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페루 모케구아의 첫인상

모케구아, 민둥산으로 둘러싸인 건조한 도시에서의 매운 맛 적응기

by Angela B



만일 한국에서 학교 미술 시간에 학생들에게 종이를 나누어 준 뒤 산을 간단하게 그린 다음 색연필로 칠해 보라고 한다면, 아마 반의 모든 이들은 둥그스름한 언덕으로 선을 그리고 초록 색연필을 집어들어 빈 종이를 채울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봐온 산의 풍경이자 빛깔이니까. 그러나 만약 페루 코스타 지방의 어린이들에게 산을 그려서 색칠해보라고 했다면, 반대로 황토색이나 붉은색으로 색칠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의 산은 나무가 없는 민둥산이니까.






한국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 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 선진국 정부 혹은 공공기관이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돕기 위해 자금이나 기술 등을 유상, 혹은 무상 원조하는 것) 프로그램인 교원해외파견사업에 지원 후 합격하여 파견을 오게 된 나라 페루.

한반도 크기의 약 6배라는 페루는 크게 지리 조건으로 인해 비가 내리지 않아 건조한 사막이나 다름없는 해안가인 코스타 Costa, 푸르른 안데스 산맥을 넉넉히 품은 시에라 Sierra, 그리고 빽빽한 초록빛의 아마존 정글 셀바 Selva 이렇게 세 지역으로 나뉜다. 현지 특유의 느린 행정처리 및 현지 적응 등의 이유로 보낸 몇 주간의 회색빛 수도 리마 생활 이후 결정된 우리 파견자들의 파견지는 페루 남부 코스타 지역의 모케구아 Moquegua 였다.



모케구아 중심부의 전경




일단 모케구아의 배경부터 설명하자면, 수도 리마에서 버스로 약 20시간, 혹은 이웃한 도시의 공항에 내려 다시 버스로 온다해도 최소 7시간은 걸리지만 칠레와 국경을 마주한 접경 도시 타크나 Tacna 까지는 정작 2~3시간 정도밖에 안 걸릴 정도로 남쪽 지역이었다. 해발 1500m 이상에 위치한 모케구아 주 주도(대표 도시) 모케구아는 모케구아 주의 건조하고 높은 기후를 이용해 키우는 포도 농가, 그리고 아보카도 농가 등이 많다. 그러나 이 지방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 아닌 광업이다. 페루 내에서도 손꼽히는 구리 매장량을 보유한 케야베코 Quellaveco 광산이 이곳에 있고, 그 이외에 금과 은도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국가 경제를 뒷받침할 정도로 각종 광물 매장량이 풍부한 덕에 이 지역은 다른 주에 비해 예산이나 지원이 풍족한 편이라고 하며, 이 퍼석퍼석한 동네에 한번씩 다국적 광산 기업에서 일하는 외국인들도 한번씩 볼 수 있었다. 또한 모케구아는 불의 고리인 페루 서부 해안에 속한 지역이기에 지질 활동이 매우 활발해서, 여지껏 살면서 겪은 적 없었던 지진을 일상 속에서 숱하게 겪었다. 일년에 두 번씩 이곳 주변으로 현장 답사를 와서 화산을 관측하고 연구하러 온다는 외국 학자 무리를 우연히 만나 그들에게 학술적인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혹시나 현대판 유배는 아닐까 걱정이 들었던 모케구아 가는 길



타크나 공항에 내려, 우리 일행의 파견 기관인 영재고등학교 코아르 모케구아 COAR Moquegua 에서 마중 나온 학교 담당자 D 영어 선생님을 만나 파견자들 모두 함께 모케구아로 다시 향하는 길. 앞서 서술했듯 페루 코스타 지방 특유의 건조한 흙빛 도로를 덜컹덜컹 달리며 가는 기분은 마치 마법으로 모든 초록색을 빼앗기거나, 초록색이 금지된 황토색 행성에 불시착한 느낌이었다.

썬팅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차의 유리창을 통해 뜨거움을 넘어 따가운 남미의 햇빛을 사정없이 받으며, 혹시나 이 광활한 황무지에 버려지는 현대판 시베리아 유배가 아닌가 의심하기를 어언 2시간 반. 영어 선생님은 조금만 더 가면 모케구아라고 했고, 근처로 오니 조금씩 개울가나 강 근처, 관개농업 지역 주변에 초목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모두가 멍했던 얼굴을 조금이나마 풀고 웃을 수 있었다. 집을 구하기 전까지 잠시 살기 위해 근무지 학교 근처의 작은 호텔로 갔다.



다행히 모케구아 도시 주변에는 안데스 지역의 물을 관개해서 쓰고 있어 농사도 짓기에 익숙한 푸르름을 볼 수 있다.



우리의 근무지인 코아르 학교는 모케구아 센트로 Centro, 즉 시내가 아니라 시내에서 차로 좀 떨어진 산 안토니오 San Antonio 라는 동네에 있었다. 이는 당시 아직 코아르 건물이 다 지어지지 않아 다른 기관의 건물을 임시로 빌려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고도도 높은 곳인데, 바로 숨이 찰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길을 왔다갔다 해야했지만 - 다행히 학교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유일한 빌라형 아파트가 있어 거기에 빠르게 집을 구할 수 있었다.


내 또래의 젊은 집주인이 돈을 모아 하나 사두었다는 집의 월세는 대략 550솔(페루의 화폐 단위). 한국 돈으로 계산하면 당시 25~30만원 정도였으나 물이나 전기, 인터넷 등 다른 공과금을 내가 따로 내러가야 했다. 그래서 한달에 한번은 오후 반나절 이상을 잡고 수도국과 전기, 인터넷비를 내기 위해 온 동네를 돌아다녀야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냉장고나 세탁기, 붙박이장이나 신발장 등은 고사하고 심지어 전기랑 물도 없던, 이른바 깡통집이었다. 그래서 집을 구하자마자 주인에게 부탁해서 전기 회사와 수도국에 전화해 전기와 물을 연결한 뒤, 내가 전구부터 일일이 직접 달아야했다.


그렇게 가구도 가전도 정말 아무것도 없이 겨우 깨진 거울(남미에서는 거울이 비싼 편이라 집에 큰 거울이 없는 경우도 많다) 하나 달랑 달린 아파트에서 이부자리 하나만 놓고 살수는 없었다. 동료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시 외곽에 있는 가구집 몇 군데도 들려보았지만 거기서 살 수 있는 건 품목이 한정적이었고, 그렇다고 가구를 새로 주문하자니 시간도 비용도 너무 오래 걸린다고 했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 얼마 전 모케구아에 드디어 새로 생겼다는 프랜차이즈 대형마트인 플라사베아 Plaza Vea 쇼핑몰에서 가전제품을 해결하고, 조립식 가구도 사서 한번 조립해 보기로 했다.


나에게는 공구가 없어서 코아르 학교 주무관 어르신께 부탁하며 수고비를 드리고, 둘이서 묵언수행하는 기분으로 주말을 꼬박 들여 기본적인 서랍장과 옷장, 침대 등을 조립하였다(조립식 가구의 설명서가 부실해서 만드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정말 아무 말도, 아무 일도 없이 그저 허리 한번 못펴고 죽어라 조립만 하던 나와 주무관님. 문득 예전에 만나던 남자친구와 취미삼아 레고를 조립하던 생각이 겹쳐 났다. 그래도 그건 같이 이야기하면서 즐겁기라도 했지, 이건 서로 잘 모르고 말까지 안 통하는 아재랑 이틀 동안 밤까지 뭐하는 짓인가 싶어 어이도 없고, 허탈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결국 나는 서랍장과 침대 프레임 조립을 해냈고, 그분은 좀더 어려운 옷장을 조립하셨는데 모든 걸 다 완성하고 지쳐버린 우리는 하마터면 서로 껴안고 울 뻔했다. 비록 잘 만들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엉성한 퀄리티였지만, 완성했더니 꽤 뿌듯했다.




출퇴근길의 건조한 풍경



이제는 전생의 기억 같은 나의 산 안토니오 동네와 페루 집. 지역 특성 상 기후 자체가 매우 건조한데다(2년 동안 비가 내리는 걸 딱 한 번 보았는데, 30분도 채 내리지 않았던 작은 소나기였다. 사막 같은 동네 모케구아의 물은 여기서 몇 시간 떨어진 안데스 고산지대에서 온다고 한다) 창문 샤시가 제대로 마감이 안 되어 있어 밖에서 먼지가 많이 들어와 자주 바닥을 닦는 청소를 해야했다.


그리고 음식을 하려고 하면 가스통을 배달시켜 연결해야 했는데, 가스통 밑에 바퀴벌레 알이라도 붙어있었던 건지 그 이후로 집에 없던 바퀴벌레가 갑자기 창궐했다. 새벽에 잠시 물 마시러 일어나서 불을 키거나, 아침에 일어나면 뜬금없이 벽에 커다란 바선생이 붙어있는 걸 보고 그대로 놀라 쓰러질 뻔한 일을, 그 집에서 사는 동안 몇 번이고 반복했다.

하지만 산 안토니오에서 그보다 더 나은 조건의 아파트가 있는 것도 아니라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 그저 내가 강심장이 되어 억지로 잘 적응하고 사는 수 밖에 없었다(그래도 그덕에 온갖 바퀴벌레 퇴치법을 꿰뚫게 된 나는, 잡아놓은 바선생들을 이용해 불소가 든 구강청결제가 바퀴 없애는 데 가장 효과가 좋다는 걸 임상실험(?)으로 증명해 내기도 했다.).




집에 가는 길 올려다 본 보랏빛 하늘과 집 창밖을 통해 본 풍경



사실 모케구아로 와서 집을 구하며 적응하는 초반에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집주인의 끊임없는 플러팅이었다. 인간적으로 그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겠지만 - 일단 나는 “자만추” 인간이라 소개 같은 억지 상황을 좋아하지 않고, 무엇보다도 그는 전혀 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매번 철벽을 치며 그의 요청을 잘라내는 것도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파견 나온 자문관 선생님 내외가 걱정할 정도로 끈질기게 찾아와서 치근덕댔었는데, 집주인 어머니는 “우리 아들 키도 크고 잘생겼고 외국계 광산 회사에서 일할 정도로 능력도 좋은데 이만하면 괜찮지 않냐”고, 마치 외국인 며느리라도 원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아이고 어머니, 저에게도 취향이란게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그 말이 사실이라 한들, 진짜 마음에 들었다면 제가 다가갔겠죠.'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 당시 나는 스페인어로 대꾸할 실력이 못 되었다.


이들은 계속 칼같이 거절하는 나의 마음을 모르는 건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월세를 함께 받으러 온다거나, "주말인데 뭐 하냐?"라던가, “우연히 주변을 지나가며 생각났다, 혹시 필요한 게 없냐” 등의 이유로 간간히 집에 들렀다. 물론 인간의 선의를 믿고 싶었지만, 냉정하게 따져도 나는 이 나라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할 외국인 여자이기에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집주인이 광산에서 내려오는 주말에는 언제든 저 인간이 집으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그는 보통의 페루 사람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키도 덩치도 컸다) 혹시나 싶어 호신용으로 옆에 식칼을 놔두고 잔 적도 꽤 있다. 문 앞에 철문을 달아보기도 했지만 허술하게도 쉽게 열려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겪던 이 문제는 얼마 뒤, 다행히도 집주인 아들이 모케구아 주내 광산 지사를 떠나 수도 리마로 회사 근무지를 옮기게 되는 바람에 저절로 해결되었다. 직장 문제로 아들이 멀리 떠나게 되니 틈만 나면 시도하던 아주머니의 아들 영업도 사그라 들었고, 덕분에 나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었다.



이 집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매일의 남십자성 관찰. 지대가 높고 건조한 곳은 천체 관측에 최적인 장소다. 페루는 저위도 지역이라 남십자성이 십자가처럼 세로로 반듯하게 서 있다.



사실 이렇게 퍼석퍼석한 작은 도시에 나름 잘 적응하고 살 수 있었던 건 우리보다 생활 선배인 코이카 단원 선생님들의 공로가 매우 컸다. 동료 파견 교사의 지인이었던 코이카 KOICA 시니어 선생님이 우연히 이곳 페루 모케구아에 초등교육 단원으로 이미 와 계셨고, 그분이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괜찮은 집들도 알아봐주시고 일반적인 생활 정보까지 정말 먼저 나서서 많은 걸 도와주셨다. 그리고 다른 단원분들도 늘 살뜰히 우리를 챙겨주셔서 이 먼 곳까지 통하는 한국인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코이카 단원분들과 우리 파견자들 모두 주말에 한번씩 모여서 함께 한국 음식도 해먹고, 수다도 떨고, 한번씩은 멀리 나들이도 가며 즐거운 나날을 보냈다. 이 시간들 덕에 내게는 낯선 땅에서의 외로움과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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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솜씨가 좋으신 파견 동료 자문관 선생님의 사모님 덕에, 맛난 한식을 주마다 배불리 먹을 수 있어 늘 행복했다.





숨쉬는 공기에 바삭하게 모래가 씹힐 정도로 건조한 도시 페루 모케구아에서의 첫 생활.

어쩌면 무난히 가고 있던 인생에서 방향을 틀며 갑자기 불시착하듯 도착하게 된 곳.

하지만 멀리서든 곁에서든 내게 보내주는 소중한 응원과, 크고 작은 경험들을 통해서 나날이 내 안에 쌓여가는 용기와 담대함 덕에, 낯선 나라 속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들을 제법 잘 헤쳐가며 조금씩 적응했다.




모케구아 센트로 광장의 풍경. 더운 날에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것도 살면서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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