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지 3주가 넘었다. 이렇게 오래 아파본 건 처음이다. 그저 감기몸살이 또 왔구나 생각했다. 이삼일 앓고 지나겠거니. 약이 있는지 서랍을 뒤적이니 언젠가 아내가 병원에서 지어온 감기약이 봉투째 남아있었다. 럭키, 병원 안 갔다와도 되겠구나.
내리 한 주를 앓고서야 그냥 감기몸살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감기가 그 정도로, 그리 오래 아플 리는 없다. A형독감이나 뭐 그런 거였구나. 이미 앓을 거 다 앓고 기관지 빼곤 나은 후였다. 내 몸에 관해선 늘 그렇게 둔감하다.
며칠 일에 집중을 못했더니 할일이 쌓여있었다. 그즈음 회사에서 미국팀과 업무시간을 최대한 맞추고자 출근시간을 8시로 당겼다. 두 환경의 조합에 의해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까지 야근을 하게 됐다. 거의 하루 13시간씩 일했지만 한참 일에 집중을 못하다 온전히 몰두해서 해치우니까 후련하긴 했다.
문득 오른팔에서 통증을 느꼈다. 오른손 전체가 당기기도 했다. 처음엔 그저 피곤해서 그렇겠거니 했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어딘가 이질적인 통증이었다. 손등이 뜨거운 주전자에 덴 듯 쓰린데 겉보기엔 멀쩡했다. 다음날 병원에 가보니 의사는 대상포진이라 말했다. 젊은 사람도 면역력 떨어져있을 때 무리하면 걸릴 수 있다며. “예를 들어 심하게 앓고 난 후” 같을 때.
그렇게 3주가 지났다. 봉투가 터지게 받아온 그 약들도 이제 다 먹었다. 약봉투의 배가 다시 홀쭉해졌다. 많이 좋아졌다. 그럼에도 아직 회복하진 못했다. 대상포진이 꽤 아픈 병이구나 느낀 게, 수포나 통증의 회복과 별개로 몸에 힘이 없다. 재택근무 하면서 컨디션 조절하고 잘 먹고 잘 잤는데도 힘이 쌓이질 않는다. 아무리 많이 자도 입안이 헐고 혓바늘이 돋는다. 기침은 도무지 나을 생각을 않는다. 감기처럼 한번에 낫는 게 아닌가보다.
힘없는 몸속에 이런저런 약을 내려보내면 나른해진다. 그 나른함으로 3주의 시간을 보냈다. 기분 좋은 나른함은 물론 아니다. 말하자면 보사노바 같은 나른함이 아니라 슈게이징 같은 나른함이다. 멍해지고. 생각이 되돌아온다. 긴 문장을 쓸 수 없다. 복잡한 일을 할 때는 메모장에 일의 모든 순서를 번호 매겨놓고 하나씩 지워가며 겨우 했다.
나른한 가운데 아무 생각들이 올라왔다 사라지곤 한다.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식이 의식의 흐름으로 표현되는 윌리엄 포크너 소설의 등장인물처럼. 이를테면 처음에 관해 생각한다. 내가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가 뭐였을까. 처음 혼자 가본 여행지는. 가장 오래된 기억, 그러므로 내가 가진 최초의 기억은 뭘까. 다른 일을 하다가도 손을 멈추고 그런 생각들을 한다. 왜 어떤 기억은 이제 다 사라졌을까. 이게 나의 기억이 맞을까. 나른히 나른한 눈으로.
처음 사귄 여자가 누구였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왜 이렇게 기억이 안 나지 싶을 정도로 떠오르는 것이 없다. 생각이 가질 못하고 되돌아온다. 어릴 때를 떠올리면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다. 무언가로부터 상처 입고 난 후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주고 난 직후의 기억들이다. 날카로운 파편들 뿐이다.
기억났다 수진이였구나. 미안하다 수진아.
오므라이스는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다. 어쩐지 너도 나른해보인다. 노란 이불을 말고 웅크려 포근해보인다. 김이 모락모락 나네. 내가 먹어도 될까. 얼마 전 캠핑을 해봤다. 꼭 캠핑을 해보고 싶었는데. 장작을 태우며 불에 타면 소멸한다는 것이 얼떨떨했다. 포대 가득이던 장작들을 밤새 태우니 겨우 재만 좀 남았다. 그 많던 장작들은 밤새 어디로 사라진 걸까. 그 단단하던 나무들이 다 어떻게 사라질 수 있었을까. 돌아가지 않는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10대도 20대도. 지금이 좋다. 점점 좋아진다. 30대는 그래도 살만했다. 아니 30대는 행복했다. 행복했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고 입밖으로 소리내어 말했다. 좋아지고 있다. 40대는 더 좋을 것이다. 전과 다르게 좋을 것이다.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다시는.
다 나으면 꼭 운동해야지.