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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상보 Mar 10. 2021

지속가능성은 마케팅인가?

타노스가 손가락을 튕기지 않아도 지금 당장 인류의 절반이 사라질 수 있다

마블코믹스에 등장하는 우주 최강의 악당 타노스는 인피니티 스톤 6개를 모아 핑거스냅으로 세상의 절반을 사라지게 한다. 슈퍼히어로들과 인류의 절반도 먼지처럼 사라진다. 만약 나를 비롯하여 나의 가족, 친구들 절반이 사라진다면, 너무나 무섭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이런 일은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고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고 모두 믿고 있다. 그런데 정말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지구 역사에서 생물의 75% 이상 멸종한 대량 절멸 사건이 5번 있었다. 이중 가장 최근에 일어난 5차 대멸종이 6,500만 년 전 공룡이 사라진 사건이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사건이 아니어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대규모 사건들은 역사에 많이 남아있다. 그중 최근에 전 세계가 공통으로 겪은 재난으로 14세기부터 17세기에 발생한 '소빙하기'가 있다. 이때 추위와 기근을 피해 남하한 몽골 세력은 유럽을 초토화시켰다. 이때 퍼진 전염병(페스트)으로 약 2천만 명의 유럽 인구가 목숨을 잃었다. 인도에서는 17세기 데칸 대기근으로 최소 150만에서 최대 4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우리나라도 비슷한 시기에 경신 대기근으로 90만 명에서 최대 150만 명, 을병대기근으로 140만 명이 사망했다. 당시 사건이 발생한 지역 인구의 약 30%가 사라진 것이다. 타노스의 핑거스냅이 아니어도 인류의 30%가 사라지는 일은 실제로 있었다. 그렇다면 이 시기에 얼마나 심각한 기후변화가 있었을까?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학자들은 지구 표면온도가 약 1℃ 떨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단, 1℃의 온도 변화로 인구의 30%가 사라졌던 일이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다.

지구의 환경은 항상 변한다. 태양 에너지의 변화나 운석 충돌 같은 지구 밖의 요인도 있지만, 지각운동이나 화산활동 같은 지구 활동에 의해 기후가 변하기도 한다. 인류는 온도가 1℃ 떨어지는 작은 기후변화에도 30%가 사라질 수 있는 연약한 존재다. 그런데 1880년에서 2012년까지의 기간 동안 지구 표면 온도는 0.85℃ 상승했다.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발표에 따르면 인류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2100년은 현재보다 최대 4.8℃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아무리 과학이 발전했다고 해도 이렇게 급격한 변화로 발생할 자연재해에서 인류가 안전할 수는 없다.

전 세계는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해 여러 가지 해법을 내놓았다. 전 세계 나라들이 탄소중립을 선언하고 글로벌 기업들은 탄소배출량을 줄이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얼마 전에 우리 정부도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을 선언했다. 지난 65만 년간 배출한 탄소의 양보다 1750년 이후 배출한 양이 더 많다고 한다. 지구가 수용할 수 없는 여분의 탄소는 급격한 기후변화를 일으킨다. IPCC는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할 수 있는 각 나라의 대응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변화를 늦추고 지속가능 사회를 만들기 위해 지속가능한 개발, 지속가능한 사회 등 지속가능이 들어간 단어들의 사용이 부쩍 늘었다. '지속가능하다'라는 단어는 왠지 안전하고 오래갈 것 같고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해외의 잘 나가는 섬유기업과 브랜드들은 지속가능성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고 목표를 발표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지속가능을 선언하고, 지속가능성과 관련된 각종 인증과 지수를 발표하니까 국내 패션기업들도 지속가능한 회사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은 지속가능성이 마케팅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지만, 지속가능성이 필요한 진짜 이유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게다가 지속가능성이 돈이 안된다는 것은 진짜 모르는 것 같다. 지속가능성은 무엇이고 지속가능한 사회는 어떻게 기후변화를 늦출 수 있을까?

지속가능성의 포괄적 의미는 인류와 자연 사이의 균형 잡힌 상호작용이다. 지속가능을 앞에 넣은 용어들을 살펴보면 지속가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은 다음 세대의 삶에 필요한 것을 현세대가 소모하지 않는 범위의 개발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개발은 현재 자연 상태가 보존되는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지속가능한 개발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 지속가능한 사회에서 자연은, 자연에서 채집한 물질로 영향을 받지 않고, 집단에서 만들어낸 물질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으며, 물리적 수단으로 파괴되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 사람은, 건강하고 공정하며, 구조적 장애물이 없어 개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설계'는 기술 재현과 설계 영역에서 지속가능성의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설계를 위해 검토해야 할 사항은, 사용된 재료는 자연으로 환원되는가, 제작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발생하지 않는가, 재활용이 가능한 결과물인가, 제품의 기능성이 오랜 기간 유지되는가 등이다. '지속가능한 회사'는 지구에서 추출한 물질의 사용을 최소화하며, 다른 프로세스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최대한 사용하고, 자연으로 환원할 수 없는 산출물은 만들지 않는 회사다.

지금까지는 기업과 기업이 만든 산출물의 가치는 순전히 재정적인 측면으로만 측정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재정적인 측면 이외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측정이 기업의 가치가 되고 있다. MSCI와 골드만삭스 등 세계적인 투자회사들도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를 기업의 평가에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 기업들은 산출물의 지속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공급망에서 각각의 공급처가 얼마나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추출하고 있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지속가능성은 일부 과정에 적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필터가 아니다. 원료에서 폐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지속가능한 방법과 환경이 적용되어야 하며, 재정적 가치와 무관하게 지속가능한 가치를 측정하고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을 모든 기업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세계 곳곳에서 폭염, 폭설, 산불 등 기상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코로나 19로 수많은 사망자가 생기기 이전에도 사스, 메르스로 많은 사람이 죽었고, 그 보다 훨씬 많은 동물들이 사람 때문에 죽었다. 지속가능성은 생존이다. 지속가능성은 우리가 지구의 변화에 적응할 시간을 버는 것이다. 지구에서 만년 동안 일어날 변화가 100년 이내에 일어난다면 타노스의 손가락 튕기기보다 더 엄청난 일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다.

사진출처:https://ecochange.co/sustainable-development-what-and-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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