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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상보 Sep 24. 2020

예뻐져라!

기모노에 대하여 알아보다가 일본 배우 '아오이유우'가 주연으로 출연한 요리 드라마 '오센'을 보았다. 드라마에서 '아오이유우'는 전통 음식을 만드는 요정의 주인으로 연기하며 계속 기모노를 입고 나온다. 상황에 맞춰 입고 나오는 기모노의 아름다움도 좋았지만 그보다 더 마음을 울리는 대사가 있었다. 


'오이시쿠나레! 오이시쿠나레!'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예쁜 '아오이유우'는 음식을 만들면서 주문처럼 '맛있어져라!'를 연신 중얼거린다. 자기가 만든 요리가 맛있어 지기를 바라며,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요리를 먹는 사람에게 전해질 것만 같다. 

모든 요리는 주문에 따라 한 가지씩 만들어지고, 그날 재료의 상태에 따라 맛이 다르다. 그리고 주문한 사람이 먹어 버리면 요리는 사라지고, 다시는 똑같은 요리를 만들 수 없다. 그래서 항상 똑같은 요리를 맛볼 수는 없다. 항상 같을 수 있는 것은 만드는 사람에 마음뿐인 듯하다.  


옷을 만드는 마음은 어떨까? 내가 만든 옷이 예쁘길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만든 옷을 입는 사람이 예쁘길 바라는 것일까? 같은 디자인으로 여러 벌의 옷을 만들지만, 옷을 사는 사람은 한 벌씩만 사니까 옷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입혀져 다른 모습이 된다. 그래서 내 옷을 예쁘게 만들기는 쉽지만, 내 옷을 입은 사람이 예뻐지는 것은 어렵다. 그러니까 예쁜 옷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사람을 위한 요리보다 더 열심히 주문을 외워야 할 것 같다.


의류회사에서 옷을 생산할 때는 본사에 자체 생산라인을 갖추고 생산을 하는 경우보다, 협력업체를 이용하여 생산하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와 생산업체는 다른 회사지만 긴밀한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 브랜드는 자기 제품의 생산에 적합한 업체인지 확인하고 수시로 생산지도를 나간다. 생산을 외부로 내보내는 이유는 제품 생산의 노하우가 많은 전문업체를 이용하려는 것도 있지만, 많은 생산 인력을 내부에 두지 않고 유동적인 영업계획에 따라 그때그때 생산량을 조절하기 쉽게 하려는 의도가 많다. 결국 이익을 많이 남기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생산을 의뢰한 본사는 어떻게든 납품 가격을 깎으려 하고, 반대로 생산업체는 어떻게든 발주 가격보다 싸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옷은 디자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꼭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디자이너가 직접 만들지는 않는다. 몇 단계를 거처 누군가 생산을 하게 된다. 아무리 디자인을 잘하고 샘플을 완벽하게 만들어도 메인 생산을 잘못하면 의도한 대로 상품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도 예전에는 의류회사에 실장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종종 생산업체 사장님이 나를 보자고 한다. 검품이 너무 까다롭다고 대충 검사를 통과시켜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다. 이럴 때 나는 종종 이렇게 얘기했었다. '사장님이 보시기엔 괜찮아요??' '사장님이 괜찮다고 하시면 받겠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다시 수정을 해서 오겠다고 상품을 싣고 돌아간다. 상품의 잘못된 부분은 만든 사람이 제일 잘 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군가의 검사를 받는 것에 익숙한 것 같다. 권력이 있는 사람이 승인을 하면 절대적인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의류 상품의 검사도 마찬가지다. 생산업체들은 상품에 하자가 있어도 검사만 통과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한다. 옷이 디자이너의 의도대로 만들어졌는지, 소비자가 지불할 가치만큼 퀄리티는 괜찮은지 등등은 중요하지 않다. 의류회사의 검품만 통과하고 나면 모든 것이 종료된다. 

어떤 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상관없는, 내 '마음에 기준'을 통과한 상품을 납품해야 하지 않을까? 


옷은 디자인만 잘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생산은 소비자가 직접 구매하게 되는 바로 그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만큼 생산은 중요하다. 요즘은 해외생산의 비중이 많아졌지만, 생산을 관리하는 사람의 마음은 직접 생산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디자인을 하는 사람도, 생산을 하는 사람도, 정성을 다해서 만들어야 옷이 예뻐진다. 정성을 다한 음식이 맛있듯이, 정성이 담긴 옷을 입은 사람은 귀하게 보인다. 


디자인을 하면서, 옷을 만들면서 주문을 외자! 

'예뻐져라! 예뻐져라'

고집스럽게 전통을 지켜가는 요리집 '잇쇼우안'의 여주인 한다센(아오이 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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