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같은 시대라도 세대에 따라 누리는 패션은 다르다. 다양한 세대가 그 시대의 패션을 만들지만 패션을 소비하는 세대는 명확하게 구분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독특한 스타일을 찾는 젊은 세대, 단단한 삶의 궤적을 만들어가는 기성세대, 사회를 떠받치며 인생을 다듬는 노년은 각자 다른 패션 스타일을 지향한다.
젊은 디자이너라면 새로운 디자인에 심취해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로 세계 최고의 크리에이터가 되는 꿈을 꾸어야 한다. 천재적인 디자이너는 아니더라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디자이너라면 아름답고 품위 있는 의복의 형태에 대하여 조사하고 연구하여 모두가 인정하는 콘셉트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
패션을 소비하는 소비자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자신의 패션 스타일을 만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패션 디자이너가 제안하는 아이템 중에 하나를 고를 뿐이다. 새로운 디자인을 자기가 발견한 것 같아도 그건 누군가가 제안한 디자인을 어쩌다 찾았을 뿐이다.
소비자의 역할은 선택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정말 새로운 디자인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트렌드에 민감하다고 한다. 자신에게 맞는 좋은 디자인을 선택하는 소비자는 패션 센스가 좋다고 한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은 디자이너는 자신의 목표에 따라 계속 디자인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여기까지는 아주 아름다운 패션디자인 이야기다. 문제는 돈벌이 아이템으로 패션을 선택한 기업이다. 기업의 속성은 돈을 버는 것이다. 당연히 싸게 만들어서 비싸게 팔아야 한다. 그리고 잘 팔고 많이 남기 위해서는 법에 걸리지 않는 한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잘 팔리고 많이 남는 패션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를 기술자로 고용한다. 트렌드를 잘 케치하고 효과적인 소재 사용과 제작 방법에 익숙한 디자이너는 많은 돈을 받고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형태를 디자인한다. 카피한다. 그 아이템으로 기업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소비자에게 이것이 좋은 디자인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마케팅을 한다. 소비자는 많이 본 디자인이 트렌드라고 생각하고, 자기는 패션 센스가 있다고 생각하고 제품을 구매한다. 기업은 돈을 벌고 소비자는 자기의 선택에 만족한다. 좀 찝찝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결론인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게 30년이 흐르고 나니 환경은 엉망이 되고, 패션은 싸구려가 되고, 디자이너는 희화화(戲畫化)되었다.
아직도 기막힌 아이디어로 세상에서 본 적 없는 디자인을 구상하는 신예디자이너가 많이 있다. 이들에게는 30년 전과 같은 무한한 찬사와 응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머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은 선한 마음의 창작자와 돈을 벌려고 패션을 선택한 기업은 이제 ‘윤리’를 생각해야 한다. 소비자는 선택할 뿐이다. 소비자의 의지는 누군가 표현해 주기 전에는 맘 속에만 있다. 패션 소비자는 이미 환경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갖고 있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마케팅 도구로 사용하면 안 된다. 브랜드 사업을 하는 기업과 디자이너는 사람들의 맘이 편해질 수 있고, 아름다운 패션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말 좋은 아이템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아름답고 평안(平安)한 세상이 된다. 불안이 없는 평안한 세상을 위한 디자인, 그것이 미래패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