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람과 패션의 역할 변화

by 심상보

사람들은 패션을 포기할 수 없다. 사람이 짐승이 아닌 이유는 이성적이기 때문이고, 사람이 이성적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도구가 옷이다. 끼니를 거르더라도 옷은 포기할 수 없다. 환경이 아무리 나빠지더라도 사람들은 해가 바뀌면 새로운 패션 제품을 구매하고 패션을 즐길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패션과 함께한다.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패션도 지금까지 누리던 패션 생활 안에 있다. 지속가능한 패션 생활은 희한한 방법을 창조해 내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 생활하던 방식에서 생각을 조금 바꾸면 지속가능한 패션 생활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구매한 옷이 맘에 들지 않으면 반품한다. 판매점에 따라 조금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매장은 반품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반품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하지만 만약 사용한 횟수만큼 비용을 지불한다는 조건으로 옷을 구매했다면 까다로운 반품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입어본 만큼, 가지고 있었던 날짜만큼만 비용을 지불하면 그만이다. 또 사람들은 계절이 바뀌면 작년에 입었던 옷을 꺼내본다. 그리고 대부분은 다시 넣어둔다. 잘 입었던 옷도 한 해가 지나면 왠지 어색하다. 살찐 몸도 한 목 해서 이전과 같은 핏을 보여주지 않는다. 괜찮은 옷을 갖고 있다는 기대로 꺼낸 옷들은 다시 옷장으로 들어가기 일쑤다. 이렇게 몇 해 꺼내고, 넣고를 반복하다 결국 버리게 된다. 만약 다시 옷장에 넣지 않고 구매한 브랜드(제조회사)로 보내서 앞으로 더 사용할 수 있는 기간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안 입게 된 옷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입지 않는 옷을 보관하기 위해 더 큰 옷장을 준비할 필요도 없다. 만약 살이 쪄서 못 입게 되었다면 브랜드에 수선비를 주고 사이즈를 늘리면 된다. 그러고 싶지 않으면 브랜드에 팔면 그만이다. 몇 해 입은 옷을 이렇게 처리할 수 있다면 허리가 작아진 바지를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할 필요도 없다. 잘 입던 옷이 해어졌을 때도 브랜드의 수선센터로 보내 고쳐 입거나, 잔여가치만큼 돈을 받고 팔면 된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옷을 버릴 필요가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갖고 있는 옷이 나에게 필요 없어졌다면 일단 브랜드로 보내고 브랜드에서 책정한 금액을 돈으로 받던지 포인트로 받을 수 있다면 옷을 버릴 필요가 없다. 브랜드는 받은 옷의 상태를 보고 그대로 재판매할 것인지, 수선해서 재판매할 것인지, 판매가 불가능하면 어떤 단계의 재활용을 할 것인지 결정하고 처리한다면 옷을 버릴 필요가 없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브랜드가 판매 이외에 관리의 책임을 지고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소비자가 브랜드를 선택할 때 지금까지 받은 A/S를 훨씬 뛰어넘는 관리의 가치를 함께 구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가능해진다. 옷 가격에 관리 비용이 추가되어 비싸질 수도 있지만, 소비자는 사용한 만큼만 비용을 지불하게 되니 사실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옷을 구매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지속가능을 표방하는 전 세계의 많은 브랜드가 이미 시도하고 있는 일이다. 사실 일부분은 지금도 패션 생활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다만 사람들이 옷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브랜드는 판매한 옷에 대하여 어디까지 관리하고, 이때 발생하는 비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만 결정된다면, 이와 같은 지속가능한 패션 사이클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의식 변화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의식 변화를 위해서는 지속가능한 패션 생활 방법을 제안해 줄 브랜드와 브랜드의 시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위반하면 과태료를 물리는 고압적인 제도가 아니라 일련의 과정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비용이 발생하는 관리의 단계마다 업무의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정의를 기준으로 시행 규칙을 만들고, 시행 규칙을 지켜는 소비자와 브랜드는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고, 시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를 수정하면 지속가능한 패션 생활은 가능하다.

지속가능한 패션 생활을 위한 프레임워크, 출처: hot or cool institute, 2022.
keyword
이전 02화맞닥뜨린 패션산업의 환경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