병 증세에 시달리며 지그재그로 걷고 있었다. 마치 갓 태어난 기린처럼 비틀거리는 나를 보며 몇몇 아저씨들이 다가와서 ”아이고, 괜찮아? 코카잎을 씹고 다녀, 아가씨” 하면서 내게 코카잎과 사탕을 친절하게 건네주었다. 춥고 머리가 아픈 낯선 동네에서의 다정함을 느낄 수 있었던 좋은 기억이었다.





이곳이 유명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도시 옆에 있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티티카카 호수 Lago Titicaca 덕분이다. 배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이 호수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담수호이자, 페루 잉카 제국의 탄생 설화가 깃든 신화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IMG_7200.JPG 티티카카 호수가 보이는 아름다운 푸노의 전경



바다가 없는 내륙국인 볼리비아가 이곳 티티카카 호수에서 해군을 주둔시키고 훈련을 하고 있다. 칠레 북부 아리카 주, 안토파가스타 주 등은 원래 볼리비아 땅이었으나, 19세기 말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이 영토를 빼앗기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볼리비아는 ‘바다의 날’을 기념하며 영토 수복의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과연 이 꿈이 언제 이루어질 수 있을지 가늠해 본다면 -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으며 과정도 결과도 씁쓸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인지 국가적 상처를 안고 잃어버린 바다를 꿈꾸는 티티카카 호수 위 볼리비아 해군의 모습이 더욱 상징적으로 느껴진다.




IMG_5123.jpg 바다처럼 넓고 푸른 티티카카 호수



푸노에 오면 보통 이 티티카카 호수를 둘러보는 투어를 하는데, 반나절만 투자해도 ‘토토라 Totora’ 라는 이름의 갈대로 만들어진 우로스 섬 Isla flotante de los Uros 을 만날 수 있다. 여기에 하루 이틀 정도 좀더 시간을 쓴다면, 현대의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전통의 삶을 고수하는 아만타니 섬 Isla Amantaní 과 타킬레 Isla Taquile 섬까지 다녀오거나, 이후에 볼리비아 국경을 넘어가는 것도 가능하다. 단, 어떤 일정이든 대부분 우로스 섬은 필수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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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로스 섬을 부지런히 오가는 배



이 지역의 아주 오래된 원주민인 우루 - Uru / 혹은 Uros 로도 표기 - 족들이 스페인 정복자들의 지배를 피해 티티카카 호수 위로 도망쳐 나왔고, 그들이 만든 갈대 인공섬들의 군락이 우로스 섬이다. 이 섬들은 기본적으로 토토라 갈대로 엮어 둥둥 떠 있게 만든 것으로, 물에 푹 젖어 썩어가는 갈대를 걷어내고 새 갈대를 가져와 덧대며 끊임없이 섬을 갈아줘야 한단다.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을 수입원으로 삼아 생계를 유지하는 우로스 섬 주민들은 더이상 전통적인 삶을 고수하지 않는다. 그들은 수공예품 판매, 갈대를 씹는 퍼포먼스 체험, 관광객에 전통 배 태워주기, 사진 촬영 모델료 등의 방법으로 돈을 번다. 다만 우로스 섬은 가족이나 친척 단위로 하나씩 섬에 사는 경우라 수십개가 넘고, 필요하면 섬을 잘라서(!) 분리하기도 쉽기 때문에 소음이나 붐비는 분위기를 피하고 싶은 사람들은 관광객의 손길이 닿지 않는 호수의 구석진 곳으로 가서 고기를 잡으며 조용하고 순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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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료와 촬영료를 지불하고 허락을 받은 뒤 찍은 사진들. 관광객인 내 돈이 조금이라도 그녀들의 삶에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아만타니 섬과 타킬레 섬을 도는 투어는 몇 시간 더 배를 타고 좀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부터는 스페인어보다는 내 귀에 낯선 언어들이 주로 들리는데, 가이드의 말로는 섬 사람들이 사용하는 아이마라어 방언 이라고 한다. 안데스 공동체를 구성하는 나라 중 하나인 페루는 인디헤나 Indígena, 즉 원주민의 비율이 높은 나라다. 사람들이 흔히 옛 원주민들의 언어들은 사멸되었을 거라 생각하지만, 잉카 제국의 언어였던 케추아어 Quechua 나 티티카카 호수 유역에서 주로 쓰이는 아이마라어 Aymara 등 그들의 언어는 여전히 실생활에서 많은 이들에게 쓰이고 있다.


아만타니 섬은 시간이 멈춘 듯한 호수의 고즈넉한 마을이었다. 생각보다 길이 잘 정비되어 있었으며, 마을 사람들은 평화롭게 퀴노아 밭을 갈고 이웃과 대화하며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이 섬에는 각각 파차타타 Pachatata, 파차마마 Pachamama 라고 불리는 유적지이자 노을 포인트가 두 곳 있었는데, 비록 비틀거리긴 했지만 고산에 조금씩 적응해서 괜찮았던 내 몸뚱아리는 저기에 올라가느라 다시 머리가 깨질 듯 아파오기 시작했다.



IMG_7288.JPG 더 가까운 하늘 아래 퀴노아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풍경
IMG_7436.JPG 아만타니 섬에서 바라본, 너무나 아름다웠던 노을의 풍경



또한 이 섬에는 전기가 거의 없고 일부 공간에서만 제한적으로 쓸 수 있기에, 밤이 굉장히 어두웠다. 그래서 마을 안내자 한 분이 가져온 태양열 라이트 불빛 하나에 투어 참가자 여러 명이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어두운 길을 걷다가 마을 어르신께서 던진 “우리 마을은 해지면 할 일이 없기에 청춘남녀가 그냥 빨리 애부터 만들고 가정을 꾸린다네”는 솔직한 말에 당황한 나는 달리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게 도착한 마을 회관에서는, 투어 손님인 우리들을 위한 작은 잔치가 열렸다. 전기 사용이 제한적이라 그런지 작은 전구를 여기 저기 연결해서 크리스마스 장식처럼 꾸며놓았기도 했다. 우리 일행은 고산병으로 인해 매우 지치고 피곤했지만, 고산 지대 특유의 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별빛 아래서 일부러 더 크게 웃고, 씩씩하게 춤을 추었다.





아만타니 섬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도착한 타킬레 섬은, 전통적으로 남자들이 뜨개질을 하고 옷감을 짜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여기도 아만타니 섬처럼 호수와 마을 주변에 트레킹 코스들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무리하지 않고 산뜻한 공기와 고요한 호수를 배경 삼아 일행들과 천천히 걸었다. 그러다가 동화책 속 요정처럼 매우 뾰족한 모자를 쓰고 나란히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는 남성 무리를 종종 마주치곤 했다. 극복될 수 없는 고산병으로 힘들었지만, 파란 하늘 아래 그림 같이 반짝이는 티티카카 호수의 풍경과 순박한 웃음을 짓는 마을 사람들을 보니 그 고통도 조금은 가시는 듯 했다.


IMG_7266.JPG 손님 맞이 마중을 나와 주신 타킬레 섬 주민분들
IMG_7430.jpg 타킬레 섬을 떠나기 전, 선착장 근처에서 찍은 그림같은 풍경. 멀리 보이는 땅은 볼리비아의 영토라고 한다



투어를 마치고 돌아온 티티카카 호수 선착장에서는 고향에 내려온 푸노 출신 코아르 제자들을 우연히 만나는 행운도 있었다. 예쁜 제자들에게 송어 요리인 트루챠 Trucha 를 사 주며 함께 먹으며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이후 들른 푸노 공예품 시장에서는 상인들과 흥정한 끝에 수제 알파카 인형들을 저렴하게 구입하며 기분좋은 쇼핑을 마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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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카카 호수의 명물 송어요리 트루차 Trucha 와 알파카 털 인형. 지금도 우리 집을 장식하고 있다.



처음 도착할 때는 늘 고산병으로 시작했지만, 다시 돌아갈 무렵에는 푸르른 행복을 안고 떠나게 되는 일을 반복하는 곳, 그곳이 바로 푸노였다. 춥고 머리 아픈데다 오가는 길도 험하고 무섭지만, 눈부신 티티카카 호수의 풍경과 함께 남미에서의 시간을 사랑하게 해준 곳이기도 했다.




IMG_7244.JPG 알파카를 사랑하는 인간과, 그런 인간을 거부하는 알파카
IMG_7287.JPG 마을 사이로 난 트레킹 길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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