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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제품 생산의 새로운 기준

by 심상보

훌륭한 생산자는 좋은 퀄리티의 옷을 싸게 만드는 것이다. 이 명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대량 생산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수량이 되어야 기계를 사용할 수 있고, 작업이 생산자의 손에 익숙해져야 생산성이 높아진다. 만약 생산되는 모든 의류 제품을 소비자가 모두 구매해 준다면 이 방법은 하자가 없다. 하지만 생산되는 모든 제품은 생산이 정해질 때 이미 구매량 이상의 수량이 발주된다. 전체 수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 필요할까? 그리고 생산량을 줄이면서 마진을 유지하여 생산업체가 계속 사업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조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렴한 노동력을 사용하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렴한 노동력에는 일정 부분 반 인륜적인 방법이 동원된다. 부적절한 방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하여 생산비용을 낮추는 방법을 쓰지 않는다면 일단 저렴한 제품의 생산이 줄어들 것이고, 동시에 전체 의류 생산 수량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이렇게 부당한 방법으로 이득을 얻은 기업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 징벌과 퇴출의 대상이다.

노동력 착취가 아니라도 낮은 임금의 노동자들 중에는 비숙련자가 많다. 비숙련자가 작업에 익숙해지고 생산성이 높아지려면 충분한 생산기간이 필요하고 결국 많은 생산 수량이 필요하다. 숙련된 노동자는 작업에 익숙해지는 기간이 비숙련자 보다 훨씬 짧다. 임금이 저렴한 비숙련자가 작업에 익숙해져 생산성이 높아질 정도로 대량 생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초 대량 생산 대신 중량(中量) 생산으로 변경해도 시간당 생산량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생산라인 작업의 최적화도 첨단 프로그램의 데이터 분석으로 이전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다. AI와 같은 첨단 프로그램을 라인 최적화에 사용한다면 생산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걸리는 시간이 줄어들게 될 것이다. 공정별 효율적인 작업 배치로 작업 시간을 단축하고, 공간의 불필요한 이동도 최소화할 수 있다. 또한 생산성을 높이는 특수 장비의 적절한 배치로 생산성과 품질을 높일 수도 있다. 이전 최적화 준비 과정에는 작업 테스트와 전문가의 분석, 최종 퀄리티 컨펌에 시간이 필요해 전체 생산기간이 길어졌지만 첨단 프로그램의 라인 최적화는 적은 물량도 효율적인 생산이 가능하게 한다. 또 작업자 능력에 따라 공정을 설계하여 고숙련자와 비숙련자가 함께 생산 라인에 배치되어도 상대적으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지금까지 의류 생산자들은 제작하는 의류 제품이 개당 얼마의 마진이 생기는 가를 기본적인 이익 개념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작업 최적화로 제작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시간당 얼마의 마진이 생기는지 계산하면 된다. '10분에 얼마를 벌었나!' 이런 개념으로 생산 방식을 바꾼다면 중량 생산으로도 기업의 수익을 유지할 수 있다. 여기에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한 의류 생산 방식을 더해야 한다.

소규모 공장과 대규모 공장.jpg 소규모 공장과 대규모 공장

지속가능한 생산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사용되는 에너지를 줄이거나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에너지 효율이 높은 장비를 이용하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한다면 탄소 배출량은 적어진다. 직접적인 에너지 사용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아직 100% 재생에너지 전환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생산과정에서 사용되는 에너지의 소비를 줄여야 한다. 먼저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줄여야 한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원거리 생산을 하는 경우, 이동에 사용하는 에너지가 탄소 배출의 원인이 된다. 가능하다면 근거리에서 생산하는 방법을 택하고 유통 물류와도 가까운 곳을 생산지로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먼저 생각할 것은 기획부터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한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해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재판매, 재사용, 재활용이 용이한 방식으로 제품을 디자인해야 한다. 첫째, 재판매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견고한 상태의 제품이어야 한다. 몇 번 입고 빨면 제품의 형태가 무너지는 그런 제품은 기획부터 하지 않아야 한다. 형태 유지력이 높은 소재를 사용하고 마감과 끝처리도 견고 해야 한다. 만약 사용 중에 하자가 발생하여 수선이 필요할 때 수선이 용이한 방식으로 디자인되어야 한다. 대체 소재를 구하기 쉬워야 하고, 해어졌어도 수선이 쉬어야 하고, 사이즈를 늘리고 줄이기 쉬운 방법으로 마감을 해야 한다. 사용되는 부자재는 분리하기 쉬워야 한다. 입고 사용하는 중에 탈락이 되면 안 되지만 재활용을 위해서 가장 어려운 일은 의류 제품의 부자재를 떼어내는 일이다. 부자재를 쉽게 분리시킬 수 있다면 부자재의 재활용도 가능하고 소재의 재활용도 쉬워진다. 제로웨이스트를 위한 재단 방법을 따로 고민할 필요는 없다. 예전부터 생산자들은 만들면서 버려지는 소재나 부자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고민해 왔기 때문이다. 다만 버려지는 자재가 많더라도 판매가를 계산해서 이익이 날 수만 있다면 생산하던 방법은 이제 지양되어야 한다.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면 제작 패턴 모양 대로 소재가 생산되면 가장 좋겠지만 현재로선 광폭의 소재를 사용하고 자투리를 최대한 적게 만드는 방법으로 제품을 디자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또한 원거리의 소재를 사용하여 완성하기보다는 근거리에 자재를 사용하여 제품을 완성하도록 해야 한다. 프린트나 자수를 하는 경우에도 친환경적인 원료를 사용하고 원재료와 분리가 용이한 소재를 사용하여 재활용을 위한 분리가 쉽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제품을 포장하고 배송하기 위해 사용되는 포장재의 디자인도 재활용 가능한 소재를 사용하고 쓰레기가 생기지 않도록 디자인해야 한다.

산업혁명의 시작이 섬유 산업부터였듯이 의류 생산의 역사는 대량 생산의 역사와 같다. 하지만 200년 동안 재봉틀의 변화가 없었던 것처럼 의류 생산의 방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럼에도 점점 더 대량화되면서 부작용도 커져갔다. 이제 기계적인 발전을 넘어 프로그램의 발전과 사고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다. 의류 제품은 다양한 소재와 다양한 제작 방법을 갖고 있어 규격화하고 통합된 생산 방법을 만들기 어렵다. 하지만 AI의 발전은 지금까지 어러웠던 생산 데이터 분석도 가능하다. 생산 데이터를 분석해서 최적화된 생산 방식을 찾아 작은 물량도 효율적으로 제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더불어 탄소배출이 적은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생산한다면 의류 생산의 미래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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