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짙은 그림자들

페루 시골에서 살며 겪은 여러 가지 안타까운 일들에 대한 단상

by Angela B




언어도 문화도 낯선 외국에 산다는 건, 결코 신나기만 한 일이 아니었다.

외국에서 내가 이뤄나가는 개인적인 도전과 성취 이외에 - 인생에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을 감수하는 일이었으며, 놀러온 여행이 아니기에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사는 사람들의 실제 일상과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자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그때 겪었던 진한 그림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몇 가지 정리하여 풀어보고자 한다.




내가 이사 오고 나서부터 나갈 때까지, 이웃집은 나에게 공포였다.


서로 생활 패턴이 달라 보기 힘들었지만, 어쩌다 마주치는 그 여자의 얼굴은 늘 부어있었으며, 행복이나 사랑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전혀 읽을 수가 없었다. 이는 남편도 마찬가지로, 보기 싫을 정도로 심술궂은 무표정으로 마주치기 일쑤였다.


이웃들은 줄곧 이렇게 행동했다.

일주일에 꼭 한두번씩은, 그것도 밤 12시 넘어서 여자가 서럽게 울면서 밖으로 쫓겨난다. 그녀의 울음소리 뒤에는 항상 남편의 고함소리, 물건을 던지는 소리, 뭔가를 때리는 소리 등이 모두 섞여서 들린다. 여자는 한참 울고 나서는 다시 문을 힘차게 두들기며 들여보내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이 일이 2년 가까이 반복되자, 사회의 약자인 외국인 여성으로서 나는 매번 잠을 설치며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스페인어를 잘 모를 때는 무서워도 참고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슬슬 귀가 뚫리니 간간히 들려오는 “살려달라”, “난 죽을 거다”, “내 인생은 너무나 불행하다”, “하루하루가 지옥같다”, “제발 아이는 때리지 말아달라” 등등의 슬픈 말을 들을 때마다 - 같은 여자로서 이토록 애처로운 말을 듣는 내 마음도 함께 찢어지는 듯 했다. 그 여자 뿐만 아니라 이웃집 아이들까지 엄마와 함께 엉엉 우는 소리가 들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내 마음을 더욱 저미게 만들었다.


언젠가는 이러다 저 이웃집 여자가 진짜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 도저히 못 참겠어서 몇 번이고 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주변 동료 교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그때마다 그들은 기를 쓰고 날 말렸다.

‘너마저 불똥이 튀어 옆집 남자에게 해코지를 당한다’ ‘이 나라는 가정폭력이 너무도 일상적인 나라이기에 신고해봐야 경찰놈들이 심각성을 모른다’ 등의 말을 하며 정색하는 표정과 함께 진지한 태도로 말리길래, 일단 내 신변을 위해 그만두었다. 그러나 이는 다시 생각해도 소름끼치는 변명이다.


페루에서 매 맞는 여자의 목숨은, 너무나 참으로 하잘 것 없게 느껴진다.

어쩌면 매우 슬프게도, 모든 나라에서 그렇겠지만 말이다.



KakaoTalk_20251024_163549336_01.jpg 어두운 밤이 되면 질리게 들리던, 이웃집 여자와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



또 다른 이웃집의 이야기다.

건너편 1층집이 어느 순간 작은 개를 데려온 이후부터는, 나는 집에서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주인 부부는 생계 때문에 아침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야 들어오는데, 개가 아직 어리고 주인이 교육을 못시켜서 사리분별이 안 되다보니 - 분리불안 증세가 너무도 심했다. 그러다보니 주인이 나가는 이른 아침부터 돌아오는 늦은 밤까지 문득문득 그 우렁차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애처롭게 짖었다.


어리고 작은 개가 주인이 없으니 불안해서 저렇게 짖는 것이고, 그래서 그 불안감으로 저렇게 집안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면서 더럽히고 실례를 함이 분명했다.

하지만 자기들이 귀엽다고 개를 데려와놓고, 이젠 개가 집안을 어지르니 귀찮다고 - 자기들이 일하러 가는 그 기나긴 시간 내내 - 물 한그릇과 함께 개만 베란다에 내어놓고 문을 닫아버렸다.


더욱더 불안해진 개는 정말 하루종일 미친듯이 엄청나게 짖고, 집에서 휴식이 필요한 나를 포함한 주민들은 개짖음 때문에 이른 아침과 늦은 밤까지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개는 점점 더자라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주인은 직간접적인 항의를 계속 받았는데, 달라진 건 없었다. 어쩌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주인은 저 개가 더 자라서 더 이상 강아지 때처럼 귀엽지 않게 되면 곧 버릴 지도 모른다. 이곳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반려동물을 들인다는 건 깊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아직 나 자신을 자유롭게 떠돌며 성장시켜야 하는 이 시기엔, 절대 내 욕심으로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저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을 들였다가, 번거롭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방치하는 사람들. 그렇게 살 거였으면, 차라리 인형을 키웠어야 했다.




KakaoTalk_20251024_163139374.jpg 버려진 개들은 낮에는 잠을 자거나 비교적 얌전하지만, 밤에는 늑대처럼 변신하며 무리를 지어 으르렁대며 거리를 다녔다.
KakaoTalk_20251024_163255685.jpg 이곳의 유기견들이 광견병 예방주사 따위 맞았을 리 없으니, 매일 개들을 피하는 것도 일이었다. 개조심이라는 단어가 실감나는 이유다.



실제로 이곳에서 개는 밥먹듯이 기르고, 밥먹듯이 버리는 존재다. 밖에서 기른다는 명목으로 어쩌다 한번씩 밥을 줄 뿐, 대문을 굳게 닫아버린 무책임한 주인들 때문에 졸지에 버려진 개들이 - 많게는 스무마리 넘게 - 동네 길거리에 모여서 시시때때로 주민들을 위협했다. 나 역시 개에게 물릴 뻔 한 적이 가끔 있어서 돌을 던지는 시늉을 하며 개를 쫓았던 적도 있고, 개 주인이라는 놈이 적반하장으로 나오길래 지나가는 경찰에 신고했던 적도 있다.


이렇게 생산성 없는 일을 반복하는 건 사실 너무나 지겨운 일이었지만, 이내 이 개들의 삶이 너무 슬퍼졌다. 따뜻한 밥, 따뜻한 손길, 따뜻한 사랑 없이 비슷한 처지의 무리와 길거리를 배회하는 삶이라니.


아직은 먹고 사는 것이 급한 개발도상국인 페루 남부 시골 지역 모케구아.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다보니 사회적 약자들의 생명 무게가 참으로 가볍게 느껴진다. 남미 곳곳에 뿌리내린 마치스모 Machismo (남성우월주의) 의 영향 탓일까. 여자, 장애인, 아이들, 그리고 말 못하는 동물들까지 많은 생명들이 쉽게 학대받는다. 나 역시 외국인 여자로서 피로포(Piropo)라 불리는 캣콜링을 일상처럼 겪었고, 가벼운 말투에 숨겨진 성적인 언행에 상처받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이러한 생채기는 절대 되물림 되어서는 안 됨을 알아야하는데, 과연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내가 숱하게 관찰하고 경험한 이들의 잔인한 문화를, 우리는 “문화상대주의” 란 이름으로 포장할 수 있을까. 우리도 예전에는 저랬다고, 아직도 사실은 곳곳에서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에 고칠 수 없다고 넘겨야 하나? 아직도 한국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넘겨야만 할까? 아마 평생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이웃집 여자의 한맺인 울음소리와, 불안한 개가 주인을 찾아 울부짖는 소리를?


평생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을 소리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편안해야 하는 집에서, 잊을만 하면 어김없이 들리는 남자의 고함소리, 그리고 여자와 아이들의 우는 소리, 거기의 개 짖는 소리까지 겹쳐들으며 여러모로 심신이 피폐해짐과 동시에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당시의 나날들이 생각난다.





병원에서는 열악한 현지 의료 사정으로 인해, 감기몸살 증상으로 갔다가 받아온 약이 너무 독해 몇 주간 위가 뚫리는 듯한 고통을 겪은 적도 있었다. 몇 주간 잠도 제대로 못자던 나날을 보내며, '어쩌면 내가 이대로 죽어서 한국으로 귀환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아팠던 적도 있었다. 알고보니 동료 선생님들이 EsSalud (페루의 보건소) 는 solo para morir, 즉 죽으러 가는 곳(...)이라며 절대 가지 말라고도 했다. 정말 아프면 큰 도시에 있는 사립병원으로 가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 역시 결국 아주 나중에 리마 출장 시 내가 들어온 보험이 적용되는 큰 스위스계 사립 병원으로 가서야 필요한 치료와 적절한 약을 처방받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정말 아픈 경우에 어떻게 해야할까? 우연히 한 번 지나갔던 산 안토니오 지역 병원 앞에 주르륵 서있던 장례식장과 장례 서비스점, 꽃집들을 보며 어쩌면 이곳에서는 치료보다 죽음이 더 익숙한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KakaoTalk_20251024_163549336.jpg 병원 주변 마을 풍경. 이 주변을 벗어나면 집에 전기도 물도 없는 빈민촌이라 치안상 폰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이 사진이 아마 내가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너무나 눈에 띄는 외국인의 외양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마치 맡겨둔 금괴나 걸어다니는 금고쯤으로 여기는 건 아닌가 싶었다. 내가 가진 돈이 많을 거라는 단단한 착각 때문에 겪은 황당하고 서글픈 일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시장에서건, 중고 거래나 개인 간 거래에서도, 사회 물정에 밝지 않은 내게 바가지를 씌워서 물건을 사게 하는 건 늘상 일어났다. 게다가 "돈 좀 빌려달라", "나한테 기부 좀 해라" 같은 헛소리도 서슴없이 들었다.

처음에 와서 페루 화폐에 익숙지 않았을 때는 위조지폐를 왕창 받은 적도 있다. (당시 위조 동전까지 많아서 처리 문제로 더 골치가 아팠다.) 그때마다 "그냥 재수 없게 똥 밟은 셈으로 치자"하고 넘겼지만, 그러기엔 밟은 똥이 너무도 많았다.


택시도 마찬가지였다.

페루 택시는 우버 같은 경우 제외하고 미터기가 없어 탈 때 거리에 맞게 가격을 흥정하고 타야하는데, 보통 5솔(당시 환율로 2500~3000원 정도)이면 충분한 거리의 택시비를, 기사들은 나만 보면 갑자기 바득바득 1솔이라도 더 올려서 받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심지어 모케구아는 작은 동네라 같은 택시기사를 며칠 동안 몇 번이고 봤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볼 때마다 가격을 높게 불렀던 건 아마도 외국인 호구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에 우리보다 미리 와 있던 코이카 단원들 역시 이와 비슷한 일들을 다 겪었다며, "돈과 관련된 일에는 현지 사람들과 엮이는 걸 피하라"고 했다.


택시에 폰을 두고 내렸다는 걸 알자마자 차 문을 바로 급하게 두들겼으나, 택시 기사가 그대로 속력을 내어 달아나 버리는 바람에 결국 폰을 도둑 맞아 동료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경찰서에 접수하러 갔던 사건도 있었다.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나는 "잘 사는 선진국에서 왔기 때문에 베풀 줄 알아야 한다"는 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금전적으로 매번 "호구"처럼 베풀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가?

아니면 이 나라 사람들, 혹은 모케구아노들의 인식 문제인가?


처음에는 내게 살갑게 대하는 듯 하다가도, 이내 돈과 관련된 문제에서라면 차갑게 얼굴을 굳히고 어떻게든 내게 이득을 보고 싶어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나 역시 점점 마음을 닫게 되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른 모케구아 하늘을 보면, 이곳 사람들의 마음도 그늘 하나 없이 맑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곳 특유의 사막 같은 풍경처럼, 마음이 메마른 사람들 역시 많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내 역시 서서히 지쳐갔다.


결국 내가 보았던 일상 속의 아픔과 사람들의 퍼석하고 건조한 태도는 페루 사회 뿐만 아니라, 이곳에 길게 머물던 나를 덮는 짙은 그림자가 되어 스스로에게 끊임없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 예전에 브런치에 썼던 몇 가지 글들의 링크를 참고로 두고 가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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