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 영화스케치
1.
은희가 춤을 춘다. 아니 화를 내는 것 같기도 하다.
가느다란 팔 거칠게 흔들며
그 작은 몸으로
안간힘 쓰듯 날갯짓하는 벌새처럼.
2.
은희는 실은 생명력으로 차오르는 존재다.
바깥의 사정과는 무관하게 은희의 안에선 생명력이 솟아오른다.
그 나이 때 아이들이란 존재가 그렇다.
튀어오르듯 차오르는 생명력.
한 줌의 햇볕, 한 모금의 물,
아주 작은 온기만 있어도 맑게 웃으며 살 수 있는.
3.
그러나 은희에겐 그 작은 온기가 없다.
엄마조차 은희를 바라봐주지 않는다.
문을 두드려도, 목 놓아 불러도 답하지 않는다.
은희는 애정을, 살기 위해 좇는다.
작은 온기가 절실하다. 사람의 체온같은.
그 대상이 누구든 체온에 매달린다.
4.
시대. 그 큰 다리가 갑자기 무너질 수도 있는 시대.
뭐든 붕괴될 수 있었다. 사실은 모든 게 위태로웠다.
아무도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알지 못했다. 문득 돌아보니 지금 사는 모습으로 다들처럼 그렇게 살고 있었다.
그걸 알게 된 개인은 얼떨떨했고 공허했고 허기가 몰려왔다.
모두가 그랬다. 무지와 폭력의 시대. 그러고보니 김일성이 지금껏 살아있던.
5.
가해자는 없다. 보통 사람들 뿐이다.
동생을 때리며 센 척하던 아들은 다리가 무너진 밤에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그는 아버지를 닮았다.
큰소리치고 센 척하던 아버지는 은희의 수술 소식에 엉엉 울어버리고 만다.
그는 그의 아버지를 닮았을 것이다.
그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시절 그들은 결국 그렇게 울어버리고 말았으니까.
사실은 아무것도 몰랐고 그저 무서울 뿐이었으니까.
6.
그 혼란 속에서 은희는 기어이 성장한다.
치열하게 온기를 좆아 겨우, 가까스로 자란다.
떡을 들고 선생님 댁에 찾아간다.
집안 구석에 숨겨진 가구 파편을 꺼내 스스로 제거한다.
부쩍 깊어진 눈으로
가만히 서서 수학여행으로 들뜬 아이들을 바라본다.
그저 바라본다.
7.
은희의 춤을 보면서 문득 알았다.
아, 저거였구나. 내가 지나온 게 저거였구나.
은희를 보는 게 이토록 조마조마한 이유가 그거구나.
우린 저렇게 쓸쓸하고 가엾은 풍경을 홀로 지나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