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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chun Kim Mar 13. 2017

담배

못되처먹고 속 깊은 친구

다시 담배를 그만 피우고 싶어졌다.


처음 담배를 피운 건 아마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그 시절 공부 안 하는 우리들은 모두 어느 골목에 쭈구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지 말라는 건 기어이 해보던 때였다. 나는 한번 피워보곤 왠지 내키지가 않아 피우지 않았다. 형들이 담배를 피울 때면 구석 계단 같은 곳에 혼자 앉아있었다. 돌아보면 삐딱한 이들 사이에서도 한 발 더 삐딱한 놈이 나였다.


그렇게 1년 반 정도를 참다가 피우기 시작했다. 정우성 때문이었다. 영화 <비트>의 전성기 꽃미남 정우성이 파란 새벽을 등지고 오토바이에 기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그렇게 쿨해보일 수가 없었다. 나도 정우성처럼 학교가 싫었고, 오토바이를 타고 밤새 아무데나 돌아다녔고, 미래를 돌보지 않았다. 그러니 저 형처럼 담배만 피우면 꼭 같은 게 아닌가.


난 정우성이 아니란 걸 눈치챘을 땐 이미 흔한 동네 청소년 흡연자가 되어있었다. 속았다는 생각이 유년시절의 무의식을 스쳤지만 그 속음을 속상해하지조차 못할 정도로 멍청한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대로 피웠다. 청소년이 담배에 중독된다는 건 이래저래 피곤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일단 구하는 것부터가 지랄이니까. 돈도 없고. 여의치 않으면 길에서 장초를 주워 피우기도 했다. '소독'이랍시고 라이터로 필터 부분을 살짝 지지고 피우던 멍청한 짓들이 생각난다. 립스틱이 묻어있으면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공부 안 하는 우리는 노숙자처럼 바닥의 장초를 훑고 다녔다.


땡, 하고 스무살 성인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딱 끊었다. 누가 하지 말래서 기어이 하던 일들은 말리는 사람이 없어지면 시큰둥해지게 마련이었다. 담배 끊기가 어려운 건 맞다. 처음에만. 한번 끊기에 성공하면 그 다음에 다시 끊는 건 쉽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점차 피우는 개수를 줄여나가는 방법이 먹혔다. 하루 5개피에서 4개, 3,2,1에서 0으로 점차 줄여나가는 식이었다. 바꿔 말하면 참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는 방식이다.


담배를 피우고 싶어질 때면 피웠고, 싫어지면 다시 또 끊었다. 가장 오래 끊었던 기간은 4년 7개월 정도였다. 지금도 이유를 모르겠지만 새벽에 <카페 느와르>라는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못 견디게 다시 담배가 피우고 싶어져 기록은 거기서 멈췄다.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주지 않도록 조심한다'는 전제가 성립되기만 한다면 담배는 '이롭다'고 생각한다. 어떤 시인은 "육체의 건강보다 정신의 건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담배를 피우는 건 나쁠 게 없다"는 요지의 말을 했는데, 재밌는 말인 것 같다. 이번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 때도 나에겐 정신적 위로가 필요했고, 담배는.. 담배라도 위로가 되어줬다. 이번 흡연도 만족한다. 음, 이전의 흡연기간보다는 좀 아쉽긴 했다. 이제는 담배 피우는 사람을 지나치게 죄인 취급하는 분위기여서 온전히 담배를 즐기지 못했다.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하는 건 찬성이고, 당연하다고 나도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 커피와 담배와 대화, 혹은 음악과 술과 담배를 한 자리에서 즐길 수 있던 때가 그립다.


다시 담배가 시큰둥해진 걸 보면 이제 정신건강이 회복되었나보다. 주머니가 꽉 차는 불편함, 손끝이나 옷에서 나는 냄새 같은 것들이 정신적 위로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걸 보니 말이다. 이제 다시 끊어야겠다. 담배는 뭐랄까.. 못되처먹고 속 깊은 친구 같은 느낌이랄까. 그 삐딱한 대화가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도 고마운 흡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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