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고 다시 쌓기 S2D29

by Sangchun Kim

1. 알람 울리면 10초 안에 일어나 씻으러 간다. = 성공


정말로 아슬아슬했다. 어찌어찌 일어나긴 했는데 30분 일찍 출근하기로 한 시간보다 6분 지각했다. 지각의 이유가 늦게 일어나서가 아니라, 오늘 면접이라 옷을 좀 고르고 비가 와서 차가 좀 막히고 하는 등의 다른 이유라 일단 성공을 준다. 근데 오늘은 사실 실패여도 할 말이 없다.


지금 회사다. 오늘은 회사에서 잔다. 뭐 6분 지각도 오늘 집에 안 들어가기로 한 이유 중 하나이긴 하지만 사실 그 때문만은 아니다. 어쨌든 패널티를 이행하는 만큼 이 기회에 마음 다잡아야겠다. 30분 일찍 출근한다고 조금 늦어도 될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자. 약속은 약속이다. 이제 아예 나는 1시간 일찍 와서 아침을 먹던가 책을 읽던가 하자. 아침마다 허둥지둥 하는 것보다 오히려 그게 맘 편하다.


2. 삼시세끼 먹고, 아침저녁 구석구석 씻고, 사이사이 간식과 영양제를 챙겨먹는다. = 성공


잘 먹고 잘 씻고 잘 챙겨먹었다.


3. 주 2회 이상, 1회 최소 30분 이상 운동한다. = 해당없음


내일, 모레 이틀 중 하루는 반드시 운동을 하도록 한다.


4. 주말 이틀엔 무조건 밖에 나간다. 지금까지 안 해본 일을 해보거나 사람을 만난다. 아니면 카페 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쓴다. = 해당없음


글을 잘 쓰고 싶다. 놀라운 글을 쓰고 싶다. 뭉클한 글을 쓰고 싶다. 의미있는 글을 쓰고 싶다. 진심어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살갑고 친근한 언어로 마음에 닿는 글을 쓰고 싶다. 고심의 흔적 같은 주어와 동사들로 쓰고 싶다. 있는 듯 없는 듯 흘려보내지만 문득 돌아보면 분명히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원래 가진 게 얼마 없는데 자꾸 소모하기만 하니까 점점 답답해진다. 인풋보다 아웃풋이 훨씬 많아야 하다보니 또 치사해진다. 속상하다.


주말에 뭐라도 좀 써버릇해야겠다. 책도 좀 읽고.


인풋이 필요하다. 근데 더 많은 컨텐츠를 접할수록 이미 경험해본 것들이고, 그래서 점점 무뎌진다. 울림이 있는 컨텐츠를 만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적은 인풋을 짜내 어떻게든 아웃풋을 만들어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괴롭다.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5. 눈치보지 않는다. 그 어떤 경우에든. = 성공


성공.. 인 것 같다.


6. 말을 줄인다. 생각을 늘린다. = 성공


노력했다.


7. 담배는 다시 끊는다. 술은 맥주 2캔/소주 1병/와인&칵테일 2잔 이상 마시지 않는다. = 실패


스타트업 관람가 이번화로 <노무현입니다>를 쓰려고 준비하다 포기했다. 장시간 자료조사를 하며 노무현 대통령과 노무현의 사람들을 돌아보다가, 너무 괴로워서 모두 삭제해버렸다. 뭐라도 쓰고 싶은 마음과 이건 도저히 쓸 자신없는 맘이 반복됐다. 그러다 결국 포기했다. 답답해서 좀 걸었고 담배를 피웠다. 기분이 엉망이다.


8. 그간 즐겨온 컨텐츠 중에서 더이상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은 이제 중단한다. = 성공


잘 참았다.


9. 지하철에선 책을 읽는다. = 성공


스브스뉴스 소개로 본 초등학교 6학년 정여민 군의 글을 필사해봤다.


마음 속의 온도는 얼마일까?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 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 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뜻함이라는 온도란 생각이 든다.


-

마음속의 온도는 몇 도일까요?


우리가 이사한 곳은 밤이면 쏟아질 듯한 별들을 머리에 두르고 걷는 곳이며

달과 별에게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 오지 산골이다.


--

소리가 있는 겨울


내 마음속에 소리가 있는 겨울이 앉는다.


아궁이의 시뻘건 장작불 속에 고구마를

안겨주고 군고구마를 기다리는 소리.


하얀 눈이 소리 없이 우리 집 마당을 찾아올 때

추억이 만들어지는 소리.


지붕 처마 끝에 달린 뾰족뾰족 고드름이 겨울 햇살을 만나는 소리.

얼음물 내려오는 개울가에 버들강아지가 봄 냄새를 맡는 소리.


내 마음속에 겨울이 있는 소리가 있어 행복하다.


--

숲의 하루


어둠이 내려오면 햇살은 더 놀다 가겠다 칭얼대고

숲은 무엇이 내 것인지 내 것이 무엇인지

생각도 마음도 흐릿해지는 시간이 된다.


--


어디에서든지 깨지지 말아라.

아무 곳에서나 구르지 말아라.


다시 만날 조각돌 햇살을 위해 비를 참아내며

누웠다 다시 일어나는 억새보다 바람을 참아내어


그냥 작은 꽃 옆에서 같이 비를 맞아주고

같이 바람을 맞이하는 돌이 되어라.


---


10. 일기를 쓴다.


답답하다. 글을 잘 쓰고 싶다. 요 몇 년간 너무 소모하기만 했다. 다시 모을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다. 속상하다.

매거진의 이전글허물고 다시 쌓기 S2D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