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팝에 빠진 건 순전히 타이거 디스코 형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니 홀릴 수밖에 없는 날이었다.
그 밤 을지로의 허름한 건물 3층에서 뜬금없이 <We Will Rock You>가 정신줄 놓고 노는 자들 특유의 함성과 거의 동시에 들려왔을 때 위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리 위에선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는지 보랏빛 분홍빛 형형색색 광선이 주변 건물들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감각의 제국. 3층 입구엔 그렇게 쓰여있었다.
음, 사람이 놀기 위해 혹은 놀다가보니 정신줄을 놓고자 하면 이런 풍경이 펼쳐지는구나. 그때 나는 알았다.
크라잉넛의 <다죽자>에 맞춰 머리통 흔드는 사람들의 눈빛을 보고 알았다. 그들을 거의 정확히 절반으로 가르고, 뜬금없이 세발자전거 탄 자가 패달을 밟으며 튀어나올 때 알았다.
이어 디제이가 너바나의 <Smell Like Teen Sprit>과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섞자 누군가 장구(진짜 장구)를 쳤다. 누군가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가 막춤을 췄다(그 사람이 여기 알바였다).
아니, 사실은 들어서자마자 국어선생님처럼 팔다리가 얇고 청순하게 생긴 여자분이 테이블 위에서 격렬한 각기춤을 추는 걸 봤을 때부터 대번에 알았다.
여긴 진짜 존나 감각의 제국이다.
절정은 그것이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어떤 곡과의 믹싱이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아마 크라잉넛의 <룩셈부르크> 아니면 체리필터의 <낭만고양이>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곡 중간에 갑자기 그것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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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을 보내고 하루 이틀 한 주가 지나도 그것이 머릿속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계시, 혹은 선언과도 같았다.
홀린 듯 유튜브와 감각의 제국 인스타를 털고 나서 그것을 믹싱한 디제이가 타이거 디스코 형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형의 사운드클라우드를 팔로잉하면서 형이 트는 음악들이 씨티팝이라 불린다는 사실도 알았다. 다른 곳에선 감각의 제국 셋을 틀지는 않는 것 같았다. 역시 그곳은.. 그곳은 존나 감각의 제국이다.
형의 매력은 끝이 없었다. 디제잉을 하지 않을 때의 형은 특급 호텔의 요리사였다(지금은 그만뒀다). 그림도 곧잘 그려서 인스타에 공연 포스터를 직접 그려 올렸다. 형은 씨티팝을 포함한 7~80년대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어디서 구해입는지 옷도 그 시절 사람처럼 입고다녔고 양복을 입으면 왼쪽 가슴에 호돌이 배지를 잊지 않고 달았다. 허세 부리기를 꺼려하며 "나는 뮤지션이 아니라 디제이다. 나는 요리사이지 셰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멋진 형이었다.
형을 쫒아 크리스마스 즈음엔 연남동의 채널1969라는 공간에 놀러갔다. 그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타이거 디스코 형은 빛이었다. 그 공간에서 제대로 된 씨티팝 라이브를 처음 들었다. 신기하고, 오묘하고, 무엇보다 편안했다.
술을 한잔 마셔서 그런지 흔들흔들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디제잉은 소설 쓰는 일과 구조적으로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도 디제잉도 결국 이야기와 이야기의 배치다. 이야기를 쌓아올리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들의 연결이 부드러워야 했고, 무엇보다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서두르면 망쳐버릴 일들이었다.
세상에 나쁜 문장은 없다. 어떤 문장의 가치를 결정 짓는 요소는 배치 뿐이다. 어떤 문장 옆에 어떤 문장이 오느냐, 그 원리에 따라 언어는 비굴한 변명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시가 되기도 한다.
디제잉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쁜 음악은 없다. 어떤 음악 뒤에 어떤 음악을 배치하느냐, 그리고 그걸 얼마나 설득력있게 연결하느냐. 이 원리에 의해 사람들은 지루해하기도, 춤을 추기도 한다.
그걸 아주 잘하면, 그래서 이야기들로 정서를 쌓아 올리면, 절정에서 펑 터뜨릴 수 있다.
이야기가 쌓여서 펑! 터지고, 그 안에서 반짝이는 가루가 쏟아진다.
그날 밤이 그랬다. 한껏 반짝이는 밤이었다.
타이거 디스코 형의 사운드클라우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