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나무와 풀이 많은 아파트, 아파트 바로 뒤에는 작은 동산이, 학교 창문 밖에는 논밭이 보이던 동네였다. 이사 한 번 가지 않고 이 동네에서 19년을 올곧이 자랐다. 나의 세상은 이곳이 전부였다. 버스를 타고 30분을 가야 했던 시내는 그마저도 영화관과 작은 옷가게들 정도였다. 확실히 서울과는 많이 다른 곳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목표 대학을 조사하는 설문지를 나눠줬다. 나는 늘 그곳에 서울 명문대학의 이름을 적었다. 특별한 꿈이 있다거나 꼭 서울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다. 그땐, 학생이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부모님과 선생님이 그렇게 말했고, 그게 성공하는 거라고 자연스럽게 배웠다.
‘인 서울’을 목표로 하는 것이 학생으로의 최종 목표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하나. 다행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등학교 진학 후 공부에 꽤 흥미를 붙였고,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부터 합격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경상도 토박이의 서울 유학생활이 시작됐다.
“서울에 가면, 매일 밤 한강에서 조깅을 할 거야.”
“캠퍼스에서 쉬는 시간에 기타도 치고 바구니 달린 자전거 타고 등교해야지”
“서울에는 연예인이 많으니까 최애도 지나가다 볼 수 있겠지?”
나에게 서울은 적어도 이런 이미지였다. 꿈과 낭만이 가득한 도시. 아마 한 번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도시에 살던, 그 시절의 내 친구들은 이런 상상을 했을 것이다.
더욱이 나는 서울에 가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아주 어릴 때 갔던 가족여행, 고등학교 수학여행 그리고 수시 면접 차. 3번의 서울이 나에겐 전부였다.
자취방을 구하기 위해 서울에 첫 발을 디딘 날
서울에 ‘산다’는 건 내 환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란 걸 단번에 알았다.
매일 밤 한강 조깅은 한강 주변에 집이 있는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의 반지하 자취방에서 한강까지는 지하철로 30분. 하려면 할 수 있지만, 그건 내 로망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었다.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타고 등교를 하기에는 학교 언덕길이 너무 가팔랐고, 캠퍼스 잔디 한가운데에서 기타를 치기엔 시선들을 감당해 낼 용기가 없었다. 최애도 돈을 내고 공연장에 가야 볼 수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시 19년을 살았던 그 오래된 아파트로 돌아왔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단지 내 상상과 달라서 돌아온 것은 아니다.
나의 고향은 불편하지만 굉장히 편하고, 서울은 편리하지만 불편한 곳이었다.
나는 그냥 그 차이를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서울을 비난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진짜 서울에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20대 여성이 서울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의 나처럼 서울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참고자료가,
서울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는 이야기가 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