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얼룩말이 태어나는 순간을 보았다. 금방 세상에 나온 새끼 얼룩말은 몇번 절뚝이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달리기 시작했다. 얼룩말 일가는 치타에게 쫓기고 있었다. 탯줄을 덜렁이며 뛰는 새끼 얼룩말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자연에 사는 존재들은 삶을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자연 안에서 자연스럽게 살면 그걸로 족하다. 쫒는 존재는 쫒고 달아나는 존재는 달아나며 살아간다. 쫓는 자와 달아나는 자가 뒤바뀔 일도, 쫓는 자가 쫒기를 멈추고 다른 방식의 삶을 고민해야 하는 일도 없다.
고민과 혼란은 도시를 건설한 자들의 몫이다. 모든 게 정신없이 오가고, 모든 게 끝도 없이 변하는 공간. 이곳에선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끝내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건 어른이 되었는가 아닌가의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 성장이 아닌 적응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선 환경을 파악하고 적응할 때쯤이면 또다시 모든 게 변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고민을 품고 한참을 앓다가 문득 해답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 답의 유효기간은 짧다. 곧 다시 또 변해버린 환경을 맞닥뜨리게 되고 지난번과 같은 질문 앞에서 막막해진다.
정치, 경제, 기술, 환경, 문화, 교육, 이념, 종교, 언어, 패션, 트렌드, 멀티미디어... 모든 것이 각자의 지향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복잡한 이 세계에서 '어떻게 살면 좋은가'라는 단순한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린 이제 그런 걸 배워야 한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과 돈을 불리는 법(변화와 무관한 도시의 정답 한 가지는 돈뿐이니까). 최소한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배워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 혼란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돈을 불리는 법에 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지만 늘 어렵다. 부는 애초에 상대적인 것인데 어느 정도가 되어야 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올는지도 모르겠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 이건 좀 더 쉬울까? 그럴 순 없겠지. 다만 방법만이라면 알고 있다. 우리 모두가 이미 한번 가져봤던 능력이기 때문이다.
영화 한 편으로 한 달 내내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아니 장면 하나, 대사 한 줄 만으로도 긴 시간을 충만할 수 있었다. 도서관 창가 자리에서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고요히 안으로 떨리던 순간에도 온전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문장 하나로도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인생 전체를 통틀어 이보다 풍족한 적은 없었다. 반면 지금보다 행복했던 인생의 시간들은 무수하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과 돈을 불리는 법, 두 가지 중 후자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방증인 것 같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이유는 결국 행복하게 살고 싶기 때문인데, 그걸 자꾸 잊는다.
이제 어른이란 뭘까에 관해, 어떻게 살면 좋은지에 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그보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법에 관해 좀 더 생각해보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온전한 나일 수 있는지, 내가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이게 이 복잡한 세상에서 답을 찾기에 좀 더 유효한 질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